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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 너머 - 범죄 전문 피디의 묻기, 뚫기, 그리고 뒤집어엎기
도준우 지음 / 글항아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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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서 미칠 수 있었던 나날들

도준우, 『스릴 너머』(글항아리, 2024)


온몸으로 부딪히고 솔직하게 파고드는

유쾌하고 진지한 피디의 시간들

글항아리 출판사에서 도준우의 『스릴 너머』가 출간되었다. 코미디언에서 래퍼, 래퍼에서 SBS 예능국 PD, 예능국을 떠나 교양국에 합류해 「그것이 알고 싶다」(이하 그알) 팀에 들어가고, 교양국에서 범죄 전문 피디가 되어 활약하기까지의 기록이 담겨 있다. 자신이 바라고 원하는 것들을 이루기 위해 무모하면서도 당차게 애쓰고 파고든 기록 앞에서 독자들은 진지해졌다가도 웃음을 참을 수 없을 것이다.

나에게는 항상 꿈이 있었다. 가장 처음으로 되고 싶었던 건 동시통역사였다. 아마 성인이 될 때쯤에는 외계인과 대화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싶어서, 동시통역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내가 초등학생이었던 2000년대에는 매번 과학의 날마다 어른이 되었을 때의 미래를 그리는 과제를 받았던 것 같다. 자동차가 날고 로봇이 뛰어다니는...). 중학생 때는 사진작가, 기타리스트, 양식 요리사였고 고등학생 때는 무역을 하겠다고 말했지만 시인이 되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시인이 되고자 한 게 벌써 8년이다. 앞서 언급한 이 꿈들 말고는 나는 꿈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래서 저 꿈들을 이루려고 대부분 1년 정도 넘게 노력을 한 것 같다. 상상하고 바라고 파고드는 시간들이 어쩌면 지금 내가 꾸는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발판이 된 것은 아닐까, 가끔 생각한다.

북클럽문학동네 티저북 서평단에 당첨되어 도준우 피디의 『스릴 너머』를 읽게 되었다. 일부분이긴 하지만 십 대부터 이십 대 그리고 피디가 된 과정과 이후의 일부분을 읽었다. 내가 꿈을 꾸고 그것이 꿈이라고 말하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이 이 사람에게도 있었다. 생각해 보면 꿈이라는 소망만을 두고 보았을 때, 나보다 더 먼저 내가 가려는 길을 걸은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더 몰입하기가 쉬웠다.

『스릴 너머』는 저자가 직업을 갖기 전, 고향인 부산 만덕에서 코미디언이라는 꿈을 가지게 된 이유를 설명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맞벌이를 하셨던 부모님의 빈자리를 채워준 텔레비전은 그에게 코미디언이라는 꿈을 심어주었다. 항상 타인에게 웃음을 전달하려던 그는 텔레비전 방송에 나오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상상은 상상에서 끝이 났다. 그렇게 도준우는 부산에서 서울로 상경해 대학을 다니고 서울대에서 중앙흑인음악동아리인 바운스 팩토리를 친구 둘과 함께 만든다(이 유명한 동아리를 만든 게 저자라니, 정말 신기하다). 힙합에 빠져 상도 받지만, 군대에 다녀온 뒤 그는 예능국 PD가 되기로 결심한다. 랩을 사랑하지만 래퍼가 되기에는 애정이 사그라들었기 때문이다. 이후 그 어렵다는 고시를 한 번에 되고(이 과정도 참 웃기다. 어케..? 이런 반응을 계속했다) PD가 되었지만, 수직 문화에 진저리를 치던 그는 그만두고 교양으로 옮겨 그알에 몸을 담게 된다.

내가 본 내용은 여기까지다. 뒤에는 더 무슨 내용이 있을지 모르지만, 400쪽이나 되는 전체 원고를 한 번에 쭉 훑는다면 내가 느꼈던 재미나 진지함을 배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알 피디의 책이라고 그알처럼 진지하고 범죄로 가득할 거라 생각했던 내 생각을 단숨에 지운 티저북이었다. 가능하면 나중에 전체를 다 읽어보려고 한다. 미쳐서 미칠 수 있었던 사람의 미친 나날들이기 때문에, 그 미친 재미가 이 책에 있기 때문이다.

