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세가 대나무를 쪼개듯 하다.

   勢如破竹(세여파죽)

 

삼국 시대 말기 서진(西晉)의 무제 사마염(司馬炎)은 촉나라를 멸망시키고 위나라 정권을 탈취한 이후 오나라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대신들은 실력을 좀 더 키운 뒤 공격하길 바랐다. 이때 대장 두예(杜預)는 사마염에게 글을 올려 오나라의 힘이 빠진 지금 공격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역설했다. 279년 사마염은 20여만 병마를 동원하여 수륙 두 방향으로 오나라를 공격했고 가는 곳마다 승리를 거두었다. 두예는 오나라 수도를 향해 진격하려고 하자 사람들은 장강의 물이 불었다며 기다렸다가 겨울에 공격하자고 건의했다. 이에 두예는 군대의 투지란 날카로운 칼로 대나무를 쪼개는 것과 같다. 몇 마디 쪼개면 나머지는 칼날만 갖다 대도 쪼개진다라며 반대했다. 여기서 세여파죽이란 성어가 탄생했고, 흔히들 파죽지세’(破竹之勢)로 많이 쓴다. 막힘없이 밀고 나가는 기세나 강력한 기세로 계속 승리하는 모습을 비유한다. 파죽지세의 기세로 백성과 나라가 발전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진서(晉書) 두예전(杜預傳)

 

* 사마염

 

 

 

 

 

중국사의 오늘 :

710912(당 예종 경운 원년 8월 계사)

예종(睿宗)이 재상 요원지(姚元之), 송경(宋璟)의 건의를 받아들여 중종(中宗) 때 내린 사봉관(斜封官) 수천 명을 파직시켰다. 사봉관이란 주로 돈을 내면 주던 관직인데, 황제가 조칙을 내릴 때 봉투를 비스듬히 봉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중종 때 위 황후는 안락공주 등과 결탁하여 엄청난 매관매직(賣官賣職)으로 조정을 문란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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