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들 + 시녀 이야기 세트 - 전2권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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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 끝나버린 고통을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남은 건 그림자뿐인데, 그것도 마음속이 아니라 육체에 새겨진 그림자, 고통은 표식을 남기지만 정작 너무 깊어서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으면 잊혀지는 법(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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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애트우드#시녀이야기#증언들#황금가지#김선형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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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보다 애트우드를 많이 늦게 만나 리커버판으로 갖고 있다. 몇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그녀의 스타일에 빠져버렸다(책을 미리 사두어서 너무 행복한 것). 겨우 두 권을 읽고 그렇게 말하면 과도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난 언제나 이렇다. 사람들이 애트우드 만만세를 할 때 잘 몰랐는데..아 이런 글을 쓰는 작가님이셨구나. 사람들이 그래서 그녀의 두꺼운 책 한권이 아니라 시리즈도 중간에 쉬지 않고 잘 읽어내는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처음만난 작품은 바로 「시녀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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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라는 단어, 복고풍의 표지에서 17,18세기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인줄 알았다가 그게 아님을 알고 마지막 순간까지 이 책이 어떻게 전개될지 읽는 동안 내내 그 흥미를 유지했다. 스토리 자체도 탄탄하지만 그 안에서 들려주는 애트우드의 메시지가 너무도 분명하다. 소설의 시작을 알리는 첫 시작부터 이러하다. “우리는 미래를 갈망했다. 우리는 어쩌다 터득하게 되었을까? 영영 채울 수 없는 허기를 갈구하는 이런 재능을, 도대체 어디서 배워버린 걸까? 갈망이 공기 중에 떠돌았다(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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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떤 책 이길래 시작부터 이런 메시지를 던지는가 싶었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그러한 이야기의 배경을 친절하게 설명은 하지 않지만 그런 분위기를 전해주는 것으로 소설적 미학을 전달하기엔 충분했다. 그리고 그러한 친절은 34년 만에 나온 후속작 ‘증언들’에서 충분히 작가와 독자가 함께 전개해 나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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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동안에도 하나씩 던져주는 메시지가 있지만 다 읽고 나서 이런 단어들이 떠올랐다. 상호감시, 사방감시, 여성과 임신, 마이너스 출산, 생태파괴와 환경오염, 동성애, 여성에 대한 성범죄와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 달라진 세상이지만 누군가에겐 달라진 세상, 누군가에겐 예전 그대로의 세상, 자유와 선택에 관한 깊은 고민, 당연시 되던 것들. 이 모든 것들이 날씰과 씨실이 되어 완성된 그림을 향해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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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과연 디스토피아 소설일까? 디스토피아와 관련된 소설이긴 해도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그러한 망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여성성범죄에 대해 대놓고 헛소리를 하는 인간들뿐만 아니라 은밀하게 내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애트우드는 34년 전에 쓴 이 소설에서 다음의 글을 썼다. “그녀에게 있어 성공적인 삶이란 ‘그런 일들’을 잘 피하고 ‘그런 일들’을 배제한 인생이었다. 좋은 여자들에게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다(p.97).” 재닌이 레드센터에 들어온 후 스스로 비판해야 했던 그 장면은 좀처럼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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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들이 전개 되는 동안 앞으로의 전개가 어떻게 될지 기대가 되는 문장이 나오는데 바로 다음과 같다. “나는 기다린다. 그리고 마음을 가다듬는다. 내 자아는 지금부터 내가 구성해야만 하는 물건이다. 연설을 짜 맞추어 구성하듯이 지금부터 내가 내놓아야 하는 것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만들어낸 인공적인 무엇이다(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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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이야기는 대략 500여 페이지에 달한다. 그리고 남은 400여 페이지가 진행되는 동안 여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 고통과 모멸, 참을 수 없는 순간을 사는 삶은 어떤 삶인가. 결코 머물고 싶지 않은 이 순간을 사는 삶(p.248)을. 애트우드는 처음부터 끝까지 소설속 화자로 등장하는 오브프레드가 얼마나 각성상태에서 살고 있는지의 모습을 통해 읽는 독자마저 그렇게 만든다. 결말마저도 사실 나는 맘에 들었다. 시녀이야기와 동시에 읽다보니 ‘증언들’ 역시 너무 재밌었다. 용기 있고 현명한 소녀들과 인내와 기회를 놓치지 않는 여인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시녀이야기’가 있었기에 ‘증언들’이 있다. 내게 증언들은 전작에 열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만나 그 흥미가 더 크진 않았지만 여전히 멋진 문장들이 많았다. 애트우드 여사님 만만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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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 김영민 논어 에세이
