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방 문서, 비방서

   謗書(방서)

 

전국 시대 위()나라 문후(文侯)가 악양(樂羊)으로 하여금 중산(中山)을 공격하게 하니 악양이 3년 만에 공략하고 돌아와서 자신의 공로를 자랑했다. 문후는 말없이 상자 하나를 꺼내 악양에게 건네주었다. 악양이 상자를 열어 보니 그동안 자신을 비방한 문서들이 가득 차 있었다. 조정 대신들의 온갖 비방에도 불구하고 문후는 3년이나 악양을 믿고 기다렸던 것이다. 악양은 부끄러워하며 승리의 공을 문후에게 돌렸다.

 

방서는 이렇듯 누군가를 비방 공격하는 글을 말하는데, 동한 시대 왕윤(王允, 소설 삼국연의에서 초선을 이용하여 동탁과 여포를 이간하는 인물)이란 자는 사마천의 사기를 두고 한 왕실을 비방한 책이란 의미로 방서로 지목하면서, 무제가 사마천을 살려준 탓에 방서가 세상이 나오게 되었다며 사마천과 사기를 비방했다. 이후 방서는 타인을 깎아내리는 책을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고, 간혹 사기를 가리키는 대명사로 사용되기도 했다.

 

전국책』 「진책(秦策)

 

 

* 도판은 위 문후.

 

 

 

 

 

 

중국사의 오늘 :

196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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