+ 문동은 티저북이나 이런 것도 후가공 해서 주는 게 신기하다. 역시 제대로 책을 나누고 해야 책을 팔 수 있고 팔리는 책을 내놓을 수도 있구나 싶었다. 본문 디자인도 해서 보낼 줄은 몰랐다. 폰트도 매력적이었고(하시라는 안쪽에 있어서 취향을 탈 것 같다) 특히 각주와 하단에 들어간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저렇게 해도 되는구나 싶기도 했다. 글항아리 참 책 잘 만든다..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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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희의 책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2
김멜라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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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두 눈으로 보려고

김멜라 『환희의 책』(현대문학, 2024)

모든 의문을 들여다 보자

세계는 그보다 더 많은 의문을 가져다 주었다

김멜라의 『환희의 책이 현대문학 출판사의 핀시리즈로 출간되었다. 2021년부터 '젊은작가상'을 연속 수상하고 올해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한 김멜라는 『내 꿈 꾸세요』 등 여러 작품에서 사회적 약자를 조망했다. 다수의 세계에서 소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새로운 소설의 형식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낯설고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는 점에서 지금 한국에서 주목받는 작가 중 한 명이라는 것을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이번 작품 또한 기존의 소설 작법에서 벗어난 형식적 실험을 시도한다. 비인간동물(인간을 제외한 모든 종의 동물, 이하 비인간)의 시선으로 레즈비언(일명 두발이 엄지, 주인공인 호랑과 버들) 커플을 관찰하며 자연의 비밀을 밝히려 하는 세 마리 곤충(톡토기, 거미, 모기)의 연구를 보여 준다. 시나리오 형식으로 소설이 진행되며 지루하지 않은 세계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성은 항상 옳은가? 논리는 늘 통하는가? 나는 잘 모르겠다. 규격화된 이성, 각자에게만 옳은 논리가 세상을 지배하는 듯하다. 그래서 세상은 다양한 것이다. 이 생각은 사랑에도 적용할 수 있다. 사랑은 꼭 '연애 - 결혼 - 2세'의 굴레를 따라야 하는가? 나는 사실 연애도 관심이 없지만, 결혼, 2세는 더더욱 하고 싶지 않다. 요새는 고려하고 있긴 하다만, 이 생각은 고등학생 때부터 이어져 왔으니, 오래된 생각인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해 종을 보전한다. 이 과정은 그들의 일이다. 존중하지만, 나의 일로 맞이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나의 생각은 생각일 뿐이지만, 이러한 생각이 생활인 사람들이 있다. 세상에는 여러 소수자가 있고,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바깥으로 표출하길 겁내지 않아 수많은 상처를 입는다. 상처를 입는 과정에서 병이 생기고 미쳐버린다. 욕망은 더 거세지고 거부하고 싶은 건 더 거부하면서 극단으로 치닫는다. 김멜라의 소설은 이들을 조명한다. 하지만 그들의 시선에서 그들의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다. 비인간의 시선, 벌레의 시선으로 주인공인 레즈비언 커플의 욕망과 슬픔에 파고든다. 연구로써, 관찰로써 아주 차갑고도 집요하게.

