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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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자전거 페달을 밟는 마음으로

장류진, 『연수』(창비, 2023)

아득하고 두려운 미래의 직전에서

손등을 어루만지는 응원의 이야기

첫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을 성공적으로 출간하면서 첫 장편소설 『달까지 가자』를 연이어 흥행시킨 장류진의 두 번째 소설집 『연수』가 출판사 창비에서 출간되었다. 청춘의 생활을 정밀하게 반영하면서도 삶의 환한 면면을 드러내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장류진은 이번 소설집에서 표제작이자 젊은작가상 수상작인 「연수」를 포함한 여섯 가지의 단편소설로 독자들에게 막강한 재미를 선사한다.

가끔 정말 잘 사는지 모를 때가 있다. 이 길이 맞는지, 무엇을 삶에 우선으로 두고 생활하려 하는지 몰라서 어지럽다. 가끔 아주 우울하고 자주 지루하다. 생활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단조로워지면서도 그림자가 짙은 오후로 변한다. 하지만 이런 생활도 주변의 사람으로 인해 살아나기도 한다. 일상의 평범함을 묻는 대화나 피부를 맞대며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농담이 내일을 기대하게 할 때도 있다. 이러한 특별함은 아주 사소하지만 빛난다. 해변의 모래처럼 가벼우면서 아름답다.

장류진의 『연수』에서는 단조로운 생활에 약간의 변주를 주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용감하면서도 어딘가 불안함이 있는데 다른 인물들과 만났을 때의 시너지로 용감함을 표출하는 인물로 변화한다. 그들은 주인공들 옆에서 주인공이 못하는 것을 도와주기도 하지만, 초반에는 신경을 자극해서 주인공의 일상을 뒤흔든다. 흔들린 일상은 이전의 일상이 어딘가 부자연스럽거나 좋지 못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기표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장류진만의 변주는 무작정 위로를 건네거나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아서 독자에게 만족을 준다. 여성의 문제나, 사회의 문제 등 시의성이 있는 주제를 중심으로 독자에게 건네는 용기는 어딘가 조금 때가 탔지만 단단하고 부서지지 않을 것만 같다. 작가도 그런 것들을 노리지 않았을까?

나는 그럴 때마다 겨우 이런 일이, 결국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손끝에서 결정되어버리는 일이,

일생의 가장 기쁜 순간씩이나 되는

그런 삶은 결코 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연수」 중에서

표제작인 「연수」는 운전공포증을 앓는 주연의 이야기다. 주연은 살면서 실패를 해본 경험이 없고 열심히 삶을 사는 여성이다. 하지만 실패해 본 적 없는 주연에게도 단 하나의 실패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운전이다. 언제까지고 운전을 하지 않을 순 없어서 주연은 맘카페에 가입해 엄마 나이대이면서도 ‘일타강사’로 소문난 여성 운전 강사를 만나게 된다. 둘이서 운전을 시작하면서부터 서사는 시작된다.

나는 운전을 정말 싫어하고 무서워한다. 주연과 비슷하지만 나는 남성이어서 운전을 못 한다는 사실이 다른 사람에게 더 큰 단점으로 보이곤 했다.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저렇게 사랑으로 배운 운전이라면 정말 운전을 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운전 강사는 어딘가 드세면서도 따뜻해서 주변의 따뜻한 어른 한두 명 정도를 떠올리기도 했다. 동시에 이 소설은 운전 강습만을 이야기하지 않아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주인공인 주연의 엄마와 주연과의 서사 또한 눈여겨볼 부분이었는데, 엄마는 주연의 성취를 기쁨으로 삼는 사람이었고 주연은 그런 모습을 보며 자신은 저렇게 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나는 이 장면에서 조금 의아했다. 누군가의 성취가 자신의 기쁨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나의 안위보다 더 아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도 삶의 축복 중 하나 아닐까. 이 대목은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민할 관계라는 포인트는 어딘가 기이하면서도 너무 따뜻하다. 아주 따뜻해서 떨어지고 싶을 만큼.

