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사화 조선 핏빛 4대 사화 4
한국인물사연구원 지음 / 타오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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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가 중, 고등 학교때 배운 역사가 한 번도 왜곡되었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었다.

단지 역사는 역사일 뿐 그냥 옛 이야기로만 생각했고 그 시절엔 당연히 권력과의 싸움으로 인해 부모는 물론 자신의 신화나 백성을 죽이는 일이 대소롭지 않다 여겼다.

한국인물 역사 연구원에서는 원장 이원석 박사를 중심으로 우리가 미처 느끼지 못했고 잊혀져만 갔던 왜곡된 역사를 밝혀 과거를 단지 과거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많은 점을 배우게 하였다.

조선시대 4대 사화는 정치적인 탄압과 그로 인해 온 백성이 울부짖었으며 단순한 권력 싸움에만 그 영향이 미친것뿐만 아니라 당시의 사회, 경제적인 변동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는 정치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사화는 조선중기에 신진 사류의 훈신과 척신들로부터 정치적인 탄압을 말하며 총 4건의 사화가 조선시대 때 일어났다.


1. 1498(연산4) 무오사화는 김일손 등 신진사류가 유자광 중심의 훈구파에게 화를 입은 사건이다. 사초가 발단이 되어 일어난 사화로 조선시대 4대사화 가운데 첫 번째 사화이다

2. 1504(연산10) 갑자사화는 갑자년에 연산군의 생모인 성종비 윤씨의 폐출과 사사에 대한 연산군의 보복과 이를 기화로 척신세력이 훈구사림세력에게 화를 입힌 사건이다.

3. 1519(중종14) 기묘사화는 기묘년에 일어난 사화이다. 죽음을 수반한 재앙으로 남곤, 홍경주 등의 훈구파에 의해 조광조 등의 신진 사류들이 숙청된 사건이다.

4. 1545(명종1) 을사사화는 조선 왕실의 대윤(인종의 외척)과 소윤(명종의 외척)의 반목으로 일어난 사림의 화옥으로 소윤이 대윤을 몰아낸 사건이다.


이 책에서는 네 번째 사화로 을사사화에 얽힌 이야기와 그에 관련된 인물들을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


중종이 세상을 떠나자 인종이 제 12대 왕이 된다.

그러나 중종의 외척 세력이 두 갈래로 갈리게 되는데 인종의 외숙 윤임을 대윤(사림파)이라고 불렀고 문정왕후의 동생 윤원형을 소윤(훈구파)이라 불렀다.

중종이 죽기 전에 대윤과 소윤의 싸움은 치열해졌다.

인종은 성품이 부드럽고 여린데 비해 대윤이 왕위를 잇자 문정왕후는 자신의 소생을 왕위에 올리게 위해 무단히 애를 섰는데 그녀는 여장부 기질이 타고 났으며 조선 역사상 가장 권력을 많이 잡았던 왕후이기도 하다. 그만큼 욕심도 많았고 야심도 큰 여자이다.

인종이 왕위에 오르자 대윤 일파의 세력은 날로 강해 졌으며 그동안 중립선을 타고 있던 사람들도 대윤으로 몰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광경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은 문정왕후였다. 인종의 목숨을 무단히 없애려 노력했고 문정왕후의 노력 탓인지 모르지만 마침내 인종은 즉위한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고 죽은지 닷새만에 문정왕후의 소생 이환이 13대왕 명종에 즉위하게 된다. 당시 명종은 어린 나이였기에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였다. 한마디로 권력을 휘두를수 있는 힘이 생긴 것이다. 인종때는 소윤이 많은 박해 사건이 없었지만 명종이 즉위하자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고 말았다. 많은 움모와 밀고로 인해 소윤의 세력이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대윤의 세력들을 하나하나씩 제거해 나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대윤의 우두머리인 윤임마저도 제거에 성공한다. 뿐만 아니라 윤원형은 자신의 형으로 인해 자신이 화를 입을까봐 형까지 죽였으며 대윤의 세력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즉각 처리하였을 정도로 문정왕후와 윤원형은 피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 을사사화로 인해 윤원형 일파의 음모로 화를 입은 반대파 명사들은 100여 명에 달하였다고 한다. 을사사화는 표면적으로는 윤씨 외척간의 싸움이었으나 사림파에 대한 훈구파의 공격이었다.


권력 앞에선 형제도 없고 눈물도 양심도 없는 4대 사화를 읽으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를 함께 읽으면 보다 이해가 잘 되고 이어지는 내용들이 많아서 한편의 사극을 보는듯한 느낌을 받을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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