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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게 될 것
최진영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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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개의 눈으로 본 미래를 말하려면

최진영, 『쓰게 될 것』(안온북스, 2024)


 

오답도 정답도 아닌 믿음으로

미래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안온북스 출판사에서 최진영 소설가의 『쓰게 될 것』이 출간되었다. 2020년대에 발표한 여덟 편의 단편 소설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금 가장 화두가 되는 사회문제를 비롯한, 다양하게 사유할 수 있는 지점들을 여러 인물의 시선으로 내놓으며 폭넓게 다룬다. 작가가 쓸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씀으로써, 독자는 그것을 읽고 자신이 있을 미래의 장면에 도달하기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번 최진영의 신작은 지금까지 출간한 여러 작품처럼 자신만의 소설적 세계를 전면에 내세우며 한 걸음 더 확장하는 단단한 에너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에 관심이 없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궁금해하는(물론 나도 나의 주변은 매우 좋아하고 아끼고.. 그렇다) 인간적인 현상을 버거워한다. 가끔은 지구온난화나 전쟁, 질병 등의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커다란 이유로 얼른 지구가 리셋되는 편이 서로에게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뉴스를 보면 야당과 여당은 항상 싸우고, SNS에는 가면을 쓴 채 자신이 표출할 수 있는 가장 혐오스러운 모습을 당당히 내놓는 걸 보면서 갈 때까지 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고 수많은 바깥을 경험하면서 조금 아쉬운 것들이 생겨 주머니에 쌓이기 시작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작지만 귀한 기억들을 변기 물 내리듯 내가 어떻게 할 수도 없이 사라지는 걸 보고만 있게 된다면, 그건 정말 슬프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결국 나에게 돌아오는 질문은 단 하나, "어떻게 살 것인가"

최진영의 신작 『쓰게 될 것』은 믿지 못하는 것들을 눈앞에 두고 그것 주변에 있는 것들을 믿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체감하게 한다. 표제작 「쓰게 될 것」의 배경인 전쟁을 기점으로 기후 위기, AI 여성 서사, 빈부 격차 등 지금을 사는 우리가 죽기 직전까지 고민해야 할 지점들을 정면으로 맞서며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는 작가의 태도는 작가만의 확신을 가질 때까지 위험으로부터 도망가지 않는다. 소설에서 중요한 건 이야기도, 플롯도 아닌 작가의 일관된 태도라고 생각하는데, 최진영의 소설에는 항상 모든 이야기와 플롯을 뛰어넘는 태도가 앞장선다. 무엇이 작가를 현재의 가장 끝이자 미래의 초입에 우뚝 서게 했는지는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다. 기꺼이 망하도록 두지 않겠다는 마음, 그 마음은 주변에 있는 귀한 것들을 살리고 싶은 마음에서부터 발현된 마음일 것이다.

모두 지난 일이다. 그리고 반복될 일이다.

나는 이제 그것을 이해한다.

'이해한다'는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태어나면서 세상을 받아들이듯.

그러므로 싸우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다.

「쓰게 될 것」 39P.

표제작 「쓰게 될 것」은 전쟁의 현장에서 아이가 바라보는 상황과 그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된 이후에 전쟁의 기억을 품고 살아가야 하는 상황을 담았다. 가볍지 않은 주제임에도 아이의 발랄함이 어떤 미래가 분명 존재할 거라는 암시로 작용한다고 느껴졌다. 소설의 가장 마지막에 나온 저 인용문은 이 소설집에 수록된 모든 소설의 중심이기도 한 문장들이라 생각하는데, 개인적으로 표제작을 맨 앞에 두었기 때문에 저 문장들이 빛난다고 생각했다. 이후 일곱 편의 소설로 넘어가기 전에 작가의 포부를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읽으면서 여전히 최진영이 왜 읽히는지 느꼈고 오랜만에 압도적인 소설을 읽었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정말, 압도적이다.

중간에 있는 모든 소설이 다 좋았는데(진짜 좋았다) 표제작 다음으로 좋았던 소설은 「홈 스위트 홈」이었다. 소설집의 맨 마지막에 수록된 소설인데, 암에 걸린 화자가 "미래의 어느 여름날"에 부추전을 해 먹겠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나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확신은 미래에 자신이 살아갈 집을 지금의 내가 찾는 과정에 의미를 더한다. 작가는 지금을 살아가는 내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집중한다. 그것은 지금의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의미를 찾고 그 의미가 나를 살아 있게 하는 이유가 될 수 있도록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일 것이다.

