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이 끄는 수레가 이르다.

   羊車到(양차도)

 

진나라 무제는 황음무도하기 이를 데 없는 황제였는데 늘 양이 끄는 수레를 타고 비빈들의 처소를 찾았다. 그러다 보니 비빈들은 양을 자신들의 처소로 유인할 온갖 아이디어를 내 양이 좋아하는 부드러운 대나무 잎사귀를 자기 처소 앞에 꽂아 두거나 땅바닥에 소금물을 뿌려 양을 유인했다고 한다.

 

양차는 궁중에서 말이 끄는 마차보다 작고 가벼운 수레로 마차 대신 이용되기도 했다. 훗날 양차도는 제왕이 궁중의 어떤 비빈에게 행차하는 것을 나타내는 용어가 되었다. 그래서 양차부도’(羊車不到)란 말도 생겨났는데, 양이 끄는 제왕의 수레가 이르지 않는다는 뜻으로 궁녀들의 원망을 대변하는 용어가 되었다. 어느 것이 되었건 절대 권력을 가진 제왕의 기행을 가리키는 용어로, 이런 기행에 맞추기 위한 별별 기행들이 함께 나타났음을 보여 준다.

 

진서(晉書) 호귀빈전(胡貴嬪傳)

 

 

 

 

 

중국사의 오늘 :

1201222(금 장종 태화 원년 정월 기사)

이날 금나라 태부감 손복의 보고에 따르면 당시 금나라 관원은 37,000여 명인데, 그중 고위 관직자에 대한 특혜로 주는 문음관(門蔭官)3분의 2를 차지했다. 금나라 고중급 관리들이 문음 특권으로 자손대대 관직에 나감으로써 기본적으로 관료 사회를 농단하고 있었음을 잘 보여 주는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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