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개의 명언으로 보는 철학 100개의 명언으로 보는 시리즈
개러스 사우스웰 지음, 서유라 옮김 / 미래의창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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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으로 100명의 철학자들을 만나볼 수 있는 개러스 사우스웰의 100개의 명언으로 보는 철학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철학자들을 대표하는 명언을 꼽아 소개한다. 한 명의 철학자 당 하나의 문장을 소개하는데, 이 문장만 잘 이해해도 그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철학의 한 면을 조금을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p77)

 

너무도 유명한 데카르트의 이 문장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존재하기 위해선 생각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우리가 생각하지 않는다면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데카르트가 이 말을 한 진의는 조금 달랐다. 그는 감각이나 논리, 이성적으로 얻은 지식을 진리라고 보장할 수 없다 말한다. 우리가 진리라고 믿는 지식조차 사악한 악마의 꾐에 빠진 결과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확신하는 지식도 의심할 수는 있으나 의심하기 위해서는 생각하는 나는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 의심하기 위해서는 생각해야 하고, 생각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p77)는 것이다. 데카르트를 대표하는 이 문장을 그 뜻에 맞게 이해하고 쓰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이 책은 이처럼 오독할 수 있는 철학의 개념을 다시 잡아준다. 철학자를 대표하는 문장과 이에 대한 간략하지만 상세한 해설로 자칫 자의적 해석에 빠질 수 있는 독자를 구원한다. 철학에 꼭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한 페이지는 명언, 다른 한 페이지는 해설로 구성된 이 책은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는데 매우 적절하다. 명언을 통해 사고를 확장하고, 정확한 설명을 통해 내 생각과 비교하고 철학적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슬픈 사실은, 대부분의 악행이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판단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진다는 것이다(p190).

 

고대 철학자인 소크라테스부터 현대의 누스바움까지, 동서양과 세기를 넘나드는 철학자들이 총 망라된 이 책에서 누군가를 특정 하는 건 쉽지 않다. 100명의 철학자들 모두 하나같이 철학사에 한 획을 그은 사람들로만 소개되었다. 그 중 요즘 책쟁이들에게 핫한 요즘 책방에 소개되어 친숙한 한나 아렌트가 눈에 띄었다. 사실 한나 아렌트하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대표저서로 소개되곤 하는데 그녀의 명언으로 꼽은 이 문장이 아렌트의 유작인 정신의 삶에서 발췌해 그녀가 일평생 인간의 에 대해 연구했음을 알 수 있다. 나치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보며 아렌트는 악을 저지르는 이들은 특별히 악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보통사람들이라는 걸 깨닫는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생각하는 능력이 결여된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저지른 결과가 유태인 대학살이라니. 그녀는 악의 평범성이란 표현을 만들어 사악함이 실제로는 극도로 평범한 결함(비겁함, 편견, 공감 능력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p191)이라 주장했다. 유태인 대학살이라는 끔찍한 결과가 아니더라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저지르는 악행의 근원이 무엇일지 생각해본다면 참 무서운 가정이다. 나치 전범이 잘못됐다 말하는 현대의 우리도, 그러한 상황이 주어진다면 아이히만과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인가, 혹 나도 모르게 체재에 순응해 아이히만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닐지 나의 행보를 되돌아본다.

 

100명의 철학자를 단기간에 만나려면 조금은 버거울 것 같다. 일독으로 철학자의 사상을 온전히 이해하는 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매일, 꾸준히, 한 장씩 읽기를 권한다. 100일 후, 놀라울 정도로 상식이 풍부해진 나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철학이 없다면 모두가 바보가 되는 세상이 도래할 것이다. 그 옛날 기원전부터 동서양을 대표하는 철학자들이 무엇을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아왔는지 함께 고민해본다면 조금은 더 윤택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철학을 쉽고 편리하게 접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에 소개된 철학자들의 이름과 명언만 대략적으로 기억해도 철학사를 관통하는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철학을 배우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입문해야 할지 막막한 이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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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개의 명언으로 보는 심리학 - 생각의 깊이는 더하는 매일 한 문장의 힘 100개의 명언으로 보는 시리즈
알렉스 프라데라 지음, 김보람 옮김 / 미래의창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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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무의식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p36).

