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 일기 - 시간 죽이기 현대문학 핀 시리즈 에세이 2
송승언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대문학 PIN 에세이 002

오늘도 삶을 버텨내고자 다양한 작품들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있을 이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보낸다. 앞으로도 많은 것들을 사랑하시기를. 여러분이 사랑하는 것들의 총합이 여러분 그 자체이니까. p.270

핀 에세이 서포터즈 활동을 하면서 두 번째로 만나게 된 <덕후일기 - 시간 죽이기>는 시인 송승언이 시간을 죽이기 위해(살아내기 위해) 했던 것들에 대한 일기다. 정작 프롤로그에서는 자신이 덕후는 아니라고 생각한단다. (하지만 에필로그에서는 결국 인정)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이 주를 이루는데 목차를 확인하고서 괜찮을까? 걱정이 되었다. 난 게임에 관해서는 바보 천치고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는 많이 봤지만 교묘하게 내 취향을 비껴갔길래 내가 공감할 수 있을까 싶었다. 궁금하실 분들을 위해 목차 사진도 함께 찍었다. 아는 만큼 더 재밌을 책이라는 점에서 나는 좀 아쉬웠다. 이런 책은 격하게 공감해서 발을 동동거리며 읽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아는 게 없으니까 말이다. 다양한 게임이나 애니들을 이야기하면서 좋은 점, 별로인 점을 솔직하게 썼기 때문에 내용을 잘 몰라도 어쩐지 잘 읽혔다. 내가 아는 것들은 많이 없어도 그중에 좋은 걸 추천받는 느낌으로 읽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는데 대부분 별로인 점을 적나라하게 써서 건진 작품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뭔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덕후이기에, 깔 수도 있는 것이다. 취향에 따라 굉장히 재밌게 읽을 수도 있을 거다.

게임 바보인 나는 아주 어릴 때 게임기로 하던 8비트 게임, 컴퓨터 게임에서 유일하게 열심히 했던 카트라이더(캐릭터가 귀여워서 하기 시작해서 무지개 별장갑까지, 내 인생 최고로 열심히 한 게임이다), 모바일 게임으로는 사천성, 애니팡, 캔디 크러시 정도가 해본 게임의 전부다. 그러니 책에 있는 게임을 알 리가 있냐고. 그런데 그 와중에 낚시게임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눈이 반짝 반짝 재밌었는데 그건 작년에 VR로 하는 낚시게임인 <리얼 VR 피싱>을 해봤기 때문이다. 역시 사람은 아는 만큼 보여. 남자친구는 현실에서 낚시는 하지도 않으면서 낚시 게임은 좋아하길래 뭐가 그렇게 재밌냐고 했더니 세계 곳곳에 있는 아름다운 호수와 바다에서 낚시를 하는 게 마치 여행하는 기분이라고 했다. 남자친구 쉬는 동안 내가 한번 해보겠다고 해놓고 몇 시간을 내리 잡았다. 일단 낚싯대를 원하는 곳에 던지는 것부터 재밌다. 손에 입질이 느껴지고 물고기와 밀당을 하면서 한 마리씩 잡는데 성취감이 대단했고, 솔직히 낚시에 재능이 있을지도? 하는 건방진 생각이 들었다. 점점 큰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게 되었는데 물고기가 커지면서부터는 물고기와 밀당히 몹시 힘들어졌고 사투 끝에 놓치길 반복하니 재미 없어졌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이라는 걸 해봤는데 내가 한 선택에 따라 스토리가 어떻게 진행될지 모른다는 점과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몰입감이 좋다는 점에서 기분이 묘했다. 남자친구가 옆에서 흥미롭게 본 이유가 내가 다른 선택을 많이 해서 스토리가 상당히 다르게 진행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잘 하고 있다가 안드로이드 해방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인물을 죽게 만들었다. 인간에게 많은 해를 입은 안쓰러운 안드로이드들을 해방시켜주고 싶었는데 죽음으로 인해 스토리가 많이 달라졌고 기분이 몹시 찜찜해졌다. 되돌리고 싶어도 되돌리지도 못한다.(진부하지만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내가 사람을 죽여놓고, 또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쳐놓고 시간을 잠깐 뒤로 돌릴 순 없는 것이다.) 몰입도가 상당해서 하루 종일 했던 기억이 난다. 열렬히 게임에 몰입하는 그 기분만큼은 좀 알 것 같았다. 다소 아쉽지만 내가 낸 결말을 인정하고 사람들이 유튜브에 올려준 다양한 엔딩들을 감상했다. 이 책을 잘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남자친구 덕이다.


도서지원

아침서가 - @morning.bookstore



앉은 자리에서 어딘가로 떠날 수 있다는 것, 죽지 않고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다는 것. 그 모두가 좋은 일이고 시간을 죽여볼 수 있다는 것은 더 좋은 일이다
- P30

암흑세계에 자신을 내던지고 그야말로 개쓰레기가 되는 경험...... 그리고 자신을 쓰레기로 만드는 일에는 분명히 중독적인 쾌락이 있다는 것을 재차 깨닫는 순간, 여러모로 이것이 게임이어서 다행이었다.
- P88

비록 허구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일어나는 죽음이라 하더라도, 그 죽음은 ‘작품 내에서 다시 볼 수 없음‘이라는 방식으로 진짜 죽음의 핵심을 내포한다. 그러나 그 진짜 죽음의 일면이 부정될 때 그 작품은 죽음의 슬픔도 무게도 잃어버리고 만다.
- P109

한가지 분명한 것은 꽤 오래전부터 웹소설이든 장르문학이든 뭔가를 읽는 이들이 순수문학 또한 읽었다는 거다. 한 때 이 점을 간과했던 고리타분한 어르신들이 장르문학을 무시하는 발언을 한 일도 실제로 있고, 장르문학하는 분들은 또 무시당하던 것에 대한 한이 있으니까 과거의 순수문학 망령들을 향한 멸시를 늘어놓는 일도 있었지만... (...) 어떻게든 읽는 사람 자체를 늘리는 데 주력하는 웹소설 콘텐츠 창작자들은 최전선에 서 있는 사람들이니 그들을 질투하거나 미워할 것도 없다. 오히려 동맹군이면 동맹군이었지, 최소한 그들이 순수문학의 적은 결코 아닐 것이다.
- P243

내가 지속해온 오타쿠와의 거리 두기 자체가 일종의 농담이었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실 것이다. 오늘도 삶을 버텨내고자 다양한 작품들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있을 이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보낸다. 앞으로도 많은 것들을 사랑하시기를. 여러분이 사랑하는 것들의 총합이 여러분 그 자체이니까.
- P27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