장류진의 소설은 여러 지점을 건드린다. 이번 소설에서는 격려하는 마음을 중심으로 서사를 이어가지만, 서사의 주변에는 사회의 문제를 건드리기도 하고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독자는 단편을 읽으면서 많이 사랑받고 답답해하며 슬퍼할지도 모른다.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 모든 것이 기쁨으로 느낄 수는 없다는 것. 하지만 장류진은 독자의 자전거 안장 뒤에 짐을 실을 수 있는 부분을 잡아준다. 독자가 이 이야기를 다 훑고 혼자서 서사 바깥으로 나아갈 수 있게끔 말이다. 어느새 뒤를 돌아보면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주변에는 많은 사람이 있을 게 분명하다. 장류진의 소설을 읽었기 때문이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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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라이프
가이 대븐포트 지음, 박상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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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살아있는 이야기

가이 대븐포트, 박상미 옮김, 『스틸라이프』(을유문화사, 2023)


방대한 예술의 세계가

단 하나의 사과 속에 있다

가이 대븐포트의 『스틸라이프』가 을유문화사에서 출간되었다. 정물화로 그려진 정물에 관한 이야기를 살펴보고, 정물이라는 소재가 등장한 고대에서 중세, 현대까지를 아우르고, 미술사와 자연사, 고대 그리스 문학부터 대중소설 등에 나타난 정물을 탐색한다.

우리는 정물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흔히 정물이라는 단어의 어감을 서양화의 정물화를 생각하면서 어렵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앉기 위해 사용하는 의자도 정물이고 학교나 천장에 매달린 조명도 정물이다. 가만히 있는, 정지하여 움직이지 않는 무정물이 바로 정물이다. 삶에서 흔히 포착되는 물건이기에 정물은 많은 예술품으로 활용되었다. 사람들은 사물에 이야기를 붙이고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하거나 예술 작품에 접목하여 새로운 세계의 포문을 열었다. 물론 지금도 이러한 방식으로 많이 활용된다. 그만큼 정물은 우리의 삶에 친숙하면서도 무궁무진한 세계를 품는다.

많은 이야기를 품은 정물을 그림으로 표현한 정물화의 역사는 고대 신석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17세기 서양 정물화에서 가장 번성하였다. 이렇게 오래된 장르인 정물화는 많이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미술사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 있다. 다른 추상적이고 강렬한 장르와 비교하였을 때 가치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서도 평범한 정물(정물은 영어로 still life, 프랑스어는 nature morte로 직역하면 ‘부동의 생물체’, ‘죽은 자연’ 정도로 해석된다)이기에 그것을 재현하는 정도로만 여겼기 때문이다.

가이 대븐포트는 이러한 입장에 반론이라도 내놓듯 아주 넓게 정물을 탐색한다. 정물이 표현하는 아주 사소하고도 복잡한 서사를 제시한다. 그리고 그 서사가 정물이라는 한 점으로 수렴되는 과정을 집요하게 따라가면서 정물의 가치를 책으로 내놓는다.

역사를 통해 한 정물화가 다른 정물화에 대해 갖고 있는

일종의 혈연관계는 다른 장르들,

즉 풍경화가 풍경화에 대한,

초상화가 초상화에 대한 관계보다 훨씬 두텁다.

이게 정물화가 지니는 본질적인 미스터리다.

「여름 과일 광주리」 중에서

책에서 주장하는 정물의 의미는 인드라망에 가깝다. 무언가 연결되어 그것을 설명하지 않고는 저것을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관계다. 말하자면 정물은 인간적이면서도 삶을 축소한 것과 같다. 저자는 이러한 정물의 세계를 피카소의 큐비즘, 과일 바구니에 든 잘 익은 사과, 에드가 엘런 포의 고딕 작품 등을 통해 다방면으로 살펴본다. 저자가 보여주는 정물의 서사는 흥미롭다. 정물을 말하고 있지만, 정물 이후의 세계를 살피면서 정물을 더욱 흥미로운 이미지로 변환한다. 이러한 작업은 예술과 문학의 아름다움을 확장하는 하나의 예시로 보인다. 정물은 어떤 단서가 되기도 하면서도 앞장서서 무언가를 말하는 등불이 되기도 한다.

