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에 한번 오르니 몸값이 열 배로 뛰는구나.

   一登龍門, 身價十倍(일등용문, 신가십배)

 

대시인 이백(李白)은 스물다섯 살에 고향을 떠나 각지를 전전했다. 남다른 재능과 큰 포부를 가졌지만 마땅한 추천자를 만나지 못해 서른이 넘도록 벼슬에 나아가지 못했다. 당시 형주장사로 있던 한조종(韓朝宗)은 후진을 많이 추천하여 명망이 높았다. 이백은 형주를 여행하던 차에 그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을 도와주길 청하면서 이렇게 썼다. 제가 듣기에 태어나 만호후에 봉해지진 못하더라도 한 형주(한조종)의 눈에 들길 바란다고 하더군요. …… 많은 인재가 당신의 문하로 달려가 일단 추천을 받으면 마치 잉어가 용문에 오르듯 몸값이 열 배로 뛴다더군요.”

용문은 산서성과 섬서성을 가르는 황하의 일단으로 이곳의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올라 용문에 이르면 잉어가 용으로 변한다는 전설이 전한다. 위대한 역사학자 사마천도 스스로를 용문에서 태어났다고 술회했다. 이 성어는 그 후 어느 순간 기회를 만나 두각을 나타내면 그 가치가 크게 오른다는 뜻으로 정착했다.

 

여한형주서」(與韓荊州書)

 

* 용문과 용문철교

 

 

 

 

 

 

중국사의 오늘 :

12711218(원 세조 지원 811월 을해)

원 세조 쿠빌라이가 유병충(劉秉忠)의 건의를 받아들여 몽고의 국호를 대원’(大元)으로 결정했다. 주역대재건원’(大哉乾元)에서 딴 것이다.

 

* 쿠빌라이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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