쓰게 될 거라는 말은 쓸 수밖에 없다는 말이고 그걸 쓰기 위해서는 써야만 하는 것을 계속 손에 쥐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말과 같다. 그렇다면 앞서 던진 질문은 지금도, 미래에도 유효하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최진영의 소설에는 최진영이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답이 있다. 그 답은 정답도 오답도 아니지만,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는 어떤 미래의 초입에 서서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하는 모습에 가깝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읽은 최고의 국내 소설이었다. 어쩌면 독자들은 오답도 정답도 아닌 흔들리지 않는 개인의 믿음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최진영은 먼저 길을 만드는 사람이 맞다. 그 길을 만드는 과정은 이 소설집에 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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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 - 감정의 연대기 1929~1939
플로리안 일리스 지음, 한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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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가능성의 사랑

플로리안 일리스, 한경희 옮김,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


목 끝까지 찬 어둠 속에서

사랑은 어떤 역할을 맡는가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플로리안 일리스의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이 출간되었다. 일기, 편지, 잡지, 신문, 그림, 사진 등 수많은 자료로 베를린 황금기의 끝자락인 격동의 10년을 문화사적으로 의미 있는 인물들의 사랑 이야기로 풀어낸다. 세계사적으로 가장 불행했던 시기인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의 10년, 1929년~1939년까지의 기간을 다룬다. 당시 뉴욕 증시 폭락, 즉 경제 대공황을 시작으로 나치즘과 파시즘이 부상하고 모든 것이 악화되었던 불행의 시대다. 희망도 미래도 없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랑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플로리안 일리스는 샤르트르와 보부아르, 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와 젤다 피츠제럴드 같은 소설가들부터, 피카소, 달리 같은 화가나 한나 아렌트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같은 철학자와 과학자 등 다채로운 인물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사랑을 담아냈다.

문학동네 온라인 독서 커뮤니티 '독파'의 은혜로 북클럽문학동네 7기가 되었다. 북클럽문학동네에서는 가끔 티저북 또는 단행본 서평단 이벤트를 하는데, 이번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의 티저북 서평단에 당첨이 되어 이 서평을 쓴다. 티저북에는 일부의 내용만 담겨 있다. 빠진 텍스트들은 더 매력적일 듯하다.

1998년에 태어난 나는 2000년대의 조각난 기억과 2010년~2020년의 어느 정도 확실한 기억을 가진 채 2020년대를 살아가고 있다. 나의 데이터베이스에 입각해 지금의 세상을 바라보고 감히 말하지만, 대 혐오의 시대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다. 쉽지 않다고 말하지만, 점점 쉽지 않은 세상이 될 것만 같다. 희망이 정말로 사라지고 있다는 말이다. 이유는 과도한 발전에 있다. 항상 생각하지만, 인류의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와 인류의 문화적, 사회적 배경이 발전하는 속도가 같아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기술의 발전은 너무 빠르고, 인류의 내면 성장은 아주 더디다. 여기서 발생하는 격차를 충분히 이해하고 서로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받아들이는 태도를 배우지 못했기에 유일하게 학습된 혐오를 통해 타인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이 점은 매우 안타깝지만, 절대 개선될 여지가 없는 것 같다. 적어도 2020년대는 그런 해로 기억될 것이다.

그래서 과거의 사랑을 톺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사회/문화적으로 서로를 미워하고 힘들어하지만, 상황만 놓고 보면 20세기는 정말 게임 난이도로 치면 극악이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발전을 이루어내고 서로를 사랑하며, 무언가를 이해하려는 태도로 타인을 바라보는 장면을 본다면 분명 배울 점이 있을 것이다. 저자인 플로리안 일리스 또한 이 점을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우리에게 닥친 외로움과 슬픔 그리고 두려움과 분노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 같다. 지금도 전쟁은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으며, 젠더 갈등은 여전하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도피처를 삼는다. 저자의 말 중에서 "1920년대 사람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사랑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얻은 것은 흥분제였다"라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19를 20으로 바꾸어도 똑같이 적용된다. 흥분제를 얻은 과거의 인물들은 자신들의 사랑을 어떻게 활용했고, 일상에서 어떻게 다루었기에 지금의 내가 이 세상에 있을 수 있는 걸까?