책을 다 읽고 덮자 집의 풍경은 조금 이상하고 신비로워 보인다. 아무렇게나 쌓인 책과 나의 침대에는 어느새 내가 밝혀내야만 하는 서사가 숨어있는 듯하다. 저자는 이러한 점들을 노린 것일 수도 있다. 자신이 보여주는 정물의 세계를 통해 독자의 가장 가까운 보금자리에는 어떤 서사가 있는지 스스로 밝혀내게끔 한다. 이러한 행위는 예술과 문학만이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이다. 어느새 『스틸라이프』 또한 나의 이야기가 담긴 하나의 정물이 되었다. 나는 이것으로 무슨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나. 가끔 이야기는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찾아내는 것에 가까울 때가 있다. 이미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다고, 그것을 발견하고 내 손에 쥐었을 때 이야기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것을 보여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어떤 정물이다. 정물은 변하지 않기에 여러 방향으로 빛을 비출 수 있다. 그것의 등 뒤로 그림자가 여러 방향으로 쏟아지는 오후를 생각한다.

이야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상당히 흥미로운 과거들이 숨어있어 그것을 발견하고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일부러 하지 않았지만, 꺼낸다면 쉴 새 없이 쏟아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책 한 권을 내놓는다. 당신이 그것을 연다면 정물은 이야기를 할 것이다. 여전히 죽지 않고 살아있는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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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곳에서 만나요
이유리 지음 / 안온북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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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으로 여는 사랑의 미래

이유리, 『좋은 곳에서 만나요』(안온북스, 2023)



삶의 저편에서 바라보는

무너질 수 없는 사랑의 미래

202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부문으로 등단하여 『브로콜리 펀치』(문학과지성사, 2021)로 첫 소설집을 출간한 이유리 소설가의 첫 연작소설집 『좋은 곳에서 만나요』가 안온북스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따뜻한 상상력과 독특한 낙관적 태도를 통해 보여주었던 이유리는 이번 연작소설에서 긴 호흡으로 각각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순간을 죽음이라는 현상을 통해 보여준다.

죽음 이후를 생각하지 않았다. 죽음의 이전을 삶이라 부르지만 이후는 무엇이라고 확실히 부를 만한 용어가 없었기 때문이다. 용어가 없다는 건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고 보이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추상적인 현상에 어떤 생각을 더하거나 상상한 적은 딱히 없었다. 하지만 죽음과 삶을 생각해야만 하는 순간이 왔을 때 과연 죽음 이후의 나는 어떤 존재로 남아있을까, 나의 존재가 세계에 어떤 영향을 줄 수나 있을지 잠시 생각하기도 했다. 결론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지만, 나를 제외한 나의 주변에 남은 나의 흔적이 나머지 사람들의 삶에 어떤 좋은 영향을 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귀결되곤 했다.

이유리의 『좋은 곳에서 만나요』는 여섯 편의 소설로 이루어져 있으며 모든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이전에 수록된 소설에 등장한 화자와 아주 잠시 스쳤거나 얽힌 인물이다. 그들은 자신의 죽음 이후의 세계에서 스스로 생을 마무리하는 과정을 거친다. 죽음이라는 현상은 비통하고 슬픔으로만 읽힐 수밖에 없었을 텐데 이유리는 특유의 낙관으로 이러한 시선을 뒤엎는다. 슬픔은 더 세밀하게 묘사하면서도 그곳에서 발생하는 사랑과 기쁨, 스스로 발견하는 희망을 허투루 넘기지 않으며 그것을 확실히 바라본다. 그리고 기꺼이 희망의 곁으로 향한다. 희망의 옆으로 가는 길에 자신의 슬픔과 비통함을 모두 겪어야 해도 말이다.

그러나 수억만 분의 일의 확률로, 무작위로 내달리던 두 갈래의 빛이

어딘가에서 다시 겹쳐지는 찰나가 있다면,

나는 이제 알고 있었다.

그 찰나를 붙잡아두는 방법을,

그저 소중하고 소중하게 누리는 방법을.

「아홉 번의 생」 중에서

이유리의 소설은 뻔한 것을 뻔하지 않게 말하려고 한다. 죽음의 문턱을 넘은 화자들이 자신이 몸담았던 세계의 모습을 바라보며 어떤 희망과 사랑을 얻는 내용을 이유리의 시선으로 재해석한다. 마치 앞으로만 보면서 가던 길을 뒤를 돌아서 뒤로 걷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화자가 겪었던 찰나를 다시 돌아보며 급하지 않게 결론에 도달하려 한다. 심지어 결론에 도달하지 않아도 화자가 직접 두 눈으로 희망을 보게끔 하여 그 희망이 미래에 닿을 것이라는 확신을 독자에게 제공한다.