김멜라의 『환희의 책』은 인간이 아닌 톡토기와 거미 그리고 모기의 시선으로 두 인간 레즈비언 커플인 호랑과 버들의 사랑을 들여다본다. 곤충들은 비생식 동거 집단으로 불리는 호랑과 버들을 관찰해 연구를 하는데, 이들의 시선으로 보는 인간은 매우 특이하게 그려진다는 것이 특징인 듯하다. "벌레를 잡으려고 발달한 엄지가 인간 신체의 가장 큰 특징"이기에 인간을 '두발이엄지'로 분류하는가 하면 인간의 이족보행에 관해서는 계속 넘어져야만 했던 이들을 조롱하기도 한다. 벌레의 눈으로 본 호랑과 버들의 사랑은 아주 활발(?)하지만, 소설의 후반부로 갈수록 그들의 사랑에는 불안과 슬픔 그리고 분노가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로를 안고 만지는 여성들이 머무는 폭력과 허무의 세계에서 그들의 사랑은 항상 전시되고 판단되며 질문화되기 때문이다. 이 서술은 소수자의 사랑이 세계에서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지를 과감하게 보여준다. 그리하여 소수자 당사자들은 자신의 사랑을 거듭 의심하게 되고, 탈출하려 하거나 모든 것을 내면화해 받아들이고야 만다. 이는 호랑과 버들의 서술로도 확인할 수 있다.

호랑: 그렇게 다 보여주면 사람들이 싫어해.

버들: 숨기 싫어. 너도 그만 숨어. 아무도 우릴 해치지 않아.

호랑: 넌 자야 돼. 잠을 못 자서 그래.

버들: 언제는 그만 좀 자라며!

#집. 거실. 동틀 녘. pp. 92~93.

호랑: 나랑 같이 죽을 수 있어?

버들은 대답 없이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호랑을 바라보지도 않는다.

호랑: 못 죽어? 이제 마음이 변한 거야?

버들: 안 변했어. 나는 늘 똑같아.

호랑: 그런데 왜 대답 안 해?

버들: 죽고 싶어서 물은 거 아니잖아.

···

버들: 나는 괜찮아. 난 받아들였어. 근데 넌 어떡해?

호랑: 내가 왜?

버들: 넌 무서워하잖아. 죽는 것도 사는 것도. 그래서 나랑 못 헤어지는 거잖아.

#거실. 이른 아침. pp. 135~136.

소설 후반부로 갈수록 정신질환을 앓는 버들의 상태는 의연해지고 오히려 버들을 돌보던 호랑이 위태로워 보이게 전환되는 부분이 있다. 이 장면의 전환은 번개라는 매개로 전환된다. 번개의 경고를 본 버들은 앞으로 닥쳐올 재난을 예감하고 호랑은 이를 보고는 버들에게 도망가자고 한다. 이성애 중심의 세상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비생식 집단인 이들이 짐을 싸고, 환전을 해서라도 벗어나 행복해지자고 버들에게 권유하지만, 버들은 계속 이곳에 남겠다고 선언한다. 이 선언은 세계 자체를 사랑하려는 선언임과 동시에 개체를 넘어선 포용을 보여준다. 이들의 삶을 계속 관찰한 곤충들은 호랑과 버들의 관찰기를 재현하면서 계절의 흐름에 따라 어떤 시절을 주기로 반복되는 흐름임을 밝혀 낸다. 곤충인 이들이 살아가는 삶과 별반 다르지 않는 모습임을 관찰로서 알게 된 것이다. 이후 곤충들은 두발이엄지인 인간을 향한 오해를 풀고 존재와 삶을 받아들이며 궁극적인 환희로 나아가려 한다. 끝나지 않을 관찰을 계속하면서 사랑을 거듭하려 하는 것이다.

초반에 이 소설에 몰입하기까지의 과정은 조금 어렵고 힘들 수 있다. 곤충의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이 진행될수록 어느새 곤충이 된 자신을 만날 수 있다. 이는 저자의 의도기도 하다. 처음 들여다보는 순간이 어렵다만, 보기 시작한다면 어느새 제대로 볼 수밖에 없으며 본 것이 자신이 알고 있던 것과 달라 자신이 오해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려면 진심으로 들여다보는 수밖에 없다. 보았을 때 수많은 눈과 몸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김멜라는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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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게 될 것
최진영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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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개의 눈으로 본 미래를 말하려면

최진영, 『쓰게 될 것』(안온북스, 2024)


 

