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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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자전거 페달을 밟는 마음으로

장류진, 『연수』(창비, 2023)

아득하고 두려운 미래의 직전에서

손등을 어루만지는 응원의 이야기

첫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을 성공적으로 출간하면서 첫 장편소설 『달까지 가자』를 연이어 흥행시킨 장류진의 두 번째 소설집 『연수』가 출판사 창비에서 출간되었다. 청춘의 생활을 정밀하게 반영하면서도 삶의 환한 면면을 드러내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장류진은 이번 소설집에서 표제작이자 젊은작가상 수상작인 「연수」를 포함한 여섯 가지의 단편소설로 독자들에게 막강한 재미를 선사한다.

가끔 정말 잘 사는지 모를 때가 있다. 이 길이 맞는지, 무엇을 삶에 우선으로 두고 생활하려 하는지 몰라서 어지럽다. 가끔 아주 우울하고 자주 지루하다. 생활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단조로워지면서도 그림자가 짙은 오후로 변한다. 하지만 이런 생활도 주변의 사람으로 인해 살아나기도 한다. 일상의 평범함을 묻는 대화나 피부를 맞대며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농담이 내일을 기대하게 할 때도 있다. 이러한 특별함은 아주 사소하지만 빛난다. 해변의 모래처럼 가벼우면서 아름답다.

장류진의 『연수』에서는 단조로운 생활에 약간의 변주를 주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용감하면서도 어딘가 불안함이 있는데 다른 인물들과 만났을 때의 시너지로 용감함을 표출하는 인물로 변화한다. 그들은 주인공들 옆에서 주인공이 못하는 것을 도와주기도 하지만, 초반에는 신경을 자극해서 주인공의 일상을 뒤흔든다. 흔들린 일상은 이전의 일상이 어딘가 부자연스럽거나 좋지 못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기표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장류진만의 변주는 무작정 위로를 건네거나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아서 독자에게 만족을 준다. 여성의 문제나, 사회의 문제 등 시의성이 있는 주제를 중심으로 독자에게 건네는 용기는 어딘가 조금 때가 탔지만 단단하고 부서지지 않을 것만 같다. 작가도 그런 것들을 노리지 않았을까?

나는 그럴 때마다 겨우 이런 일이, 결국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손끝에서 결정되어버리는 일이,

일생의 가장 기쁜 순간씩이나 되는

그런 삶은 결코 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연수」 중에서

표제작인 「연수」는 운전공포증을 앓는 주연의 이야기다. 주연은 살면서 실패를 해본 경험이 없고 열심히 삶을 사는 여성이다. 하지만 실패해 본 적 없는 주연에게도 단 하나의 실패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운전이다. 언제까지고 운전을 하지 않을 순 없어서 주연은 맘카페에 가입해 엄마 나이대이면서도 ‘일타강사’로 소문난 여성 운전 강사를 만나게 된다. 둘이서 운전을 시작하면서부터 서사는 시작된다.

나는 운전을 정말 싫어하고 무서워한다. 주연과 비슷하지만 나는 남성이어서 운전을 못 한다는 사실이 다른 사람에게 더 큰 단점으로 보이곤 했다.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저렇게 사랑으로 배운 운전이라면 정말 운전을 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운전 강사는 어딘가 드세면서도 따뜻해서 주변의 따뜻한 어른 한두 명 정도를 떠올리기도 했다. 동시에 이 소설은 운전 강습만을 이야기하지 않아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주인공인 주연의 엄마와 주연과의 서사 또한 눈여겨볼 부분이었는데, 엄마는 주연의 성취를 기쁨으로 삼는 사람이었고 주연은 그런 모습을 보며 자신은 저렇게 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나는 이 장면에서 조금 의아했다. 누군가의 성취가 자신의 기쁨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나의 안위보다 더 아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도 삶의 축복 중 하나 아닐까. 이 대목은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민할 관계라는 포인트는 어딘가 기이하면서도 너무 따뜻하다. 아주 따뜻해서 떨어지고 싶을 만큼.

장류진의 소설은 여러 지점을 건드린다. 이번 소설에서는 격려하는 마음을 중심으로 서사를 이어가지만, 서사의 주변에는 사회의 문제를 건드리기도 하고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독자는 단편을 읽으면서 많이 사랑받고 답답해하며 슬퍼할지도 모른다.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 모든 것이 기쁨으로 느낄 수는 없다는 것. 하지만 장류진은 독자의 자전거 안장 뒤에 짐을 실을 수 있는 부분을 잡아준다. 독자가 이 이야기를 다 훑고 혼자서 서사 바깥으로 나아갈 수 있게끔 말이다. 어느새 뒤를 돌아보면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주변에는 많은 사람이 있을 게 분명하다. 장류진의 소설을 읽었기 때문이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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