나는 이유리의 언어가 단언하지 않아서 좋았다. 확실한 건 없다고, 찰나와 과정이 합쳐져 복잡하고 다채로운 세계를 재현하는 능청스러움도 좋았다. 이러한 이유리만의 소설은 당혹스럽고 어두운 세계에 사라져가는 희망과 사랑의 자리를 마련하고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미래를 낙관으로 확장한다.

그리고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 해답은 내버려두는 일,

다만 그것뿐이었다는 사실을.

세계에 일어나는 일들을 한발 물러나서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

불완전함에서 완전해지려고 안간힘을 쓰는 이들을

다만 애정 어린 눈으로 끝까지 지켜보는 것.

「이 세계의 개발자」 중에서

이유리는 불완전한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걸까. 그는 세계의 개발자가 되어 세계를 이해하려 한다. 어떻게 우리가 사는 세상을 짓고 부수며 사람을 살게 하는 걸까. 계속해서 오류가 발생하고 그것을 고치는 신의 입장을 게임 개발자인 화자의 모습을 통해 독자에게 보여준다. 완전함에 다다르는 길은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사건을 통해 보여주며 이유리가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알려준다.

이는 나라는 인간을 어떻게 사랑하고 그 사랑을 삶의 먼 미래까지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는지를 말하는 것과 같다. 조금 더 가벼워지기. 애를 쓰면 쓸수록 점점 더 깊은 방파제로 빠져드는 것처럼 가볍게 오르는 일만이 전부일 때는 그것을 행하기. 단순한 삶의 태도가 어쩌면 영원하지 않은 세계의 메커니즘을 설명할 수 있는 단서가 되지 않을까. 이유리는 자신만의 낙관적인 태도로 그것을 시도하려 한다.

유령의 모습이나 다른 존재의 모습으로 사랑을 직접 확인하려는 이유리의 태도는 현재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냉소적이고 딱딱한 태도가 기저에 깔리게 되는 세계에서 영원을 쫓고 사랑을 하겠다는 고백은 낭만을 넘어 어떤 의지로도 읽힌다. 영원히 영원을 찾아 사랑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의 용기는 세상의 그 어떤 냉소보다 더 단단하고 깨지지 않을 것만 같다. 이러한 태도는 독자들에게도 영원과 사랑을 믿을 수 있게끔 도와줄 것이다. 적어도 나는 이유리가 행하고 입증하려는 사랑의 미래가 좋은 곳으로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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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열한 시장과 도마뱀의 뇌 - 경제학과 뇌과학이 밝혀낸 초수익을 내는 비상식적 투자 법칙
테리 번햄 지음, 이주영 옮김, 이상건 감수 / 다산북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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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의 이해로 투자를 성공하다



비열한 시장에서 도전하는 합리적인 투자

도마뱀의 뇌로 시장에서 살아남는 법

테리 버넘의 책 가 다산북스 출판사에서 20년 만에 복간되었다. 테리 버넘은 '도마뱀의 뇌'라는 현대 경제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 학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킨 당대 최고의 투자경제학자이다. 현재 경제학을 가르치는 교수로 채프먼 대학교에서 재직 중이다.

투자를 처음 경험하는 사람일수록 투자는 멀고 어려워 보인다. 용어부터 시작해서 매커니즘, 방법 등과 같은 것들이 투자를 주저하게끔 한다. 그렇다면 투자에 경험이 있다면 투자가 쉬울까? 전혀 그렇지 않다. 투자는 계속해도 어렵다. 시장의 변화, 자본의 흐름 등 아무 무수한 변동 요소가 있고 날마다 변하는 경제 상황과 정치 상황으로 시장의 예측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의 입장에서 투자는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막막하다. 무슨 말인지도 모를 그래프와 이상한 표현들로 이루어진 경제 보고서 등 그것들을 해석하려 시도하면 벽에 머리를 박는 것처럼 어지럽다. 정확한 표현으로는 시장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어떤 계산을 근거로 한 예측을 바탕으로 시장에 뛰어들었기에 늘 손해를 본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시장에서 늘 지기만 하는 개미에게는 피드백이 필요하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되물어야 할 차례이다.

