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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찾아서 ㅣ 창비시선 438
정호승 지음 / 창비 / 2020년 1월
평점 :

먼
산에 꽃은 또 피는데
도대체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진달래를
물고 나는 새들에게 있는가
당신을
찾아서 中
피
끓는 20대에
첫 시집을 냈던 시인은 70대의
원로시인이 되어 어느덧 인생의 열세번째 시집을 냈다.
뜻대로
행하여도 도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종심에 이르러 정호승 시인이 세상에 선보인 새 시집은『당신을
찾아서』다.
이제와
무엇을 찾고 싶은 걸까.
백여
편이 넘는 시를 읽다보면 시인이 찾고자 하는 대상은 그때그때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때론
어머니를 찾고,
때론
절대자를 찾고,
때론
세상에서 하찮기 그지없는 것들을 찾아 헤맨다.
사무엘
베게트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연상된다.
시인이
찾고자 하는 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걸까,
평생
당신을 찾아다녔으나 찾지 못하고(p26)
결국
고개를 떨궜을 시인이 떠올라 마음이 영 편치 않다.
시인이
말하길 이
시집은 불가해한 인간과 인생을 이해할 수 있는 두가지 요소,
즉
사랑과 고통의 본질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과정 속에서 쓰인 시집이라(p183)
밝혔다.
어머니를
그리는 시인의 지극하고 절절한 사랑에 나의 효심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렇다면
고통,
고통의
본질은 무엇인가.
사랑의
본질은 추상적으로나마 떠올릴 수 있는데 고통은 별로 알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다.
그래서
인간은 고통 앞에서 무방비하게 무너지나보다.
새는
하늘에다 똥을 누는 것이 아니라
결국
땅에다 똥을 두는 것이다
새똥이
있어야
인간의
길이 아름답다고
그
길을 걸어가야
내가
아름답다고
새똥
中
대게
사람들은 시에 ‘꽃’이
들어간 걸 참 좋아한다.
제목은
꽃이어도 내용에는 꽃 한 송이 찾아볼 수 없는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가
많은 이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건 울적한 마음이 들 때 ‘울지
마라’는
강렬한 한 마디가 모순되게도 오히려 더 큰 위로가 되어 줄 뿐만 아니라 시를 읊을 때 마다 외로움에 사무치는 한 떨기 가련한 수선화가 연상되기
때문일 것이다.
아름다운
대상에 비극적 감정이 더해지면 그 대상에 나를 투영해 상상하기 참 좋다.
시인의
의도와는 어긋날지 몰라도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낀다.
추한
것보다는 아름다운 것에 더 눈길이 가는 게 인간의 본능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 시집의 첫 장을 넘기자마자 시인은 ‘새똥’을
말한다.
새똥이라니!
도대체
새똥을 정호승 시인처럼 세심하게 관찰하는 사람이 조류학자가 아닌 이상 이 세상에 몇이나 있겠단 말인가!
시인은
새똥을 통해 아름다움을 알 수 있다 말한다.
이
시집에 등장하는 새똥,
해우소,
개똥
이런 추한 것들은 결국 고통의 또 다른 이름이란 말인가.
이번
시집을 준비하며 “사랑
없는 고통은 있어도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는
김수환 추기경님의 말씀을 내내 잊지 않았다는(p184)
시인의
말이
참
알쏭달쏭하다.

무엇을
사랑했느냐고 묻지 마시게
누구를
사랑했느냐고 묻지 마시게
사랑할수록
무슨 할 말이 남아 있겠는가
밥이
눈물이 될 때까지 열심히 살았을 뿐
…
…
…
사랑할수록
사랑을 잃은 내가
무슨
인생의 길이 될 수 있겠는가
시간에게
中
사랑의
본질역시 어렵다.
눈에
보이는 존재,
상상할
수 있는 존재는 딱 꼬집어 사랑이라 말할 수 있지만 그 본질이 무엇이라 말하려니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끝없는
시간 앞에서 고작 인간밖에 되지 않는 우리가 어찌 ‘사랑’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시인은 끊임없이 묻지 말라 말한다.
알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거늘.
왜
굳이 알고자 하는가!
그럼에도
나의 무지를 겸허히 받아들이지만 끝까지 반항하는 인간의 잡초 같은 근성이 느껴진다.
지은
죄는 없지만
면죄부를
주신다면
내
죄를 다 고백하리
면죄부
中
시인은
절대자를 믿는가.
그를
미워하면서도 사랑하는 양가적인 마음은 결국 인간의 감정은 하나로 이어진다는 걸 보여준다.
대립되는
시어들은 모순적이게도 오히려 그 뜻을 명확하게 한다.
그의
죄는 무엇이기에 죄가 없다면 서도 면죄부를 간절히 바라는가.
인간이란
대체 무엇이기에 제 인생을 돌아보며 마음이 갈대처럼 휘청휘청 거린단 말인가.
시는
참 어렵다.
하나의
시도 온전히 읽을 수 없는 나의 메마른 감성을 탓하면서도,
겨우
몇 줄 만 알아들을 수 있는 시를 쓴 시인을 원망해본다.
아직
내 삶이 농익지 않아서일까.
인생의
희로애락을 온전히 느끼지 못해서일까.
당신을
찾는 여정이 내게는 영 순탄하지 않다.
정호승
시인의 바람처럼 내게도 진리의
붓으로 자비의 먹물을 찍어 내 어두운 욕망의 눈동자에 점안해 주시길(p22).
당신을
찾는 이 길을 걸을 때 부디 이 시집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나침반이 되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