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은 백성의 표본이다.

   廉者, 民之表也(염자, 민지표야)

 

북송 시대의 명신이자 중국 역사상 가장 엄정한 판관(判官)이었던 철면무사(鐵面無私) 포증(包拯)은 청천(靑天)이란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깨끗한 청백리였다. 그는 탐관오리를 기용하지 말기를 간청하는 글에서 청렴은 백성의 표본이요, 탐욕은 백성의 도적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공직자의 공사 구분을 가르는 기준을 탐욕으로 본 것이다.

송나라 시대 구국의 영웅이었던 명장 악비(岳飛)는 천하가 언제 어떻게 하면 평안해지겠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문신이 돈을 사랑하지 않고, 무신이 죽음을 아끼지 않으면 천하는 태평해질 것이다!포증이든 악비든 의식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모두 사리사욕을 버리고 공사를 확실하게 가릴 줄 아는 기본기를 주문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것이 나라의 존망과 직결됨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걸불용장리(乞不用贓吏)

 

 

* 포증(포청천)

 

 

 

 

 

 

중국사의 오늘 :

815713(당 헌종 원화 106월 계묘)

성덕(成德, 지금의 하북성 정정) 절도사 왕승종(王承宗)이 자객을 시켜 재상 무원형(武元衡)을 죽였다. 무원형은 당시 절도사를 중심으로 한 지방 세력 약화를 위해 삭번(削藩)을 추진하고 있었다. 후임 배도(裴度)가 일을 이어받아 완수하긴 했지만 지방 세력은 갈수록 기승을 부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