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새 경조윤

   五日京兆(오일경조)

 

서한 선제(宣帝) 때 장창(張敞)은 수도 장안 지구의 경조윤(京兆尹) 자리에 있으면서 엄격한 법 집행으로 치안과 질서 유지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선제의 마음을 잡았다. 장창은 경조윤 자리를 장장 9년을 맡았는데, 그 뒤 사건에 연루되어 자리가 흔들리게 되었다. 장창을 파면하라는 상소가 빗발쳤고, 파면은 시간문제였다. 그러나 장창은 흔들림 없이 업무에 충실했고, 그 무렵 발생한 절도 사건을 부하 서순(絮舜)에게 서둘러 처리하도록 명령했다. 서순은 닷새면 경조윤에서 물러날사람이 무슨 사건 조사냐며 코웃음을 치면서 집에 돌아가 늘어지게 잠을 잤다. 이 사실을 안 장창은 서순을 잡아다 옥에 가두었다. 때는 한 해가 끝나기 며칠 전이었다. 당시 법에 따르면 마지막 달에 죄인을 처결하게 되어 있었다. 관서는 결국 사형 판결을 받고 그해가 저물기 전에 처형되었다. ‘오일경조는 얼마 남지 않은 임기를 말하지만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자나 그런 언행을 비유한다.

 

한서(漢書) 장창전(張敞傳)

 

* 장창

 

 

 

 

 

 

중국사의 오늘 :

1915915

초기 공산주의 이론을 수립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진독수(陳獨秀)가 상해에서 월간 청년잡지를 창간했다. 이듬해 912권 때부터는 신청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 진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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