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낡은 빗자루

   家有弊帚(가유폐추)

 

25년 유수(劉秀)가 황제로 칭하면서 동한 왕조가 건립되었다. 역사에서는 그를 광무제(光武帝)라 한다. 정권 초기, 지방에는 여전히 할거 세력이 난립하며 통일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중에서 파촉(巴蜀) 지역의 공손술(公孫述)이 가장 강력했다. 광무제는 대사마 오한(吳漢)과 잠팽(岑彭)을 보내 공손술을 토벌하게 했다. 승승장구하던 잠팽은 뜻하지 않게 공손술이 보낸 자객에게 살해되었다. 오한은 유우(劉禹)를 보내 다른 방향에서 공손술을 공격하게 했지만 참패했다. 오한은 유우와 합류하여 전력을 정비한 다음 다시 공격을 가했다. 격전 끝에 공손술은 죽었고 파촉 지역은 평정되었다. 혼이 난 오한은 분풀이로 공손술과 그 장수들 가족까지 모두 죽이고 성도에 병사를 풀어 노략질을 시작했다. 광무제는 이 사실을 알고 즉각 사람을 성도로 보내 노략과 살육을 중지시키는 한편 백성에게는 집에 남은 다 떨어진 빗자루라도 천금만큼 귀한 법인데 책임이 막중한 장수들이 어찌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있는가.”라며 나무랐다. ‘가유폐추’(家有弊帚)는 자신이 가진 물건이 좋지는 않지만 보물처럼 귀하게 여기는 것을 비유하는 성어이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라는 의미도 깃들어 있다.

 

동관한기(東觀漢記) 광무제기(光武帝紀)

 

 

* 광무제

 

 

 

 

 

 

중국사의 오늘:

8371114(당 문종 개성 210월 계묘)

국자감에서 12종의 유가 경전을 돌에 새겨 지식인에게 제공하는 석경(石經)을 만들었다. 이 석경은 현재 서안 비림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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