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아래
膝下(슬하)
“자식도 슬하의 자식”이니, “슬하가 쓸쓸하면 오뉴월에도 무릎이 시리다”는 등의 우리 속담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슬하란 글자대로 풀자면 ‘무릎 아래’이고 좀 더 정확하게는 ‘부모의 무릎’이다. 남의 부모를 높여 말할 때도 ‘슬하’라 한다. 그래서 일쑤 ‘슬하에 몇 남매를 두셨습니까’와 같은 표현을 쓰는 것이다. 이 단어는 『효경』 「성치」(聖治)에 보인다. 당나라 황제 현종은 이 슬하에 대해 “어릴 때를 말한다”는 주를 달기도 했다. 자식이 어릴 때는 주로 부모의 무릎 위에서 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식이 없거나 멀리 떨어져 있어 보지 못하는 것을 ‘슬하가 쓸쓸하다’라고 했고, 무릎 주변에서 놀 때의 자식이 귀엽고 키우는 맛이 있기 때문에 ‘자식도 슬하의 자식’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삼년상을 지내는 것은 자식이 태어난 후 적어도 만 3년 가까이를 부모의 ‘슬하’에서 극진한 돌봄을 받아야 하므로 이때의 은혜에 보답하는 의미라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점점 변하고 있는 지금 세태에서 ‘슬하’는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슬하는 부모에 대한 친근함과 존경을 담고 있는 단어임을 기억해 두자.
『효경』(孝經)
중국사의 오늘 :
26년 6월 25일(동한 광무제 건무 2년 5월 계미)
광무제 유수가 혼란기에 약탈 등으로 잡혀간 노비에 대한 석방령을 반포했다. 이후 건무 14년(38년)에 이르기까지 12년 사이 여섯 차례의 석방령을 내리는데 그중 세 차례는 전국적인 규모였다. 석방을 거부하는 노비주는 인구를 약탈 매매했다는 죄목으로 처벌했다.
* 광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