 

심리학도에게 프로이트를 모른다면 간첩이다. 아니, 심리학에 대한 지식이 깊지 않더라도 정신분석학자로 이름 높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아성은 절대적이다. 심리학부생임에도 아직도 프로이트가 누구인지 설명할 수 없는 불량 학생이지만 꿈을 통해 내담자의 무의식을 발견한 그의 위대한 발견은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프로이트의 이론을 보자면 조금은 자극적인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무엇보다 나의 무의식을 발견한다는 것은, 종종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에 부합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무의식의 힘이 우리의 행동을 지배한다는 개념은(p37) 그동안 알지 못했던 나를 이해하는데 있어 유용하다.

 

알렉스 프라데라의 100개의 명언으로 보는 심리학은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 심리학을 대표하는 학자 100명과 그들의 사상을 꿰뚫는 명언을 소개한다. 심리학이란 학문이 정의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 이 책에 망라된 이들을 온전히 심리학자로 봐야할지 철학자로 봐야할지는 조금 의견이 분분할 것 같다. 심리학자 겸 철학자로 가정한 것 같은데 확실히 철학 편에 비해 기원전을 대표하는 사람은 전무하다. 심리학도인 나조차도 알지 못했던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볼 수 있어 신기한 책이다.

 

인간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의 방식과 관념이다 (p14).

 

스토아학파를 대표하는 에픽테토스를 이 책에서 만나다니, 인간의 존재의 이유를 탐구한 스토아학파의 이론은 훗날 심리학자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앨버트 앨리스는 행동치료 기법인 REBT를 개발한 임상심리학자로 위에서 말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접근보다는 행동치료로 내담자의 그릇된 생각을 개선하려 한다. 그의 이론적 토대는 스토아학파로 해석하는 방식을 달리 하도록 노력한다면 우리가 받는 고통도 줄일 수 있다(p15)는 인지행동치료의 기본이 된다. 이 책의 첫 장을 펼치자마자 대체 철학자와 왜 이곳에 나올까 굉장히 뜬금없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간 심리학을 암기하듯이 공부한 내게 심리학의 상식을 넓힐 수 있는 기회라 생각된다.

 

심리학부생에게도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 100개의 명언으로 보는 심리학, 심리학에 대한 상식을 넓히고 싶다면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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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허밍버드 클래식 M 1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한에스더 옮김 / 허밍버드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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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를 파멸로 이끌 그 진실이란, 인간은 본질적으로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사실이네(p102).

 

사회적으로 남 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고 있는 헨리 지킬,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그의 내면은 쾌락이란 향락을 언제나 갈구했다. 하지만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위치의 거물인 이상, 그는 자신의 본능을 억누르며 살아갔다. 그러던 중, 그는 불가능과도 같은 대업을 이뤄냈으니. 인간의 선과 악을 분리해냈다. 이 말도 안 되는 전대미문의 업적은 의학박사이자 법학박사이자, 왕립학회의 회원인 명예로운 지킬과 흉측하고 혐오스러운 하이드가 한 사람이되 한 사람이 아닌 괴기한 상황에 이르게 한다. 한 사람에게 두 명의 인격을 부여하는 것이, 감히 한낱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인가? 당연히 아니다. 역시나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욕망과 탐욕은 언제나 파멸을 부른다. 처음에는 두 사람의 공존이 가능한 듯 보였으나 점차 지킬은 하이드에게 잡아먹히게 된다. 자신도 모르게 범죄를 저지르고 다니는 하이드를 더는 통제할 수 없게 되자 지킬은 괴로움에 빠지고, 하이드를 쫓는 이들의 추격은 더 맹렬해진다.

 

허밍버드 클래식M 시리즈의 두 번째 도서인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는 오랜 시간 사랑을 받아온 고전 중의 고전으로 인간의 이중성을 괴기스럽게 표현했다. 실수로 인해 신의 영역에 발을 들였지만 이를 복구할 힘을 가지진 못한 인간의 나약함을 이보다 더 강렬히 표현할 수 있을까. 로버트 스티븐스의 이 소설은 다양한 장르로 각색되어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원작 소설을 읽기 전에 뮤지컬로 먼저 접했다. 뮤지컬과 원작 소설의 다른 장면이 무엇일까 생각하며 이 책을 읽으니 뮤지컬에서 느꼈던 감동이 다시 떠올랐다. 대게의 고전이 그러하듯 대충 내용은 알지만 원작 소설을 읽어본 사람은 드물다. 명작 뮤지컬과 오페라로 유명한 작품들의 원작 소설을 시리즈로 출간한 허밍버드 클래식 M 시리즈를 통해 공연과 소설의 참 맛을 고루 맛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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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허밍버드 클래식 M 2
메리 셸리 지음, 김하나 옮김 / 허밍버드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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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종의 탄생으로 행운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우월한 존재들이 나로 인해 존재하게 될 것이고, 그들은 나를 만물의 근원이자 창조주로 받들 테니까 말이오. (p95)

