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가 없는데 털이 어디에 붙을 수 있나?
皮之不存, 毛將焉附(피지부존, 모장언부)
춘추 시대 진(晉)나라 공자 이오(夷吾)는 정쟁의 와중에 이웃한 강대국 진(秦)나라 목공(穆公)의 도움을 받아 고국으로 귀국하여 국군으로 즉위할 수 있었다. 이가 혜공(惠公)이다. 당시 혜공은 목공에게 자신이 국군으로 즉위할 수 있게 해 준다면 하서 땅 다섯 개 성을 보답으로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혜공은 이 약속을 무시했다. 얼마 뒤 진(晉)나라에 가뭄이 발생하여 진(秦)나라에 식량 원조를 요청하자 진(秦)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반대 상황이 되자 진(晉)은 식량 원조를 거절했다. 이때 혜공의 외숙 괵사(虢射)는 두 나라 사이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은 상황에서 식량을 원조하는 것은 ‘털만 있고 껍질은 없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면서 ‘껍데기도 없는데 털이 어디가 붙을 수 있겠냐며 원조에 반대했다. 경정(慶鄭)이 나라 간 신의를 저버리면 장차 어려움이 닥쳤을 때 누가 도와주겠느냐며 반박했지만 혜공은 당장의 이익에 눈이 멀어 식량 원조를 거부했고, 결국 진나라의 공격을 받아 포로가 되었다. 이 성어는 근본이나 기본이 없으면 여기에 기댈 모든 것들이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다. ‘백성 없이 나라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는가’라는 말과 같은 의미다.
『춘추좌전』(春秋左傳) 「희공」(僖公) 14년조
중국사의 오늘 :
1626년 7월 30일(명 희종 천계 6년 8월 경술)
후금 태조 누르하치가 향년 68세로 세상을 떠났다(1559년 출생). 요령성 심양의 복릉(福陵)이 그의 무덤이다.
* 누르하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