비열한 시장과 도마뱀의 뇌에서는 투자에 실패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말한다. 그것은 바로 본성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것. 인간의 뇌는 농업이 발명되기 전부터 존재했던 조상들의 세계에 맞춰진 뇌의 배경이 아직까지도 존재한다. 수집과 채집을 하며 위험으로부터 몸을 숨기는 생활은 지금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지만 여전히 인간의 본성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점을 언급한다. 위험에서 도망치도록 설계된 뇌로 살아가는 현대의 인간들에게는 현대의 금융시장과는 맞지 않았고 본능이 투자자를 잘못된 길로 인도한다고 한다. 실패와 어려움에서 계속 도망가고 투자에 실패하도록 설계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본능을 가지고 있는 인간에게는 어떠한 방식의 노력이 필요한 걸까. 18년 전의 분석인 이 책은 현재에도 시간적 이질감 없이 독자들에게 시장을 바라보는 통찰을 알려준다. 인간의 뇌를 ‘도마뱀의 뇌’라고 칭하며 이 뇌를 시장에서 이용하는 방법에 관해 말한다.

금융시장이 우리를 좌절시키는 이유는 우리의 뇌가

과거를 돌아보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시장은 비합리적이며, 도마뱀의 뇌는 우리를 손실로 이끈다.

출처 입력

우리의 본능이 투자에 맞지 않다는 것은 조금 놀라웠다. 이 말은 인간의 본성을 경제 투자 활동을 중심으로 하여 이해할 때 더욱 큰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본성을 이용한 투자, 비열한 시장, 도마뱀의 뇌에서는 이러한 지점들에 주목한다. 심리적인 부분이 어떻게 인간을 투자에서 도태되게 만드는지, 독자는 비열한 시장을 우리에게 어떻게 유리한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를 말한다. 비열한 시장에 잘못 대처했다가는 큰 손해를 얻을 수 있기에 우리는 조금 더 유리하고 똑똑한 판단이 필요하다. 저자가 제시하는 여덟 가지의 행동수칙을 통해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고 지켜주지 않는 세상에서 우리는 조금 더 스스로를 지키는 것에 힘을 써야 꼬리를 자르지 않고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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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처럼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7
임솔아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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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더듬으며 천천히 찾아내고야 마는

임솔아, 『짐승처럼』(현대문학, 2023)



공존을 향한 위태로운 관계의 재정립

다양하고 무수한 가족을 말하다

임솔아의 『짐승처럼』이 현대문학 출판사의 핀시리즈로 출간되었다. 시집 『겟패킹』 등과 소설집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 장편소설 『최선의 삶』을 연이어 내놓으며 시인과 소설가로 활동하는 임솔아는 이번 소설에서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 가족의 삶을 가부장제의 외부에서 상상하며 덜 폭력적인 방식으로 공존을 말한다.

언젠가 가족을 이해할 수 없겠다고 체념했을 때 보이지 않던 가족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들만의 태도가 있었고 동시에 가족이면서 타인인 각각의 사람에게만 행하는 배려의 방식이 있었다. 나는 멀리서 객관적인 상태가 되어서야 가족을 이해할 수 있었고 다시 가족의 관계에서 어떤 책임이 필요한지, 서로를 위하는 방식에 어떠한 폭력성이 있었는지 주목할 수 있었다. 이처럼 관계를 지속하는 것에 있어 필연적으로 감정을 소모하게 되고 서로를 사랑하는 방식에서 발생하는 폭력이 관계를 뒤흔든다면, 폭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대해야 하는지, 그것을 행하기 위한 책임은 어떻게 짊어져야 하는지 생각해야 할 것이다.

