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가 당신의 평온을 깼다면
패티 유미 코트렐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네가
하려는 일은,
헬렌,
아주
도덕적일 뿐만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일이야(p15).
어느
날 갑자기 들려온 입양아 남동생의 자살 소식,
그
소식을 숙부에게 들었고 양부모님은 그녀에게 전화조차 하지 않았다.
가족의
죽음인데 어떻게 동생의 장례식 참석이 의무가 아닌 선택이 될 수 있는가.
패티
유미 코트렐의 『내가
당신의 평온을 깼다면』은
시작부터 굉장히 기괴하다.
어둡고,
무거
우며,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짓눌리는 느낌이 든다.
무엇보다
동생의 죽음의 원인을 형이상학적으로 조사하겠다고 말하는 헬렌의 말에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이런
상황이라면 분명 자신이 얼마나 생산성 있는 사람인가 생각하기 보단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 게 우선이 아닐까.
미국의
중심지 화려한 도시 뉴욕에서 방과 후 문제 학생 감독관으로 일하고 있는 헬렌은 스스로를
‘믿음직
언니’라
칭하며 자부심 있어 한다.
하지만
그녀와 뉴욕은 어쩐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양부모님과 동생이 머물렀던 밀워키도 그녀의 보금자리로 느껴지지 않는다.
분명
존재하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방인,
동생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그녀가 살았던 집으로 가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녀는 환영받지 못한다.
네
손이 닿으면 뭐든 망가진다(p149)며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양아버지의 비난은 정녕 합당한 것인가.
‘내가
당신의 평온을 깼다면 미안해요.’는
내가 사과할 때 쓰는 말이다(p117).
처음에는
이 책의 제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 말을 이중적인 사과의 의미로 사용한다는 말에 그녀가 가엾게 느껴졌다.
헬렌은
왜 항상 누군가의 평온을 깨는 사람인가.
누구보다도
문제아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고 자부심을 가지고 일해 왔던 일터에서는 그녀를 향한 내부감사가 진행된다고 통보해왔고 동생을 잃은 슬픔을 함께
나누려 찾아간 본가에서 양부모님은 그녀를 원치 않았다.
마치
이 말이 그녀의 존재 자체가 누군가의 평온을 깬다는 말처럼 들려 지금껏 이상한 사람으로만 치부했던 그녀에게 동정심이 들었다.
낯선
땅에서 이방인으로 자라야했던 두 남매는 어디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들은 ‘백인’이
되길 바랐다.
우리는
동양인이라는 사실이 몹시 실망스러웠고,
둘
다 원한 적도 없는 이 나라로 보내진 것이 너무나 못마땅했으며,
둘
다 동양인 신분이 아니어서 동양인 칸에 체크한 적이 없다(p91)는
이들의 심경을 온전히 이해해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사실
어딘지 모르게 비틀리고 기묘한 헬렌의 비밀을 알아챈 것 같아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
어둠은 그녀도 보이고 싶지 않을 것이고,
나
역시 알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녀가 보이고 싶지 않을 거라는 건 관여하고 싶지 않은 내 이기심일수도.
결국
우리는 삶의 문제를 스스로 감당하고 자신의 운명을 결정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 내 동생이 목숨을 끊은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p171).
헬렌의
입양아 남동생,
그는
스물 아홉 해를 살았다.
결코
길지 않은 그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으리.
그의
교우관계는 한정적이었고 집 밖보다 집 안에서 머무는 시간이 더 길었다.
이런
그가 결정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자신의
생사여탈권이었다.
동생의
주변을 탐문하고 그의 친구를 만나며 그가 남긴 글을 읽으며 헬렌은 점점 동생의 죽음을 이해하게 된다.
아니,
남겨진
자들이 할 수 있는 건 어쩔 수 없이 이해하고 납득하는 것이 전부리라.
녀석의
자살은 걔 인생에서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 한 일이었고,
걔가
할 수 있는 가장 관대한 일이었다(p245)는
이 생각에,
그녀는
진정 동의하는가?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고 사람들은 분주하게 그 가족들을 위로한다.
그
마음이 어디까지 진심일까.
헬렌과
양부모의 울타리는 항상 위태위태해 보인다.
이렇게
방치할거면 왜 입양을 했을까?
양부모에게
따져 묻고 싶어진다.
정말
헬렌과 입양아 남동생은 그들에게 진짜 가족이었을까?
자살을
택한 청년에게 최선이었다 말할 수 있을까.
결핍은
더 큰 결핍으로 이어져 마침내 스스로를 돌볼 수 없을 지경에 이른 사람이 할 수 있는 선택이 과연 자발적일지 고민해보게
된다.
책을
덮고도 참 여러 가지로 기분도 찝찝하고 오랜 여운이 남았다.
작가는
이 책이 자신의 회고록이 아니라 강조한다.
하지만
책 속에 잠식된 깊은 어둠은 어디서 왔겠는가.
이
세상 그 누구도 누군가의 평온을 깨는 존재가 결코 아니라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