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구하고 집을 묻다.

   求田問舍(구전문사)

 

동한 말기 진등(陳登)은 광릉태수(廣陵太守)로 일하면서 엄격한 법집행과 철저한 자기관리로 백성들의 마음을 얻었다. 하루는 허사(許汜)라는 친구가 찾아와 땅과 집을 사는 일 따위를 물어왔다. 진등은 변변찮은 허사의 사람됨을 아는지라 대꾸하지 않았다. 이어 밤이 되어 잠자리를 봐 주었는데, 진등은 허사를 침상 아래에서 자게 했다. 허사는 진등에게 섭섭한 마음을 품었다. 훗날 허사는 유표(劉表) 밑으로 들어갔고, 한번은 유비 등과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진등 이야기가 나오자 과거의 일을 불만스럽게 털어놓았다. 이에 유비는 황제조차 거처할 집이 없을 정도로 세상이 어지럽거늘 땅과 집에만 관심을 보이는 너 같은 자를 침상 아래에 재우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느냐며 허사를 나무랐다. 그러면서 유비는 자기 같았으면 백 척 누각 위에서 자고 허사는 지하에다 재웠을 것이라 했다. 고려 말기의 충신 목은(牧隱) 이색(李穡)은 이런 진등의 지조를 생각하면서 밤비라는 시에서 지금 이 마음 누가 알아주랴? 진등의 백 자 높은 다락에 높직이 누웠노라라는 대목으로 자신의 의지를 밝혔다.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진등전(陳登傳)

 

 

 

 

 

중국사의 오늘 :

10721012(북송 신종 희령 58월 갑진)

송 조정에서 방전균세법을 제정하여 토지의 실소유에 따라 정확하게 세금을 징수하기 시작했다. 신종의 개혁정치의 중대한 조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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