임솔아의 소설 『짐승처럼』은 가족의 관계성에서 발견할 수 있는 폭력성과 관계 맺는 이의 책임은 무엇인지를 탐구한다. 소설은 도망친 유기견을 찾는 사연과 '채빈'과 '나'의 갈등과 화해를 기반으로 진행된다. ‘나’의 이종사촌동생인 '채빈'이 '나'의 집에 남겨지게 되고 '엄마'는 '나'에게 '채빈'이 이종사촌동생이 아닌 친동생이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갑작스러운 친동생이 생긴 '나'는 '채빈'과의 관계에서 서로 마음을 터놓지 못하게 된다. 그러다 '채빈'은 의지할 곳이 없어 길에서 만난 동물과 아이들을 집으로 계속 초대하게 되고 '엄마'는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다. '엄마'의 죽음을 처음부터 지켜본 ‘채빈'은 '나'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집을 떠나고 ‘나’는 그렇게 홀로 10년을 살다가 다시 '채빈'과 조우하게 된다. 엄마의 죽음 이후 10년 만에 나타난 '채빈'에게 사실 집으로 동물을 끌어들인 사람이 자신이 아님을 듣게 되고 뒷이야기를 알게 된다. 이후 ‘별나'라는 강아지를 키우며 '별나'의 엄마인 '유나'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찾게 되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짐승처럼』은 기묘하고 어딘가 풀리지 않는 매듭을 하나씩 풀어내려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관계를 진심으로 들여다보려는 태도에서 발생하는 분위기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임솔아는 왜 가족 간의 이야기에 동물을 개입하게 되었을까. 동물은 과거에서부터 인간과 함께 지내왔다. 애완이라는 명칭이 붙은 애완동물에서부터 지금의 반려동물로까지 비인간으로서 그들의 명칭과 대우는 변화되었으며 그들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 또한 바뀌었다. 과거에는 집을 지키는 짐승, 생활에 도움이 되는 짐승이었다면 지금도 인간의 곁을 지키긴 하지만 과거에 그들의 역할보다는 멀리 벗어나져 있다. 보호의 의미로 지킨다는 개념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로 곁을 지킨다는 의미로 바뀌었다. 지금의 동물은 인간의 곁에서 인간과 함께 살아간다. 이제 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가족과 다를 게 없다. 인간으로서의 가족과 비인간으로서의 가족은 외향적 특징을 제외하고는 차이를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아직도 동물을 가족이라 부르면서도 과거의 의미에 가두어 폭력을 행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의 행위는 가정폭력이라 할 수 있지만 동물은 여전히 동물이기에 동물 학대라 불린다. 임솔아는 여기에서 발생하는 동물과 가족의 범위에 관해 탐구하고 더 나아가 동물과 가족, 가족과 가족 모두를 연결하는 관계성이 어떤 식으로 현재 발현되어 있는지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이를 통해 가족 간의 관계성과 가족이라 불리는 관계에 동물은 어떻게 대우받고 있는지, 비인간의 자리를 조명하고 조금 덜 폭력적으로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방법을 탐구한다.

채빈은 닭들의 이름을 하나씩 말해주기 시작했다.

우리와 함께 살았던 모든 동물들,

그리고 우리 집에서 머물렀던 아이들의 이름을,

어떤 오해는 단순한 계기로 풀릴 수 있다. 아주 단단해서 풀리지 않을 것 같은 털실도 어느 한 줄기만 잡아당겼는데 풀리기도 한다. 오히려 풀기 위해 애쓰고 힘을 더 줄수록 오해는 더 단단해지고 손쓸 수 없게 될 때도 있다. '채빈'과 '나'의 이야기는 털실의 형태를 파악하기 위해 사방으로 살펴보고 최대한 구조를 이해하려는 이야기로 읽힌다. 그들을 둘러싼 반려견인 ‘별나’의 이야기도 그들의 오해에서 가장 큰 가족이라는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더 넓은 범위로써의 확장을 시도한 것은 아닐까. '채빈’과 ‘나’가 이해하는 가족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들 주변에 있는 진정한 의미의 가족을 둘러봐야 했을는지도 모른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가장 미울 때가 있다. 나는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미울 때 내가 가지고 있는 그 사람과의 관계를 생각한다. 이 사람과 어떤 관계이며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지, 그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그렇게 해도 미움이 산불처럼 번질 때 나는 이야기를 한다. 정말 밉다고. 그러면 그것에 관한 피드백이 돌아온다. 그곳에서부터 대화가 시작되고 털실이 무너진다. 가장 부드러운 형태로, 서로를 끌어안기 좋은 부드러움으로. 짐승처럼은 서로를 가장 따뜻하게 안는 방식이 아닌, 아프지 않게 부드럽게 안는 방식을 말한다. 그것은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가 행해야 할 이해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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