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거 앨런 포의 이야기와 시 클래식 리이매진드
에드거 앨런 포 지음, 데이비드 플렁커트 그림, 윤정숙 옮김 / 소소의책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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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에드거 앨런 포라는 이름은 전부터 익숙했다. 추리 미스터리 소설에 주어지는 ‘에드거상’이라는 이름으로도 자주 들었고, 공포문학이나 추리소설의 기원을 이야기할 때 꼭 등장하는 작가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작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었다. 이름은 알고 있는데 문장은 모르는 작가.

말하자면 간판은 자주 봤는데, 정작 문은 열어본 적 없는 오래된 건물 같았다. 이번에 『에드거 앨런 포의 이야기와 시』를 읽으면서 나도 한번은 책의 서재에 들어선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느낀껴지는 것은 여기는 오래 머물면 조금 위험하겠는걸? 포의 작품을 읽고 난 뒤의 감정은 단순히 “무서웠다”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무섭기도 한데, 그보다 먼저 기괴하고 불편한 이물감? 어떤 이야기는 황망했고, 어떤 장면은 솔직히 끔찍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책장은 계속 넘어갔다.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인데 확인하고 싶고, 이해하고 싶지 않은 인간의 마음인데 끝까지 들여다보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 포의 이야기는 귀신이 갑자기 튀어나와 놀라게 하는 공포는 아니다.

오히려 사람 안쪽에서 무언가가 조금씩 썩어가다가, 결국 바깥으로 흘러나오는 쪽에 가까웠다. 죄책감이나 강박, 분노 같은 것들이 너무 가까이 와서 읽는 내내 무언가 찝찝했다. 사건보다 사람이 먼저 보였다. 이 사람이 어디까지 무너지는지. 그걸 바로 옆에서 보는 기분이 들었다고 하면 맞을것 같다. 가장 읽기 힘들었던 건 역시 「검은 고양이」였다.동물을 오래 가족처럼 생각해온 입장에서는 마음 편히 읽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니었다. 아니, 마음 편히는커녕 중간중간 표정이 굳었다. 잔혹한 장면 자체도 힘들었지만, 더 불편했던 건 그 폭력의 이유가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도대체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걸까. 사람 안에 저런 악의가 정말 아무렇지 않게 자랄 수 있는 걸까. 읽으면서 계속 그런 생각이 든 내용. 포는 그 악을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이 사람은 이런 상처가 있어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같은 식으로 독자를 납득시키지도 않는다. 그냥 보여준다. 사람이 자기 안의 어두운 부분을 그냥 두면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는지를. 그래서 더 찝찝했다.

이해할 수 없어서 더 무서운 이야기였다.「고자질하는 심장」도 오래 남았다. 화자는 계속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말이 반복될수록 오히려 더 미친 사람처럼 느껴진다. 자신이 얼마나 조심스럽게 행동했는지, 얼마나 치밀하게 일을 처리했는지를 자랑하듯 말하는데, 그 침착함이 이상하게 섬뜩했다.

이 작품에서 가장 무서운 건 심장 소리 자체라기보다, 그 소리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의 정신 상태였다. 그 소리가 정말 들린 건지, 죄책감이 만들어낸 환청인지, 아니면 이미 무너진 마음이 스스로를 벌하고 있는 건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결국 그는 그 소리 때문에 무너진다. 이런 걸 보면 포가 다루는 공포는 바깥에 있는 괴물보다 안쪽에서 커지는 균열에 더 가깝다.

누군가가 문밖에서 두드리는 소리보다, 내 안에서 들리는 소리가 더 무서울 때가 있다는 걸 아는 작가 같았다. 「어셔가의 몰락」은 조금 다른 의미로 음산했다. 이 작품은 저택이 단순한 배경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오래된 집이 사람을 병들게 하는 건지, 병든 사람들이 그 집을 닮아가는 건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낡은 저택, 병약한 인물들, 가라앉은 공기, 무너져가는 혈통 같은 것들이 전부 하나로 엉겨 있었다.

읽다 보면 저택 자체가 커다란 병처럼 느껴진다.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 분위기에 잠식되어 있었던 것 같고, 마지막의 붕괴는 갑자기 찾아온 결말이라기보다 오래 참고 있던 무언가가 마침내 무너져내린 순간 같았다. 개인적으로는 「M. 발데마르 사건의 진실」도 기억에 남는다.

