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의 재상

   山中宰相(산중재상)

 

도홍경은 어려서부터 도 닦기를 좋아하여 열 살 때 이미 도사 갈홍(葛洪)신선전(神仙傳)을 읽고 연구할 정도였다. 여기에는 아버지가 첩에게 살해당한 유년기의 비통한 경험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본다. 벼슬을 하긴 했지만 이내 내던지고 구곡산(句曲山, 모산茅山)으로 은거하여 신선과 약초를 찾아다녔다. 그리고 스스로 도은거라 불렀다. 제나라를 이은 양나라의 무제는 나라에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그를 찾아가 자문을 구할 정도였다. 이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도홍경을 산중재상이라 불렀고, 훗날 시나 문장에 끊임없이 인용되었다. 지금 우리 현실을 보면 산중재상은커녕 재상 노릇할 만한 자를 구하기조차 어렵다. 최소한의 자기 수양이 되어 있는 사람조차 찾기 어려우니 재상이야 말해서 무엇하랴!

 

남사(南史) 은일隱逸 도홍경전

 

 

* 도판은 도홍경.

 

 

 

 

 

중국사의 오늘 :

1927324

북벌군 제2, 6군이 직(, 하북)(, 산동) 연합군을 격파하고 남경을 점령했다. 영국과 미국에서 교민 보호를 구실 삼아 군함으로 남경 군민에게 포격을 가해 2천 명의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남경참안’). 국민당 정부는 1928330일 오히려 남경사건으로 미국에 사과하고 배상하는 한편 중국인을 총살하여 사죄했다. 이후 영국, 프랑스, 이태리와 같은 협정을 맺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