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물을 씻어내고 맑은 물을 흐르게 하다.
激濁揚淸(격탁양청)
서진 때 견수(牽秀)라는 인물을 다룬 열전에 나오는 대목이다. 견수는 문인으로 상당한 재능을 보여 황제의 귀여움을 받으며 황제를 모시는 시종관이 되었다. 견수는 평소 여러 사람들에게 자신이 재상이 되면 백관을 제대로 감찰하여 권선징악(勸善懲惡)하고 ‘흐린 물을 씻어 내고 맑은 물을 흐르게 하듯’ 조정의 나쁜 풍토를 없애고 좋은 기풍을 살리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하지만 정작 요직에 기용되었음에도 조정의 기풍을 바로잡기는커녕 조정의 분란을 이용하여 최고 권력자들에게 달라붙어 아부하고 굽신거리기를 밥 먹듯이 했다. 사마충을 시작으로 사마예, 사마영, 사마옹에 이르기까지 네 명의 권력자 밑에서 충견 노릇을 하다가 피살되었다. 견수처럼 유능한 인재들이 이렇게 타락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재승박덕(才勝薄德), 즉 재주는 넘치고 덕은 모자라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덕이란 자기수양이자 투철한 소신일 것이다. 우리 주위에도 견수 같은 자들에 넘쳐나기 때문에 세상이 혼탁한 것이다. 어쨌거나 견수가 말한 ‘격탁양청’은 시대를 초월하여 꼭 필요한 성어가 되었다.
『진서』(晉書) 「견수전」(牽秀傳)
중국사의 오늘 :
1449년 9월 1일(명 영종 정통 14년 8월 임술)
황제로부터 ‘선생’이란 칭호를 듣는 등 국가 권력을 좌우하던 환관 왕진(王振)이 토목보(土木堡)에서 와랄(瓦剌)에게 패해 피살되었다. 와랄이 침공하자 왕진은 자신의 권위를 뽐내려고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영종에게 친정을 권했다가 영종은 포로가 되고 자신은 죽었다. 왕진 일당은 모두 척살되었고, 엄청난 재산은 몰수되었다.
* 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