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대한 예술의 세계가
단 하나의 사과 속에 있다
가이 대븐포트의 『스틸라이프』가 을유문화사에서 출간되었다. 정물화로 그려진 정물에 관한 이야기를 살펴보고, 정물이라는 소재가 등장한 고대에서 중세, 현대까지를 아우르고, 미술사와 자연사, 고대 그리스 문학부터 대중소설 등에 나타난 정물을 탐색한다.
우리는 정물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흔히 정물이라는 단어의 어감을 서양화의 정물화를 생각하면서 어렵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앉기 위해 사용하는 의자도 정물이고 학교나 천장에 매달린 조명도 정물이다. 가만히 있는, 정지하여 움직이지 않는 무정물이 바로 정물이다. 삶에서 흔히 포착되는 물건이기에 정물은 많은 예술품으로 활용되었다. 사람들은 사물에 이야기를 붙이고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하거나 예술 작품에 접목하여 새로운 세계의 포문을 열었다. 물론 지금도 이러한 방식으로 많이 활용된다. 그만큼 정물은 우리의 삶에 친숙하면서도 무궁무진한 세계를 품는다.
많은 이야기를 품은 정물을 그림으로 표현한 정물화의 역사는 고대 신석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17세기 서양 정물화에서 가장 번성하였다. 이렇게 오래된 장르인 정물화는 많이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미술사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 있다. 다른 추상적이고 강렬한 장르와 비교하였을 때 가치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서도 평범한 정물(정물은 영어로 still life, 프랑스어는 nature morte로 직역하면 ‘부동의 생물체’, ‘죽은 자연’ 정도로 해석된다)이기에 그것을 재현하는 정도로만 여겼기 때문이다.
가이 대븐포트는 이러한 입장에 반론이라도 내놓듯 아주 넓게 정물을 탐색한다. 정물이 표현하는 아주 사소하고도 복잡한 서사를 제시한다. 그리고 그 서사가 정물이라는 한 점으로 수렴되는 과정을 집요하게 따라가면서 정물의 가치를 책으로 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