하지만 이 방대하고도 지리멸렬한 사랑에는 의미가 있다. '냉전'의 시대의 불같은 사랑은 방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위대한 사람들도 평범한 사람들처럼 사랑을 하고 바람도 피고 죽고 울고 분노하고 기뻐한다. 새로운 것이 전혀 없어서 한 사람의 사랑은 여전히 새로울 수 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우리의 삶을 버티게 해주는 등불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야만의 시대는 다시 올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자들의 얼굴에서 시대를 읽어내는 일 만큼 의미가 있는 일은 몇 없을 것이다.

어쩌면 앞에서 지금을 치유할 수 없는 시대라고 명명한 나 역시도 사랑이라는 열쇠가 우리 앞에 꽉 닫힌 문을 열어주리라고 믿고 있다. 그 믿음이 없다면 정말로 우리는 슬픔과 분노 그리고 좌절이 눈을 가릴 것이고, 혐오와 멸시라는 칼을 손에 쥔 채 보이지 않는 것들을 마구 베며 다닐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믿음이 칼을 지팡이로 만들 수도 있고 안대를 안경으로 만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 사랑은 그런 거니까. 증오의 시대에 광기의 사랑이라는 각성제로 우리 또한 지금의 힘듦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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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소이 이야기
송미경 지음 / 읻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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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소이라는 이상한 믿음
송미경, 『메리 소이 이야기』(읻다, 2024)

모두가 메리 소이를 기다리는 동안
누구나 메리 소이가 되는

읻다 출판사에서 송미경의 첫 장편소설 『메리 소이 이야기』가 출간되었다. 2008년 등단 이후 동화와 청소년 소설, 그림책과 만화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꾸준하고 다채로운 시도를 이어왔던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이 책은 메리 소이를 기다리는 '나'의 자전적 소설이다. '나'의 엄마가 어렸을 때 잃어버린 동생 '소이'를 기다리며 만나는 여러 인물과 서사를 담아냈다.

무언가를 기다리느라 평생을 다 쓴 사람이 있다. 무언가가 시절인 사람도 있고, 물건이거나, 사람일 수도 있다. 이미 모든 방법을 다 써서 찾으려 했지만, 그럼에도 찾을 수 없어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 된 사람들은 어딘가 고요하다. 평온한 고요함 보다는 심해 같은 고요함. 많은 어둠이 주변에 자리해 가만히 있어도 빨려 들어가서 소리도 없이 사라질 것 같은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렇다면 기다리는 존재들은 기다리는 동안 무엇을 할까? 그들은 얼마나 더 무구한 믿음으로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의 빈자리를 채워나가는가?
『메리 소이 이야기』는 빈자리를 믿음으로 채워나가는 존재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대략적인 줄거리를 설명하자면 '나'의 엄마가 어렸을 때 놀러 간 유원지 화장실에서 소이를 잃고 나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미미제과의 창사 30주년 기념 백일장에서 엄마가 사라진 소이의 이야기를 쓴 글이 대상을 받고 미미제과가 그 사연을 마케팅하면서 전국에 엄마가 소이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이 퍼지게 된다. 미미제과는 엄마와 소이의 추억이 담긴 딸기맛 웨하스 상자에 소이를 찾는 광고를 내고 일산(으로 추정) 부근에 웨하스 모양의 지붕과 딸기 손잡이가 달린 과자 형태의 집을 지어준다. 광고 이후 빨간 코트와 흰 모자 차림의 자칭 '메리 소이'들이 집으로 찾아와 자신들이 소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하면서 소설이 전개된다. 풀리지 않는 매듭을 자꾸만 만지며 매듭을 쥔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바라보게끔 하는 소설인 듯하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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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 소설Y
조은오 지음 / 창비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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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네가 있는 곳으로 갈게

조은오, 『버블』(창비, 2024)

열고 다가가고 마침내 손을 잡으려는

단단한 외로움을 걷어내는 성장의 움직임

창비 출판사에서 조은오의 첫 장편소설 『버블』이 소설Y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소설Y 시리즈는 『위저드 베이커리』『나인』『스노볼』 등 이야기 본연의 매력과 다채로운 문학적 사유를 전해 온 창비의 국내 소설 시리즈다. 조은오의 『버블』은 세계가 '버블'이라는 가림막에 휩싸여 타인과의 소통과 관계 맺기에 제한을 건 독특한 환경이 배경인 소설이다. 통제를 벗어나려는 움직임의 위태롭고 확신 없는 상황 속에서도 나아가려는 움직임이 결국 자신을 둘러싼 오래되고 이상한 세계를 부수는 열쇠라는 것을 이야기로서 증명한다.

