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두대와 욕조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때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인데 대체 무슨 뜻이 담겨있는지 의문이 생겼다. 하나는 사람의 목을 자르는 너무 노골적인 죽음이고, 다른 하나는 일상에서 평범하게 쓰이는 물건이기때문에 괴리감마저 느껴졌다. 이 책을 읽을 수록 이 단어의 둘은 묘하게 닮아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이 책은 처음부터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라고 본다. 거부감이 느껴지는 600페이지 쪽이 훌쩍 넘는 두께는 선뜻 시작하기 어렵게 느껴진다. 낯선 프랑스식 이름들이라던지, 프랑스 혁명의 역사적 배경,그 안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건들 때문에 몇 번이나 앞부분을 다시 넘겨 보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사건의 전개를 하나하나 기억하려 하기보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심리에 초점을 두기 시작한건 왜일까.
전쟁에서 돌아온 시몽은 가족에게 닥친 비극과 아버지의 죽음을 마주하고 복수심에 사로잡히게 된다. 여기까지는 그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나또한 소중한 사람을 빼앗긴 기분이라서, 이 때 나는 냉정하게 정의만을 이야기 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있었다. 그래서 시몽의 복수를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되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 될 수록 하나의 의문점이 생기게 되었다.
시몽이 정말 원하는게 무엇일까하는 것이다. 혁명이 이루어지는 역사속에서 모두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명분으로 시작되지만, 그 속에서 누군가를 처벌하고, 가두고 죽이고 마는 혐오적이고 더럽고 무섭고 끔찍한 일들이 벌어진다. 그러한 폭력이 커질수록,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자신의 행동을 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부분이다. 오히려 자신이 옳다고 믿는다는게 기이하다고 하면 기이할수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어느날 중국드라마보다가 나온 대사를 인용하자면, 사람은 자신이 나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보다,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확신할 때 더 잔인하게 변해버린다는 말이 맞는 걸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단두대는 단순한 처형 도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두대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이루어지는 제도화된 죽음이라면, 물과 욕조는 조금 다른 모습의 죽음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선악관이 있는 물,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반대로 죽음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단두대 역시 스스로 사람의 목을 자르지는게 아닌 그것을 사용하고, 거기에 의미와 명분을 부여하는 것은 사람이기때문에 잔인함이 부여되기도 한다.
처음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단두대’와 ‘욕조’가 책을 읽은 뒤에는 같은 의아함을 품게 만드는 단어처럼 느껴졌다. 문제는 사람이 무엇으로 죽었는가가 아니라, 누군가의 죽음을 어떤 이유로 정당화했는가에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책을 덮고 나서도 복수와 정의의 경계를 명확하게 나눌수는 없지만 다만 한 가지는 알수있다는 점이다. 누군가 자신의 분노와 폭력을 ‘정의’라고 확신하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한 번쯤 그 정의를 의심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한다. 《단두대와 욕조》는 내게 누가 선하고 누가 악한지를 알려 주는 소설이라기보다, 인간이 언제 자신의 폭력을 정의라고 믿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깊어지는 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