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패거리를 짓지 않으면 통치()의 길은 널찍하다.

   毋偏毋黨, 王道蕩蕩(무편무당, 왕도탕탕)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멸망시킨 다음 은나라의 중신이었던 기자(箕子)를 찾아가서 백성을 안정시키는 통치 방략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 이에 기자는 홍범구주’(洪範九疇)라는 아주 상세한 통치 방략을 설파하는데 이 대목은 그중 일부분이다. 이어지는 대목을 조금 더 보면 이렇다. “패거리 짓지 않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면 통치()의 길은 평탄할 수밖에 없다. 역행하지 않고 기울지 않으면 통치()의 길은 곧 바르다.” ‘무편무당불편부당’(不偏不黨)으로 많이 사용한다. 3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통치의 기본이나 이치는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다만 실천에서 차이가 날 뿐이다.

 

상서(尙書) 홍범(洪範), 사기』 「송미자세가

 

* 기자

 

 

 

 

 

중국사의 오늘 :

1563511(명 세종 가정 424월 정묘)

명장 척계광(戚繼光)이 평해위(平海衛, 지금의 복건성 포전 평해)에서 왜구를 대파했다. 20년을 끌어온 왜구의 소란이 비로소 해결되었지만 명나라 입은 피해는 엄청났다. 간악한 상인들과 탐관오리의 결탁으로 피해는 더욱 컸다.

 

* 척계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