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짐을 벗은 듯하다.

   如釋重負(여석중부)

 

춘추 시대 노나라의 소공(昭公) 때 조정의 실제 권력은 계손씨(季孫氏)를 비롯한 이른바 삼환(三桓)의 수중에 들어가 있었다. 소공은 무기력하게 일손을 놓은 채 놀이에만 빠졌다. 심지어 모친상 중에도 웃는 얼굴로 사냥을 다닐 정도였다. 백성들은 소공의 무기력과 무지를 비웃었고, 민심은 떠나갔다. 그 뒤 소공은 어쭙잖게 숙손씨(叔孫氏)와 계손씨를 제거하려다가 도리어 이들의 연합 공격을 받고는 노나라를 빠져나가 제나라로 갔다. 백성들은 소공의 망명을 안타까워하거나 동정하기는커녕 손가락질을 하며 마치 무거운 짐을 벗은 듯후련해했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정변의 와중에 타국으로 도망가는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백성이 속 시원하게 여겼다는 것이다. 이는 소공이 진즉에 민심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는 즉위하자마자 백성의 안위는 아랑곳 않고 사냥과 놀이에 빠지는 등 국정을 게을리했고, 그저 삼환을 비롯한 귀족 세력에 빌붙어 구차하게 보잘것없는 자신의 권력을 연명하려 했다. 백성은 때로는 독재자 못지않게 무기력한 지도자를 증오한다.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 소공(昭公) 29년조

 

 

 

 

중국사의 오늘 :

15999(동한 환제 연희 28월 정축)

환제(桓帝)가 환관 당형(唐衡), 단초(單超) 등과 함께 양기(梁冀)와 그 일당 수십 명을 주살하고, 양기의 재산 30여억 냥을 몰수했다. 그해 세금이 절반으로 줄어들 정도의 엄청난 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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