오답도 정답도 아닌 믿음으로

미래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안온북스 출판사에서 최진영 소설가의 『쓰게 될 것』이 출간되었다. 2020년대에 발표한 여덟 편의 단편 소설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금 가장 화두가 되는 사회문제를 비롯한, 다양하게 사유할 수 있는 지점들을 여러 인물의 시선으로 내놓으며 폭넓게 다룬다. 작가가 쓸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씀으로써, 독자는 그것을 읽고 자신이 있을 미래의 장면에 도달하기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번 최진영의 신작은 지금까지 출간한 여러 작품처럼 자신만의 소설적 세계를 전면에 내세우며 한 걸음 더 확장하는 단단한 에너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에 관심이 없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궁금해하는(물론 나도 나의 주변은 매우 좋아하고 아끼고.. 그렇다) 인간적인 현상을 버거워한다. 가끔은 지구온난화나 전쟁, 질병 등의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커다란 이유로 얼른 지구가 리셋되는 편이 서로에게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뉴스를 보면 야당과 여당은 항상 싸우고, SNS에는 가면을 쓴 채 자신이 표출할 수 있는 가장 혐오스러운 모습을 당당히 내놓는 걸 보면서 갈 때까지 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고 수많은 바깥을 경험하면서 조금 아쉬운 것들이 생겨 주머니에 쌓이기 시작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작지만 귀한 기억들을 변기 물 내리듯 내가 어떻게 할 수도 없이 사라지는 걸 보고만 있게 된다면, 그건 정말 슬프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결국 나에게 돌아오는 질문은 단 하나, "어떻게 살 것인가"

최진영의 신작 『쓰게 될 것』은 믿지 못하는 것들을 눈앞에 두고 그것 주변에 있는 것들을 믿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체감하게 한다. 표제작 「쓰게 될 것」의 배경인 전쟁을 기점으로 기후 위기, AI 여성 서사, 빈부 격차 등 지금을 사는 우리가 죽기 직전까지 고민해야 할 지점들을 정면으로 맞서며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는 작가의 태도는 작가만의 확신을 가질 때까지 위험으로부터 도망가지 않는다. 소설에서 중요한 건 이야기도, 플롯도 아닌 작가의 일관된 태도라고 생각하는데, 최진영의 소설에는 항상 모든 이야기와 플롯을 뛰어넘는 태도가 앞장선다. 무엇이 작가를 현재의 가장 끝이자 미래의 초입에 우뚝 서게 했는지는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다. 기꺼이 망하도록 두지 않겠다는 마음, 그 마음은 주변에 있는 귀한 것들을 살리고 싶은 마음에서부터 발현된 마음일 것이다.

모두 지난 일이다. 그리고 반복될 일이다.

나는 이제 그것을 이해한다.

'이해한다'는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태어나면서 세상을 받아들이듯.

그러므로 싸우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다.

「쓰게 될 것」 39P.

표제작 「쓰게 될 것」은 전쟁의 현장에서 아이가 바라보는 상황과 그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된 이후에 전쟁의 기억을 품고 살아가야 하는 상황을 담았다. 가볍지 않은 주제임에도 아이의 발랄함이 어떤 미래가 분명 존재할 거라는 암시로 작용한다고 느껴졌다. 소설의 가장 마지막에 나온 저 인용문은 이 소설집에 수록된 모든 소설의 중심이기도 한 문장들이라 생각하는데, 개인적으로 표제작을 맨 앞에 두었기 때문에 저 문장들이 빛난다고 생각했다. 이후 일곱 편의 소설로 넘어가기 전에 작가의 포부를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읽으면서 여전히 최진영이 왜 읽히는지 느꼈고 오랜만에 압도적인 소설을 읽었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정말, 압도적이다.

중간에 있는 모든 소설이 다 좋았는데(진짜 좋았다) 표제작 다음으로 좋았던 소설은 「홈 스위트 홈」이었다. 소설집의 맨 마지막에 수록된 소설인데, 암에 걸린 화자가 "미래의 어느 여름날"에 부추전을 해 먹겠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나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확신은 미래에 자신이 살아갈 집을 지금의 내가 찾는 과정에 의미를 더한다. 작가는 지금을 살아가는 내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집중한다. 그것은 지금의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의미를 찾고 그 의미가 나를 살아 있게 하는 이유가 될 수 있도록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일 것이다.