 

프랑켄슈타인, 과학을 흠모하는 이 청년은 생명체의 탄생이 어디서부터 시작됐을지 그 근원에 큰 흥미를 가졌다. 많은 사람들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로만 치부한 창조주의 꿈을 이루었을 때, 그는 자신이 생각한 것과 다른 괴물의 탄생에 절망한다. 무생물에 생명을 부여한, 천기를 거스르는 그의 욕망은 이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될 괴물을 만들었고 이는 프랑켄슈타인의 불행이기도 했다. ‘창조주피조물도 모두 행복하지 않았다. 종종 프랑케슈타인이 괴물의 이름이라 잘못 아는 사람도 있는데 프랑켄슈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피조물은 영영 이름을 갖지 못했다. 사람들에 의해 멸시와 조롱을 받는 피조물의 삶이 어찌 행복하겠는가. 살아가는 이유조차 느끼지 못했던 그는 프랑켄슈타인에게 자신과 함께 할 여자를 만들어 줄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 꿈이 실현되지 않을 때, 피조물은 분노하고 결국 프랑켄슈타인의 약혼녀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창조주가 되고자 한 한 인간의 욕심은 모두의 파멸을 불렀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것도 모자라 자신의 삶조차 엉망으로 만들고 끝끝내 파괴되었으니, 인간의 영역이 아닌 그 너머를 넘본 대가인가. 놀랍게도 프랑켄슈타인의 저자 메리 셸리가 이 소설을 쓴게 고작 18살의 나이니, 1800년대에 이런 생각을 한 것조차 놀라울 따름이다.

 

프랑켄슈타인은 뮤지컬로도 굉장히 인기 있는 공연인데 인간의 광기를 처절하게 표현한 그 긴박한 순간들을 소설 속 원작으로 만나보니 느낌이 색다르다. 뮤덕이라면 뮤지컬과 원작의 차이를 비교하며 책도 읽고 공연도보길 추천한다.

 

허밍버드 클래식M 시리즈의 첫 번째 책으로 출간된 프랑켄슈타인은 컴팩트한 사이즈로 휴대성이 좋아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작품들을 가볍게 읽어보고 싶다면 클래식M 시리즈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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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베를린 - 분단의 상징에서 문화의 중심으로
이은정 지음 / 창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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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에게 동서의 경계선은 정치인들이 그어놓은 정치적 경계일 뿐, 일상적인 경제활동까지 제약하는 경계는 아니었을 것이다(p61).

 

1944년 런던의정서에 의거,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독일은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등 4대 승전연합국에 의해 분할 점령되었다. 독일제국의 수도였던 베를린은 소련군이 점령한 동부 지역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었지만 이 도시의 정치적·상징적 중요성 때문에 4대 승전 연합국이 공동으로 관할통치하기로 했다(p19). 승전 연합국의 분할통치는 요원하지 않았고, 베를린의 특수성은 그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념갈등의 온상지로 떠올랐다. 점령지역의 행정을 통합한 영국과 미국, 프랑스의 결정은 소련과의 갈등을 야기했고, 이 무렵 한반도에서는 남한 단독선거가 치러졌다. 이제 독일과 베를린의 운명은 분단이라는 거센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된다.