죽음에 이른 사람을 최면 상태로 붙잡아둔다는 설정은 지금 읽어도 꽤 기괴하다. 처음에는 “아니, 이런 상상을 한다고?” 싶었는데, 읽다 보니 단순한 괴담처럼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살아 있다는 건 뭘까. 숨이 붙어 있으면 살아 있는 걸까. 죽음을 미루는 것이 정말 그 사람을 위한 일일까.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1800년대에 쓰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현대의 존엄사나 연명치료 같은 문제까지 떠올리게 될 줄은 몰랐다. 포는 죽음을 단순히 무섭고 끔찍한 것으로만 그린 게 아니라, 인간이 죽음 앞에서 얼마나 이상한 방식으로 버티려 하는지도 보여준 것 같다.

흥미로웠던 건 소설과 시의 분위기가 꽤 다르게 느껴졌다는 점이다.

소설 속 죽음은 닫힌 방 안에서 점점 숨을 조여오는 쪽에 가깝다면, 시 속 죽음은 조금 더 서늘하고 슬펐다. 「갈까마귀」나 「애너벨 리」에는 분명 죽음과 상실이 깔려 있지만, 그것이 잔혹한 사건이라기보다는 지워지지 않는 사랑과 기억처럼 남는다. 특히 시를 읽으면서는 포라는 작가가 죽음을 정말 여러 얼굴로 바라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죽음은 공포이고, 어떤 죽음은 죄책감이고, 어떤 죽음은 사랑하는 사람을 끝내 놓지 못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소설과 시를 함께 읽으니 더 묘했다. 같은 죽음인데도 한쪽은 칼날처럼 다가오고, 한쪽은 저물어가는 빛처럼 남는다. 이 책에서 또 좋았던 건 데이비드 플렁커트의 일러스트였다.

그림이 단순히 예쁘게 들어간 삽화가 아니라, 포의 세계를 한 번 더 비틀어서 보여주는 듯했다. 검은색과 붉은색, 가면 같은 얼굴, 뒤틀린 형상들이 글의 분위기와 잘 맞았다. 어떤 그림은 문장을 읽기 전부터 이미 불길했고, 어떤 그림은 이야기를 다 읽은 뒤에 다시 보니 더 섬뜩했다. 고전문학은 가끔 거리감이 느껴질 때가 있는데, 이 책은 일러스트 덕분에 그 어둡고 기괴한 분위기가 훨씬 선명하게 다가왔다. 글과 그림이 따로 노는 게 아니라, 서로의 그림자를 더 짙게 만든다.

읽고 나서 기분이 산뜻해지는 책도 아니고, 누구에게나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였다라는 사실. 어떤 이야기는 찝찝하고, 어떤 이야기는 너무 음산하고, 어떤 장면은 소름돋는, 그런데도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 며칠이 지나도 「검은 고양이」의 불편함이 떠오르고, 「고자질하는 심장」의 심장 소리가 생각나고, 「어셔가의 몰락」의 저택이 무너지는 장면이 머릿속에 남는다.

좋은 작품이 꼭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건 아니라는 걸 다시 느꼈다. 어떤 작품은 마음을 긁고 지나가서 오래 남기도 한다.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이 지금까지 읽히는 이유도 아마 그런 데 있지 않을까. 시대가 이렇게 달라졌는데도, 사람이 무서워하는 건 생각보다 크게 달라지지 않았나 보다. 죽음 앞에서의 무력함, 죄를 숨기고 싶은 마음, 사랑하는 이를 잃은 뒤의 공허함, 자기 안의 어두운 충동을 끝내 통제하지 못하는 불안.

포는 그런 감정들을 이야기 안에 꾹 눌러 담아두었다.

오래된 악몽처럼 읽고 난 뒤에도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게. 그래서 읽는 동안 불편했지만, 다 읽고 나서는 조금 납득하게 됐다. 이래서 아직까지 이 사람의 이름이 남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에드거 앨런 포의 이야기와 시』는 무섭지만 눈을 뗄 수 없는 책이었다. 너무 깊이 빠져들면 같이 어두워질 것 같아서 한 번에 몰아읽기보다는 천천히 읽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여름밤에 읽으면 확실히 서늘할 책이고, 사람 마음 안쪽의 별로 보고 싶지 않은 부분까지 한번 들여다보고 싶을 때 꺼내기 좋은 책, 자꾸 생각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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