쓰게 될 거라는 말은 쓸 수밖에 없다는 말이고 그걸 쓰기 위해서는 써야만 하는 것을 계속 손에 쥐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말과 같다. 그렇다면 앞서 던진 질문은 지금도, 미래에도 유효하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최진영의 소설에는 최진영이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답이 있다. 그 답은 정답도 오답도 아니지만,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는 어떤 미래의 초입에 서서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하는 모습에 가깝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읽은 최고의 국내 소설이었다. 어쩌면 독자들은 오답도 정답도 아닌 흔들리지 않는 개인의 믿음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최진영은 먼저 길을 만드는 사람이 맞다. 그 길을 만드는 과정은 이 소설집에 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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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 - 감정의 연대기 1929~1939
플로리안 일리스 지음, 한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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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가능성의 사랑

플로리안 일리스, 한경희 옮김,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


목 끝까지 찬 어둠 속에서

사랑은 어떤 역할을 맡는가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플로리안 일리스의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이 출간되었다. 일기, 편지, 잡지, 신문, 그림, 사진 등 수많은 자료로 베를린 황금기의 끝자락인 격동의 10년을 문화사적으로 의미 있는 인물들의 사랑 이야기로 풀어낸다. 세계사적으로 가장 불행했던 시기인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의 10년, 1929년~1939년까지의 기간을 다룬다. 당시 뉴욕 증시 폭락, 즉 경제 대공황을 시작으로 나치즘과 파시즘이 부상하고 모든 것이 악화되었던 불행의 시대다. 희망도 미래도 없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랑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플로리안 일리스는 샤르트르와 보부아르, 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와 젤다 피츠제럴드 같은 소설가들부터, 피카소, 달리 같은 화가나 한나 아렌트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같은 철학자와 과학자 등 다채로운 인물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사랑을 담아냈다.

문학동네 온라인 독서 커뮤니티 '독파'의 은혜로 북클럽문학동네 7기가 되었다. 북클럽문학동네에서는 가끔 티저북 또는 단행본 서평단 이벤트를 하는데, 이번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의 티저북 서평단에 당첨이 되어 이 서평을 쓴다. 티저북에는 일부의 내용만 담겨 있다. 빠진 텍스트들은 더 매력적일 듯하다.

1998년에 태어난 나는 2000년대의 조각난 기억과 2010년~2020년의 어느 정도 확실한 기억을 가진 채 2020년대를 살아가고 있다. 나의 데이터베이스에 입각해 지금의 세상을 바라보고 감히 말하지만, 대 혐오의 시대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다. 쉽지 않다고 말하지만, 점점 쉽지 않은 세상이 될 것만 같다. 희망이 정말로 사라지고 있다는 말이다. 이유는 과도한 발전에 있다. 항상 생각하지만, 인류의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와 인류의 문화적, 사회적 배경이 발전하는 속도가 같아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기술의 발전은 너무 빠르고, 인류의 내면 성장은 아주 더디다. 여기서 발생하는 격차를 충분히 이해하고 서로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받아들이는 태도를 배우지 못했기에 유일하게 학습된 혐오를 통해 타인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이 점은 매우 안타깝지만, 절대 개선될 여지가 없는 것 같다. 적어도 2020년대는 그런 해로 기억될 것이다.

그래서 과거의 사랑을 톺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사회/문화적으로 서로를 미워하고 힘들어하지만, 상황만 놓고 보면 20세기는 정말 게임 난이도로 치면 극악이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발전을 이루어내고 서로를 사랑하며, 무언가를 이해하려는 태도로 타인을 바라보는 장면을 본다면 분명 배울 점이 있을 것이다. 저자인 플로리안 일리스 또한 이 점을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우리에게 닥친 외로움과 슬픔 그리고 두려움과 분노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 같다. 지금도 전쟁은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으며, 젠더 갈등은 여전하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도피처를 삼는다. 저자의 말 중에서 "1920년대 사람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사랑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얻은 것은 흥분제였다"라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19를 20으로 바꾸어도 똑같이 적용된다. 흥분제를 얻은 과거의 인물들은 자신들의 사랑을 어떻게 활용했고, 일상에서 어떻게 다루었기에 지금의 내가 이 세상에 있을 수 있는 걸까?

