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보가 죽지 않으면 노나라의 난리는 끝나지 않는다.
慶父不死, 魯難未已(경보불사, 노난미이)
기원전 662년 노나라 장공이 죽고 공자 반(般)이 국군이 되었다. 그러나 탐욕스럽고 잔인한 권력욕의 화신 경보(慶父) 때문에 두 달이 채 못 되어 피살되었다. 경보는 민공을 즉위시켰지만 내란의 주범인 경보에 대한 백성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당시 제나라 환공은 관중(管仲)과 포숙(鮑叔)의 도움을 받아 나라를 부국강병으로 이끌어 중원의 패주가 되었다. 환공은 노나라 내란에 관심을 갖고 대부 중손추(仲孫湫)를 보내 상황을 파악하게 했다. 귀국한 중손추는 “경보를 제거하지 않는 한 노나라의 재난은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상황을 정확하게 보고했다. 과연 경보는 민공마저 살해했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경보는 거나라로 도망쳤다. 희공이 즉위한 뒤 노나라에서는 거나라에 경보를 돌려보내 달라고 요구했고, 경보는 귀국하던 중 자살했다. 화근이 될 것 같으면 그 불씨까지 완전히 확실하게 제거해야지 눈에 보이는 급한 불만 꺼서는 안 된다. 측근 정치에 의존하는 리더는 경보의 사례를 경고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 측근이 권세를 믿고 설치면 나라 전체가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춘추좌전』(春秋左傳) 「민공」(閔公)
중국사의 오늘 :
1627년 12월 13일(명 천계 7년 11월 기사)
환관으로 명나라 조야를 뒤흔들며 막강한 권력을 누렸던 간신 위충현(魏忠賢)이 목이 졸려 죽었다. 향년 60세(1568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