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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따위 레시피라니 - 줄리언 반스의 부엌 사색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4월
평점 :

까칠한 현학자의 요리하는 모습이 궁금하다면!
단 한 번도 만나본적 없는 사람임에도 <또 이따위 레시피라니>의 저자 줄리언 반스가 얼마나 까칠할지 책만으로도 느껴진다. 그간 나는 요리를 하면서 실패해도 단지 내 실력이 부족하다며 감히 레시피를 탓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내 요리 실력이 부족한건 객관적으로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줄리언 반스는 요리의 실패가 단지 우리의 잘못이 아님을 명명백백하게 밝혀준다.
“또 거짓이잖아! (p96)”
요리책을 쓰는 요리사들이 얼마나 거짓말쟁이인지 일반인들은 모른다. 식(食은) 우리 일상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그 중요도에 비해 노력해서 요리를 하는 사람의 숫자는 드물다. 그렇기에 시판되는 요리책들은 애매한 언어와 예쁘게 꾸며진 촬영용 사진으로 직무유기를 해도 잘 알지 못한다.
그렇다. 우리는 지금껏 철저하게 요리사들에게 농락당한 것이다. 우리의 실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물론 이 점도 무시할 수 없음은 알지만 그렇다고 치자,)
“달걀 노른자 20그램은 얼만큼이죠? 그걸 어떻게 재죠? 무게가 너무 나가면 반으로 줄일까요? (p141)”
이 독자의 물음이 남 일처럼 느껴지진 않을 거다. 당신은 잘 모르지만 대충 이정도지 않을까 가늠하여 요리를 만들었을 뿐 의문점에 그러려니 넘어갔을 거다. 생각해보면 독자가 쉽게 알 수 없는 불친절한 책이 정말 좋은 책일까? 요리책을 보며 따라했지만 생각만큼 맛도 나지 않고 요리 시간도 지켜지지 않으며 만들면서 어떻게 하라는 소린가 갸우뚱 했다면, 이건 독자의 잘못이 아닌거다.
언어는 명확해야 하고, 요리의 레시피도 명확해야 한다. 무엇보다 레시피는 보통의 평범한 사람이 따라할 수 있어야 한다.
책을 읽는 내내 사이다를 원 샷 한 것처럼 속이 시원했다. 역시 맨부커상 수상자의 촌철살인은 글재주가 없는 일반인들의 답답함을 시원하게 해결해주었다. 그의 요리는 실패했지만 그의 글은 길이길이 남아 독자들에게 한 줄기 희망이 되었다.
책을 읽다보면 그의 까칠함에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대충 먹으면 되는 거 아니야? 레시피에 왜 이렇게 목숨을 걸어? 라고 생각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에게 음식이란 어떤 의미인지, 왜 그가 완벽한 요리를 하고 싶은지 그 이유를 알게 된다면 레시피 앞에서 분노하는 그의 마음이 절절하게 이해될 것이다.
일상 속에서 찾는 납득되는 앵그리함, 부엌 앞에서 당황하는 한 남자의 고군분투가 궁금하다면, 레시피를 따라해도 대참사를 일으키는 똥손이라면, 당신에게 필요한건 바로 <또 이따위 레시피라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