 

이은정 교수의 베를린, 베를린1990103, 통일의 함성이 독일 전역에 울려 퍼지기 전까지 냉전시대의 특수 지역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도시 베를린을 이야기한다. 한민족이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며 치열한 혈전을 벌였던 한반도와 4대 승전연합국에 의한 분할통치로 분단된 베를린의 상황은 분명 다르다. 하지만 저자의 바람처럼 우리에게도 베를린같은 도시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베를린은 갈등의 중심지였지만, 베를린이 있었기에 독일은 정서적으로 분단되지 않을 수 있었다. 미국과 소련이 정치적인 합의에 이르지 못할 때 가장 먼저 희생되는 건 베를린이었다. 실제 1948년부터 1년 여간 서베를린은 모든 물자를 차단당해 서방연합국의 공군 수송기로 식료품을 조달했다. 1961, 베를린에 두터운 장벽이 세워지고, 분단된 베를린의 시민들은 가족과 친지를 자유로이 만날 수 없는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서베를린과 동베를린에 그어진 선은 어디까지나 정치인들의 영역일 뿐, 일상의 영역까지 깊숙이 침범하지 않았기에 작은 발걸음일지라도 그들의 교류는 단 한순간도 단절되지 않았다. 베를린은 정치적으로는 분단되었지만 사실상 완전히 분리된 적은 없었다(p125).

 

이른바 다음을 인정하는 합의라 불리는 구제 조항을 통해 합의가 불가능한 부분을 명시함으로써 협상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를 처음부터 배제하고, 타협이 가능한 부분에서 합의를 이끌어내려고 한 것이다(p159).

 

남북한의 분단으로 서로 간 편지 한 통조차 보낼 수 없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우리와 달리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은 서로 반목하지 않았다.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후, 이전처럼 동서로 자유롭게 출퇴근을 할 순 없었지만 서베를린과 동독 정부는 꾸준한 합의를 통해 우편, 하수처리, 통행증과 같은 일상생활에서의 불편함을 최소화하려 노력했다. 서로 의견이 대립되는 부분을 내세우지 않고 실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을 최우선으로 여긴 것이다. 타협하는 것 자체를 비도덕적인 것으로 보는 문화가 지배했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였을 것(p168) 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남북한의 관계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평화를 위해 다름을 인정하는 합의를 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브란트 서베를린 시장의 과감한 정치적 결단력이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다.

 

역사는 항상 영웅만을 기억하려 한다. 그런데 장벽을 넘어 부는 바람에 응답한 것은 그 자리에 있었던 수천명의 젊은이들이었다. (p196).

 

철의 장막이 세워진 베를린의 화합을 이끈 건 정치인들만의 노력이 아니었다. 역사가 기록하지 못한 베를린의 젊은 청년들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저항했다. 베를린의 청년세대는 이전처럼 동서로 강한 유대감을 느끼진 않았지만 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민주주의 실현을 추구하는 서베를린과 왜 우리에게는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가에 대한 답을 찾고자한 동베를린의 청년들의 염원이 닿아 변화의 물결을 일으켰다. 19876, 세계적인 록스타를 초빙해 서베를린 장벽 앞에서 열린 베를린을 위한 콘서트는 장벽 너머로 동베를린의 젊은이들도 함께 즐겼다. 이때 군중을 해산하려 진압하는 경찰과 소련 대사관을 향해 장벽이 없어져야만 한다는 구호를 외친 건 동베를린의 젊은이들이었다. 2년 후, 그들이 간절히 외치던 장벽은 허물어졌고 21세기에 이르러 베를린은 가난하지만 풍요로운 도시로 발돋움했다.

 

인상 깊은 부분은 통일된 독일의 수도를 결정할 때, 원내 교섭단체들 간의 밀실협상에서 미리 결정이 내려지고, 소속 의원들에게 그 결정을 무조건 지지할 것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의원 개개인의 합리적 판단에 따라 자율적으로 의결하도록 했다(p228)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안건에 부닥치면 여야를 막론하고 농성부터 하는 장면을 연내행사처럼 겪어서 그런지, 1991년에 이토록 민주적인 의회민주주의를 이룩해낸 그들이 참 존경스럽다.

 

한국과 독일의 상황을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베를린, 베를린을 읽으며 진정한 승리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봤다. 무엇보다 우선이 되는 건, 국민들의 행복이 아닐까. 한반도의 통일이 아득히 멀어 보이는 지금, 베를린의 과거를 통해 미래의 한반도가 나아갈 방향을 생각해본다. 이 책을 통해 막연히 알고 있던 독일의 분단과 통일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여러모로 짙은 여운이 남는다. 아직까지 분단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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