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돌(장기 알)을 든 채 놓지 못하다.

   擧棋不定(거기부정)

 

 

춘추 시대 위(衛)나라의 헌공은 폭군이었다. 대부 손문자(孫文子)와 영혜자(寧惠子)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헌공을 내쫓고 공손표(公孫剽)를 국군으로 맞아들였다. 그 뒤 영혜자는 후회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죽음을 앞두고는 아들 영도자(寧悼子)에게 제나라에 있는 헌공을 다시 맞아들이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런 정황을 포착한 헌공은 자신이 귀국하면 정치에는 일절 개입하지 않겠노라는 언질을 주었다. 대부 숙의(叔儀)는 무슨 일이든 앞뒤가 맞아야 하는데 내쫓을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다시 맞아들이겠다는 것은 무엇이냐며 바둑돌을 들고 놓지 않고 머뭇거리다가는 기회를 놓치고 실패할 것입니다.”라고 충고했다. 영도자는 이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아버지 영혜자의 유언대로 헌공을 맞아들였다. 그와 동시에 공손표, 손문자까지 죽이고 권력을 독점했다. 그렇게 하면 헌공도 어쩔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귀국한 헌공은 암암리에 보복을 준비했고, 대부 공손면(公孫免)을 이용하여 결국 영도자는 물론 영씨 세력 전체를 철저하게 제거했다. ‘거기부정’(擧棋不定)은 그 뒤 어떤 일을 맞이하여 머뭇거리며 결정하지 못하는 것을 비유하는 성어가 되었다.

 

춘추좌전』(春秋左傳) 양공」(襄公)

 

 

 

 

 

중국사의 오늘:

16571130(청 세조 순치 1410월 갑오)

순천향시의 시험과 이진업(李振鄴) 등이 과거 시험과 관련한 뇌물을 받은 죄로 처형당했다. 두 명의 거인(擧人)도 연루되어 죽었다. 비슷한 부정 사례가 계속 발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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