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처럼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7
임솔아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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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더듬으며 천천히 찾아내고야 마는

임솔아, 『짐승처럼』(현대문학, 2023)



공존을 향한 위태로운 관계의 재정립

다양하고 무수한 가족을 말하다

임솔아의 『짐승처럼』이 현대문학 출판사의 핀시리즈로 출간되었다. 시집 『겟패킹』 등과 소설집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 장편소설 『최선의 삶』을 연이어 내놓으며 시인과 소설가로 활동하는 임솔아는 이번 소설에서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 가족의 삶을 가부장제의 외부에서 상상하며 덜 폭력적인 방식으로 공존을 말한다.

언젠가 가족을 이해할 수 없겠다고 체념했을 때 보이지 않던 가족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들만의 태도가 있었고 동시에 가족이면서 타인인 각각의 사람에게만 행하는 배려의 방식이 있었다. 나는 멀리서 객관적인 상태가 되어서야 가족을 이해할 수 있었고 다시 가족의 관계에서 어떤 책임이 필요한지, 서로를 위하는 방식에 어떠한 폭력성이 있었는지 주목할 수 있었다. 이처럼 관계를 지속하는 것에 있어 필연적으로 감정을 소모하게 되고 서로를 사랑하는 방식에서 발생하는 폭력이 관계를 뒤흔든다면, 폭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대해야 하는지, 그것을 행하기 위한 책임은 어떻게 짊어져야 하는지 생각해야 할 것이다.

임솔아의 소설 『짐승처럼』은 가족의 관계성에서 발견할 수 있는 폭력성과 관계 맺는 이의 책임은 무엇인지를 탐구한다. 소설은 도망친 유기견을 찾는 사연과 '채빈'과 '나'의 갈등과 화해를 기반으로 진행된다. ‘나’의 이종사촌동생인 '채빈'이 '나'의 집에 남겨지게 되고 '엄마'는 '나'에게 '채빈'이 이종사촌동생이 아닌 친동생이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갑작스러운 친동생이 생긴 '나'는 '채빈'과의 관계에서 서로 마음을 터놓지 못하게 된다. 그러다 '채빈'은 의지할 곳이 없어 길에서 만난 동물과 아이들을 집으로 계속 초대하게 되고 '엄마'는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다. '엄마'의 죽음을 처음부터 지켜본 ‘채빈'은 '나'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집을 떠나고 ‘나’는 그렇게 홀로 10년을 살다가 다시 '채빈'과 조우하게 된다. 엄마의 죽음 이후 10년 만에 나타난 '채빈'에게 사실 집으로 동물을 끌어들인 사람이 자신이 아님을 듣게 되고 뒷이야기를 알게 된다. 이후 ‘별나'라는 강아지를 키우며 '별나'의 엄마인 '유나'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찾게 되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짐승처럼』은 기묘하고 어딘가 풀리지 않는 매듭을 하나씩 풀어내려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관계를 진심으로 들여다보려는 태도에서 발생하는 분위기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임솔아는 왜 가족 간의 이야기에 동물을 개입하게 되었을까. 동물은 과거에서부터 인간과 함께 지내왔다. 애완이라는 명칭이 붙은 애완동물에서부터 지금의 반려동물로까지 비인간으로서 그들의 명칭과 대우는 변화되었으며 그들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 또한 바뀌었다. 과거에는 집을 지키는 짐승, 생활에 도움이 되는 짐승이었다면 지금도 인간의 곁을 지키긴 하지만 과거에 그들의 역할보다는 멀리 벗어나져 있다. 보호의 의미로 지킨다는 개념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로 곁을 지킨다는 의미로 바뀌었다. 지금의 동물은 인간의 곁에서 인간과 함께 살아간다. 이제 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가족과 다를 게 없다. 인간으로서의 가족과 비인간으로서의 가족은 외향적 특징을 제외하고는 차이를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아직도 동물을 가족이라 부르면서도 과거의 의미에 가두어 폭력을 행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의 행위는 가정폭력이라 할 수 있지만 동물은 여전히 동물이기에 동물 학대라 불린다. 임솔아는 여기에서 발생하는 동물과 가족의 범위에 관해 탐구하고 더 나아가 동물과 가족, 가족과 가족 모두를 연결하는 관계성이 어떤 식으로 현재 발현되어 있는지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이를 통해 가족 간의 관계성과 가족이라 불리는 관계에 동물은 어떻게 대우받고 있는지, 비인간의 자리를 조명하고 조금 덜 폭력적으로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방법을 탐구한다.

채빈은 닭들의 이름을 하나씩 말해주기 시작했다.

우리와 함께 살았던 모든 동물들,

그리고 우리 집에서 머물렀던 아이들의 이름을,

어떤 오해는 단순한 계기로 풀릴 수 있다. 아주 단단해서 풀리지 않을 것 같은 털실도 어느 한 줄기만 잡아당겼는데 풀리기도 한다. 오히려 풀기 위해 애쓰고 힘을 더 줄수록 오해는 더 단단해지고 손쓸 수 없게 될 때도 있다. '채빈'과 '나'의 이야기는 털실의 형태를 파악하기 위해 사방으로 살펴보고 최대한 구조를 이해하려는 이야기로 읽힌다. 그들을 둘러싼 반려견인 ‘별나’의 이야기도 그들의 오해에서 가장 큰 가족이라는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더 넓은 범위로써의 확장을 시도한 것은 아닐까. '채빈’과 ‘나’가 이해하는 가족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들 주변에 있는 진정한 의미의 가족을 둘러봐야 했을는지도 모른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가장 미울 때가 있다. 나는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미울 때 내가 가지고 있는 그 사람과의 관계를 생각한다. 이 사람과 어떤 관계이며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지, 그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그렇게 해도 미움이 산불처럼 번질 때 나는 이야기를 한다. 정말 밉다고. 그러면 그것에 관한 피드백이 돌아온다. 그곳에서부터 대화가 시작되고 털실이 무너진다. 가장 부드러운 형태로, 서로를 끌어안기 좋은 부드러움으로. 짐승처럼은 서로를 가장 따뜻하게 안는 방식이 아닌, 아프지 않게 부드럽게 안는 방식을 말한다. 그것은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가 행해야 할 이해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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