하지만 이 방대하고도 지리멸렬한 사랑에는 의미가 있다. '냉전'의 시대의 불같은 사랑은 방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위대한 사람들도 평범한 사람들처럼 사랑을 하고 바람도 피고 죽고 울고 분노하고 기뻐한다. 새로운 것이 전혀 없어서 한 사람의 사랑은 여전히 새로울 수 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우리의 삶을 버티게 해주는 등불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야만의 시대는 다시 올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자들의 얼굴에서 시대를 읽어내는 일 만큼 의미가 있는 일은 몇 없을 것이다.

어쩌면 앞에서 지금을 치유할 수 없는 시대라고 명명한 나 역시도 사랑이라는 열쇠가 우리 앞에 꽉 닫힌 문을 열어주리라고 믿고 있다. 그 믿음이 없다면 정말로 우리는 슬픔과 분노 그리고 좌절이 눈을 가릴 것이고, 혐오와 멸시라는 칼을 손에 쥔 채 보이지 않는 것들을 마구 베며 다닐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믿음이 칼을 지팡이로 만들 수도 있고 안대를 안경으로 만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 사랑은 그런 거니까. 증오의 시대에 광기의 사랑이라는 각성제로 우리 또한 지금의 힘듦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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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소이 이야기
송미경 지음 / 읻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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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소이라는 이상한 믿음
송미경, 『메리 소이 이야기』(읻다, 2024)

모두가 메리 소이를 기다리는 동안
누구나 메리 소이가 되는

읻다 출판사에서 송미경의 첫 장편소설 『메리 소이 이야기』가 출간되었다. 2008년 등단 이후 동화와 청소년 소설, 그림책과 만화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꾸준하고 다채로운 시도를 이어왔던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이 책은 메리 소이를 기다리는 '나'의 자전적 소설이다. '나'의 엄마가 어렸을 때 잃어버린 동생 '소이'를 기다리며 만나는 여러 인물과 서사를 담아냈다.

무언가를 기다리느라 평생을 다 쓴 사람이 있다. 무언가가 시절인 사람도 있고, 물건이거나, 사람일 수도 있다. 이미 모든 방법을 다 써서 찾으려 했지만, 그럼에도 찾을 수 없어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 된 사람들은 어딘가 고요하다. 평온한 고요함 보다는 심해 같은 고요함. 많은 어둠이 주변에 자리해 가만히 있어도 빨려 들어가서 소리도 없이 사라질 것 같은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렇다면 기다리는 존재들은 기다리는 동안 무엇을 할까? 그들은 얼마나 더 무구한 믿음으로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의 빈자리를 채워나가는가?
『메리 소이 이야기』는 빈자리를 믿음으로 채워나가는 존재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대략적인 줄거리를 설명하자면 '나'의 엄마가 어렸을 때 놀러 간 유원지 화장실에서 소이를 잃고 나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미미제과의 창사 30주년 기념 백일장에서 엄마가 사라진 소이의 이야기를 쓴 글이 대상을 받고 미미제과가 그 사연을 마케팅하면서 전국에 엄마가 소이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이 퍼지게 된다. 미미제과는 엄마와 소이의 추억이 담긴 딸기맛 웨하스 상자에 소이를 찾는 광고를 내고 일산(으로 추정) 부근에 웨하스 모양의 지붕과 딸기 손잡이가 달린 과자 형태의 집을 지어준다. 광고 이후 빨간 코트와 흰 모자 차림의 자칭 '메리 소이'들이 집으로 찾아와 자신들이 소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하면서 소설이 전개된다. 풀리지 않는 매듭을 자꾸만 만지며 매듭을 쥔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바라보게끔 하는 소설인 듯하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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