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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가 아닌 노동자로 삽니다 - 건설 노동자가 말하는 노동, 삶, 투쟁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외 기획, 이은주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평점 :
건설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한 페이지 한 페이지에 담아낸 《노가다가 아닌 노동자로 삽니다》는 단지 노동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나는 그 삶 앞에서 여러 번 숨을 멈췄다. 뼈를 갈아 넣은 현장에서조차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했던 그들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부끄러움과 분노 그리고 연대의 감정이 뒤엉켜 가슴 한켠이 시렸다.
평소 건설 현장처럼 위험과 불합리가 뒤섞인 장소에 대해 꾸준히 자료를 찾아보곤 했다. 하지만 이렇게 생생하고 집요하게, 그러면서도 담담하게 건설 노동자들의 삶을 그려낸 책은 처음이었다. 이 책은 ‘노가다’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 어떻게 각인되어 있는지부터 시작해, 그 말이 지닌 폭력의 뿌리를 건드린다. “인생 막장이나 하는 일”, “거칠고 험한 일”이라는 프레임은 누가 만든 것이며, 그 왜곡된 시선이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을 그림자 속에 가두었는가. 글을 읽는 내내 그 단어 하나가 누군가의 삶을 얼마나 가볍게 내던지는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목소리들은 이 땅의 건설 노동자들이 겪은 고통의 단편이 아니라 ‘현실’ 그 자체다. 하도급을 반복하며 임금은 줄고 위험은 커지는 구조 속에서 그들은 늘 맨 아래, 가장 어두운 자리에서 벽돌을 쌓고, 철근을 올리고, 땀을 흘렸다. 임금 체불은 당연한 일상이 되었고, 위험한 작업에 깔려 생명을 잃는 일조차 사회는 애도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안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사람이 그냥 형체가 없어져요.” 그 절박한 한마디 앞에서, 나는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건설노조의 탄생과 그 이후의 변화는 이 책의 또 다른 축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깊은 희망과 슬픔을 동시에 느꼈다. 노동자가 노동자로서 존엄을 지키기 위해 함께 움직였을 때 임금 체불을 막고, 휴식 공간을 만들고, 부당한 지시를 물리쳤다. 사람답게 일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는 당연한 권리를 찾기 위해 싸웠던 그들은 나에게 투쟁이란 단어의 의미를 새롭게 새겨주었다. 하지만 정부의 탄압 이후, 그 변화가 되려 지워지고 있다는 현실은 씁쓸함 그 자체였다. 고 양회동 지대장의 유서가 눈앞에서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다. ‘나는 지은 죄가 없다.’는 말이 얼마나 무겁고 참혹하게 들리던지. 한동안 책장을 넘길 수조차 없었다.
책을 덮고 난 후에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문장이 있다. “제 삶의 목표는 평범하게 사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제일 힘든 것 같더라고요.” 그 문장 안에는 이 사회가 무너뜨린 수많은 삶의 조각이 담겨 있다. 나는 지금 평범하게 살고 있는가? 나는 오늘 하루를 무사히 마쳤는가? 그렇게 묻다 보면, 노동이 단지 경제 활동이 아닌, 존재의 확인이라는 진실에 도달하게 된다.
《노가다가 아닌 노동자로 삽니다》는 단순한 르포가 아니다. 이 책은 건설 노동자들이 흘린 피와 땀과 눈물 위에 세워진 한 권의 증언서이며 또한 우리의 무관심에 대한 경고장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길을 걷다가 마주친 공사 현장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뀔 것이다. 거기 있는 이들이 ‘막일꾼’이 아니라,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지탱하는 ‘노동자’임을 잊지 않게 될 것이다. ‘사람답게 일할 수 있는 사회’란 단어가 얼마나 멀리 있는지, 그러나 동시에 그 먼 길을 함께 걸어가야 한다는 다짐 또한 품게 되었다. 이 책은 바로 그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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