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

   八公(팔공)

 

사기』 「회남형산열전의 주석서 가운데 하나인 사기색은(史記索隱)에 인용된 회남요략(淮南要略)에 보이는 단어이다. 회남왕 유안(劉安)은 은밀히 빈객을 모아 자신이 세력을 키웠는데 수천에 이르는 빈객 중 여덟 명, 팔공이 가장 뛰어났다고 한다. 이들을 중심으로 여러 학자들이 힘을 모아 편찬한 책이 회남자(淮南子)이다. 갈홍(葛洪)신선전(神仙傳)에는 이들 팔공이 신선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진서(晉書)에는 일찍이 유안이 팔공과 함께 산에 오른 적이 있는데, 이 때문에 그 산 이름이 팔공산이 되었다고 적혀 있기도 하다. 이후 팔공하면 문객 또는 뛰어난 문객을 가리키는 단어가 되었고, 간혹 신선이란 의미로도 받아들여졌다. 또 한나라 초기 네 사람의 은자인 상산사호(商山四皓)와 함께 ‘84로 불린다.

참고로 우리나라 대구 팔공산은 한자는 같지만 유래가 다르다. 신라 말 왕건이 견훤과 싸우다가 신숭겸 등 여덟 장수가 전사했는데, 이들이 전사한 곳을 팔공산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어느 쪽이든 여덟 명의 인재와 관련된 단어이자 산 이름이다.

 

사기(史記) 회남형산열전(淮南衡山列傳)

 

 

 

 

 

중국사의 오늘:

2731113(서진 무제 태시 910월 신사)

여자가 17세가 되도록 출가시키지 않는 집은 지방관이 배필을 구해 주라는 규정이 만들어졌다. 인구 증가를 위한 조혼 조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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