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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베를린 - 분단의 상징에서 문화의 중심으로
이은정 지음 / 창비 / 2019년 11월
평점 :
주민들에게
동서의 경계선은 정치인들이 그어놓은 정치적 경계일 뿐,
일상적인
경제활동까지 제약하는 경계는 아니었을 것이다(p61).
1944년
런던의정서에 의거,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독일은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등 4대
승전연합국에 의해 분할 점령되었다.
독일제국의
수도였던 베를린은 소련군이 점령한 동부 지역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었지만 이 도시의 정치적·상징적
중요성 때문에 4대
승전 연합국이 공동으로 관할통치하기로 했다(p19).
승전
연합국의 분할통치는 요원하지 않았고,
베를린의
특수성은 그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념갈등의 온상지로 떠올랐다.
점령지역의
행정을 통합한 영국과 미국,
프랑스의
결정은 소련과의 갈등을 야기했고,
이
무렵 한반도에서는 남한 단독선거가 치러졌다.
이제
독일과 베를린의 운명은 ‘분단’이라는
거센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된다.
이은정
교수의 『베를린,
베를린』은
1990년
10월
3일,
통일의
함성이 독일 전역에 울려 퍼지기 전까지 냉전시대의 특수 지역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도시 베를린을 이야기한다.
한민족이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며 치열한 혈전을 벌였던 한반도와 4대
승전연합국에 의한 분할통치로 분단된 베를린의 상황은 분명 다르다.
하지만
저자의 바람처럼 우리에게도 베를린같은 도시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베를린은
갈등의 중심지였지만,
베를린이
있었기에 독일은 정서적으로 분단되지 않을 수 있었다.
미국과
소련이 정치적인 합의에 이르지 못할 때 가장 먼저 희생되는 건 베를린이었다.
실제
1948년부터
1년
여간 서베를린은 모든 물자를 차단당해 서방연합국의 공군 수송기로 식료품을 조달했다.
1961년,
베를린에
두터운 장벽이 세워지고,
분단된
베를린의 시민들은 가족과 친지를 자유로이 만날 수 없는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서베를린과 동베를린에 그어진 선은 어디까지나 정치인들의 영역일 뿐,
일상의
영역까지 깊숙이 침범하지 않았기에 작은 발걸음일지라도 그들의 교류는 단 한순간도 단절되지 않았다.
베를린은
정치적으로는 분단되었지만 사실상 완전히 분리된 적은 없었다(p125).
이른바
‘다음을
인정하는 합의’라
불리는 구제 조항을 통해 합의가 불가능한 부분을 명시함으로써 협상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를 처음부터 배제하고,
타협이
가능한 부분에서 합의를 이끌어내려고 한 것이다(p159).
남북한의
분단으로 서로 간 편지 한 통조차 보낼 수 없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우리와 달리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은 서로 반목하지 않았다.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후,
이전처럼
동서로 자유롭게 출퇴근을 할 순 없었지만 서베를린과 동독 정부는 꾸준한 합의를 통해 우편,
하수처리,
통행증과
같은 일상생활에서의 불편함을 최소화하려 노력했다.
서로
의견이 대립되는 부분을 내세우지 않고 실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을 최우선으로 여긴 것이다.
타협하는
것 자체를 비도덕적인 것으로 보는 문화가 지배했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였을 것(p168)
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남북한의 관계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평화를 위해 ‘다름을
인정하는 합의’를 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브란트
서베를린 시장의 과감한 정치적 결단력이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다.
역사는
항상 ‘영웅’만을
기억하려 한다.
그런데
장벽을 넘어 부는 바람에 응답한 것은 그 자리에 있었던 수천명의 젊은이들이었다.
(p196).
‘철의
장막’이
세워진 베를린의 화합을 이끈 건 정치인들만의 노력이 아니었다.
역사가
기록하지 못한 베를린의 젊은 청년들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저항했다.
베를린의
청년세대는 이전처럼 동서로 강한 유대감을 느끼진 않았지만 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민주주의 실현을 추구하는 서베를린과 왜 우리에게는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가에 대한 답을 찾고자한 동베를린의 청년들의 염원이 닿아 변화의 물결을 일으켰다.
1987년
6월,
세계적인
록스타를 초빙해 서베를린 장벽 앞에서 열린 ‘베를린을
위한 콘서트’는
장벽 너머로 동베를린의 젊은이들도 함께 즐겼다.
이때
군중을 해산하려 진압하는 경찰과 소련 대사관을 향해 “장벽이
없어져야만 한다”는
구호를 외친 건 동베를린의 젊은이들이었다.
2년
후,
그들이
간절히 외치던 장벽은 허물어졌고 21세기에
이르러 베를린은 가난하지만 풍요로운 도시로 발돋움했다.
인상
깊은 부분은 통일된 독일의 수도를 결정할 때,
원내
교섭단체들 간의 밀실협상에서 미리 결정이 내려지고,
소속
의원들에게 그 결정을 무조건 지지할 것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의원 개개인의 합리적 판단에 따라 자율적으로 의결하도록 했다(p228)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안건에 부닥치면 여야를 막론하고 농성부터 하는 장면을 연내행사처럼 겪어서 그런지,
1991년에
이토록 민주적인 의회민주주의를 이룩해낸 그들이 참 존경스럽다.
한국과
독일의 상황을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베를린,
베를린』을
읽으며 진정한 승리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봤다.
무엇보다
우선이 되는 건,
국민들의
행복이 아닐까.
한반도의
통일이 아득히 멀어 보이는 지금,
베를린의
과거를 통해 미래의 한반도가 나아갈 방향을 생각해본다.
이
책을 통해 막연히 알고 있던 독일의 분단과 통일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여러모로
짙은 여운이 남는다.
아직까지
분단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