*출판사의 요청으로 스포일러성 후기가 없는 개인적인 생각만 적은 서평임을 미리 밝힙니다.

창비Y 시리즈 서평단을 신청한 큰 이유는 작가가 누군지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 때문이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글을 읽는다는 건 편견 없이 읽을 수 있다는 것이어서, 읽을 명분만 충분하다면 즐겁게 읽을 수 있다. 그렇다면 명분이 필요하다. 그 명분은 작가의 문장일 것이다.

나의 완벽한 세계에 균열을 내기로 했다.

당차면서도 자신의 세계에 균열을 내겠다는 말은 어딘가 파괴적이다.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겠다는 아름다운 문장으로도 읽을 수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자신을 부수고 망가지겠다는 불온한 문장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래서 신청했다. 이런 문장을 카피로 내건다면, 정말 세계를 부수는 소설이거나 읽을수록 짜증 나는 소설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300쪽에 달하는 장편소설인 만큼 전자에 희망을 걸었고, 그 희망을 두 배로 돌려받았다. 이 소설은 좋은 소설이다.

이 소설이 좋은 이유는 작가가 설계한 세계에 치밀한 매커니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중앙과 외곽이라는 공간을 분리해두고 각 세계가 서로의 세계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으며,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세계의 매커니즘에 반하여 살아갈 수 없음을 초반부터 미리 알려준다. 더 말할 순 없지만스토리적으로도 만만하게 볼 소설이 아님은 분명하다.

두 번째로는 이름, 주인공은 07, 126이다. 몇 개의 숫자로 된 인물이 등장하긴 하지만 숫자로 제시한 이름이 그저 신비로운 뉘앙스를 부여하기 위한 장치로 쓰이지 않는다는 것이 장점이다. 중앙이라는 통제된, 규칙에 사로잡혀 타자와의 소통이 불가한 공간에 숫자로 된 이름을 부여한다는 것 자체가 타자를 사물화하여 서로를 감각하지 않는 장치로 사용된다. 이는 이 소설에 중요한 지점으로 보이며 주인공인 07이 자신이 살아가는 버블이 이상하다는 것을 자각하는 그 순간 독자도 이상하다는 것을 인식함과 동시에 이름에서부터 이미 힌트를 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러한 치밀한 설정이 독자에게 안정감을 주는 듯하다.

마지막으로는 복잡함이다. 유의미한 복잡함. 성장 소설인 만큼 단순한 플롯이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인식 - 도전 - 좌절 - 성취'의 구조에 자잘한 변형이 있다. 결말도 특히 그러하다. 정말 결말.. 예상하진 못했다. 굿.

결론은 좋은 소설이다. 오랜만에 후속작이 나와서 내가 알게 되면 사게 될 작가가 나온 게 아닐까 싶은 정도로 좋은 소설을 읽었다. 구체적인 세계에서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 소중함을 잃고 있는 요즘 세상에 필요한 소설이 등장한 듯해서 좋다고도 본다. 소설은 사회적인 메시지를 꼭 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그전에 재미만 있어도 장땡이긴 하다) 이 소설은 재미와 메시지가 적절한 균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랑을 받을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알게 되었지만, 이 소설을 쓰신 작가는 조은오 작가라고 한다. 작가가 바라보고 열어 확장하고자 하는 세계가 현실에도 천천히 서서히 실현되기를, 버블을 터트리고 더는 갇히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성하려는 세상이 되기를 나 또한 간절히 바란다. 누구나 눈을 감고 살아가던 시절은 있으니까. 그러다가 누군가를 만나 손을 잡기도 하겠지. 그렇게 세상은 절벽도 도로도 있는 복잡하고 이상한데 살고 싶은 세계가 되는 건 아닐까.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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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터넷 밈의 계보학
김경수 지음 / 필로소픽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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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도 읽었지만 너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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