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희
夏姬(하희)
중국사를 보면 여성 때문에 신세를 망치거나 심지어 나라를 잃은 경우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하나라 걸 임금이 총애했던 말희, 은나라 주 임금이 애지중지했던 달기, 주나라 유왕이 봉화까지 피우며 웃기려 했던 포사 등은 모두 망국의 화근이란 불명예를 뒤집어썼다. 물론 억울한 누명이다. 1차적으로 잘못은 이들에게 빠져 나라를 망친 통치자들에게 있다.
그런데 춘추시대 정나라 목공의 딸 하희는 여러 나라를 시끄럽게 하면서 여러 남자를 망친 희대의 요부(妖婦)였다. 하희는 진(陳)나라 대부 어숙(御叔)에게 시집을 갔다가 남편이 죽자 그 나라 대신들과 간통을 저지르고 급기야 최고 통치자 영공(靈公)과도 간통한다. 이에 아들 하징서(夏徵舒)가 영공을 죽이고 권력을 장악했지만 강대국 초나라가 진나라를 공격하여 하징서를 죽인다. 하희의 미모에 초나라 장왕과 그 태자가 군침을 흘렸다. 그러자 무신(巫臣)이란 자가 장왕과 태자를 설득하여 영윤 양로에게 시집을 보내게 했다. 그런데 양로가 전투에서 죽자 하희는 그 아들과 또 불륜을 저질렀다. 이에 무신은 그녀를 친정인 정나라로 돌려보낸다는 명분을 세워 자신이 하희를 호송하다가 도중에 그녀를 데리고 진(晉)나라로 도망쳐 버렸다. 적어도 네 나라를 시끄럽게 만들고 적어도 일곱 남자의 혼을 뺀 대단한 여성이었다.
『좌전』 「선공」 9년조 외
* 하희
중국사의 오늘 :
1261년 5월 24일(남송 이종 경정 2년, 몽고 중통 2년 4월 을묘)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가 각지 관부에 명령을 내려 농사와 누에치기를 권장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