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척이 소를 먹이다.

   寧戚飯牛(영척반우)

 

부열(傅說)의 판축(版築)과 함께 판축반우’(版築飯牛)라는 고사성어를 남긴 영척(寧戚)은 세상에 나오기 전 소를 키우며 시골에서 살았다. 그는 세상 모두가 제나라 환공의 패업을 칭송할 때 요순을 만나지 못했도다.’, ‘밤이 길어 새벽이 오지 않는다.’며 환공의 업적을 깎아내렸다. 환공이 그 까닭을 묻자 제후의 배반이 잇따르며 군대 동원이 계속돼 백성들의 부담이 가중되는데 무슨 업적이냐며 대놓고 직언했다. 좌우에서 영척을 잡아 죽이려 하자 영척은 ()은 관용봉(關龍逢), ()는 비간(比干)을 죽였다. 지금 이 영척이 세 번째가 되겠구나.”며 탄식했다.

이 말에 정신이 버쩍 난 환공이 그를 풀어 주고 대화를 나누었더니 큰 인재였다. 환공이 예를 갖추어 그를 대하자 영척은 관중(管仲)의 추천서를 꺼냈다. 왜 진작 보여 주지 않았냐고 환공이 묻자 영척은 신이 듣자 하니 현명한 군주는 인재를 선택하여 보좌하게 하고, 현명한 신하는 군주를 선택하여 보좌합니다.”라며 군주가 직언을 싫어하고 아부만 좋아하여 신하를 홀대한다면 죽어도 추천서를 내놓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영척은 소를 키우며 자신의 뜻을 펼칠 기회를 줄 수 있는 리더를 기다렸다. 리더만 인재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동주열국지東周列國志

 

 

 

 

 

중국사의 오늘:

723117(당 현종 개원 110월 정유)

현종이 온천이 있는 여산에 행차했다. 북주 이후 꾸준히 개발되어 온 여산 온천이 현종 때 온천궁이란 이름으로 본격 확장되기 시작했다. 바로 화청지’(華淸池, 화청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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