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석 장에 나귀가 없다.
三紙無驢(삼지무려)
옛날 재주가 남다른 한 서생이 늘 자신의 유식을 뽐내고 다녔다. 사람들은 이런 그를 ‘박사’라 부르며 비꼬았는데 그것도 모르고 좋아했다. 하루는 서생의 집에서 나귀를 한 마리 사게 되었다. 습관에 따라 간단하게 계약서를 써야 했다. 서생은 거창하게 지필묵을 대령하여 계약서를 써 내려가는데 큰 종이로 석 장을 쓰고도 다 쓰지 못했다. 날은 저물고, 나귀를 파는 사람은 발을 동동 구르며 재촉했지만 서생은 “글도 모르는 무식한 자가 뭐가 급하고 재촉하는가? 곧 나귀 ‘려’(驢) 자를 쓰려고 하는데……”라고 했다. 석 장을 쓰고도 정작 써야 할 나귀 ‘려’ 자는 나오지도 않았던 것이다. 수나라 때 사람 안지추(顔之推)는 『안씨가훈』에서 “박사가 나귀를 사면서 종이 석 장을 쓰고도 나귀 ‘려’ 자가 없었다”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삼지무려’는 문장이나 말이 요령을 얻지 못하고 온통 쓸데없는 것으로 가득 찬 상황을 비유하는 성어가 되었다.
『안씨가훈』(顏氏家訓) 「면학」(勉学)
중국사의 오늘 :
1508년 9월 10일(명 무종 정덕 3년 8월 신사)
무종(武宗)이 특무기관인 내행창(內行廠)을 다시 세워 환관 유근에게 맡겼다. 명 왕조는 신하들을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한 악독한 감찰기구를 여러 곳 세워 정치를 암울하게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