김영민 지음 / 사회평론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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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하면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하고 그다음은 잇지 못하고, 인의예지(仁義禮智) 정도밖에 나가지 못한다. 사마천의 사기열전 역시 볼 때는 즐겁고, 읽다보면 아 이게 여기서 나온 말이구나 싶지만 좀체 삶에서 이를 실천하는 지향점으로 삼을 수 있을 정도로 깊숙이 들어오지는 못하고 있다. 옛날 선비들이야 매일 읽고 또 읽고 하다 보니 어쩌면 그것이 자연스럽게 몸에 베인 사람이 있었을 터인데 지금 우리가 논어를 한 권의 ‘책’으로 만나 끝을 맺는 일은 아마도 내가 사는 동안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다. 신기한 게 다시 돌아가서 읽어도 새로우니 말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논어는 단순한 ‘책’이 아니라 이 책에서 언급한대로 지적 담론의 소산(p.69)으로서 우리 곁에서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이다. 궁핍한 시대를 살면서 마주한 현실의 문제와 고투했던 당대의 지식인 중 한사람(p.72)의 말과 삶이 많은 사람들과 시대를 거쳐 지금 여기에 이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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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에 대해 나 자신보다 타인에게 추천하기에는 충분히 좋았던 교수님의 책이 다시 나왔을 때, 큰 기대는 갖지 않았는데 실은 나는 전작보다 이 책이 매우 좋았다. 유머코드가 이전작보다 훨씬 많았는데 그 유머들 때문에 본래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잃지 않기 위해서 집중해서 읽었다. 그리고 한 주제에 대한 분량도 적지 않은 편이라 오히려 이런 글쓰기 방식이 내게는 좀 더 진중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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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에 몇 년간 연재된 글이라 하니 아마도 이 글들 또한 그 당시 여러 사회분위기나 주요 문제를 고려한 주제가 선택이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어떤 챕터에는 한가지의 주제 예를 들면, 인(仁), 위(威), 욕(欲), 정(正), 예(禮), 권(權), 습(習)등으로 하여 오늘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몇 천 년 전에 살아간 사람들의 마음을 포개어 준다. 이를테면 정확하게 미워하기(p.90)에 대한 부분, 정확하기 미워하기 위해서는 그전에 공정성에 대한 명철한 인식(p.95)을 필요로 한다는 부분이나, 누구보다 원하는 대로 사는 삶을 욕망이 이끄는대로 살아라는 말 대신 70세에 마음이 욕망하는 대로 해도 도리에 어긋남이 없었다(p.104)는 말을 전하면서 그말의 속 깊은 뜻은 오늘의 자신은 조금이나마 어제보다 나은 자신이었으므로, 그 결과 멋대로 해도 되는 경지에 마침내 도달했다(p.105)글로서 마무리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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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에서 가르쳐 지는 것이 삶의 태도로서 갖춰야할 제반 가르침과 같은 위치, 학습되어야 할 유교로서 갖는 위치가 매우 크지만 이처럼 삶의 태도가 외적으로 드러난 것임을 이 책을 보다보면 느끼게 된다. 다음에 이어지는 책에서 나온 구절들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임기응변이란 규범에 맞추어 자신을 제대로 세울 수 있는 경지를 완수한 사람에게나 가능한, 최후의 경지라는 사실(p.124)’, ‘우리는 외적인 행동규범에 수동적으로 따르는 존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행동 규범 자체를 바꿀 수도 있는 존재들이라는 것(p.137)’, ‘신에게 뭔가 얻어낼 수는 없지만, 예를 통해 인간은 비로소 인간끼리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라고.(p.145)’, ‘정교한 질문은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훈련된 행위이며, 대상을 메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나 가능한 것(p.153)’, ‘욕심과 예의가 전쟁을 할 때, 예의가 욕심을 이기게끔 하면, 자신은 예로 돌아갈 수 있다(p.155)’, ‘안으로 반성하며 거리끼지 않으면,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랴?(p.168)’와 같은 부분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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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을까? 저자는 논어 에세이라고 했지만 사실 개인의 경험과 관련된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그런 에세이들과는 사뭇 다르다. 정말로 ‘논어’가 중심에 있고 그리고 그 범위는 여러 가지 ‘현상’을 통해서 우리에게 일러준다. 알려진 바와 같이 향후 교수님이 구상하고 있는 논어프로젝트의 일부이고, 이 에세이는 논어 이야기의 전부가 아니라 그 이야기로 안내하는 초대장이라고 한다. 앞으로 전개될 그 프로젝트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는 없지만 코밍쑨을 전달하기에는 좋았던 책이라 생각한다. 때문에 저자의 의도와 달리 나는 본문에 너무 빠져서 읽고 말았다. 텍스트를 읽어내는 일에 대한 연습보다.. 뭐랄까.. 난 항상 강의를 열심히 하는 교수님이 좋았다 할까? 16주간 강의계획서를 받았을 때 발표가 절반을 차지하는 그런 것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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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 개정판 카프카 전집 3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주동 옮김 / 솔출판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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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을 초월하며 사실상 그가 의식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 이상을 말하게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상징을 파악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것을 자극하지 말고 선입관 없는 정신으로 작품을 파고들어가며 그리하여 은밀한 흐름의 줄기를 찾으려 하지 않는 일이다. 특히 카프카의 경우에 있어서는 그의 유희에 응하면서 겉 모습을 통해서 드라마에, 그리고 형식을 통해서 소설에 접근하는 것이 적절하다. p.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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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카프카의작품속에나타난희망과부조리#알베르카뮈#카뮈전집#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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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작품을 재조명하게 만든 유명한 두사람, 사르트르와 카뮈라고 한다. 얼마전 한꺼번에 카뮈책을 보다보니 카뮈가 한 말인지 번역자 김화영 교수님께서 한 말인지 헷깔리는데(아마도 김화영 교수님읙 글이었지 싶다) 한 작가의 작품 생애 전반을 보다보면 일관된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도 있지만 대체로 작품활동 과정을 통해 변하기도 하는데 결국 그래도 종래 그의 작품세계가 완성이 된다는 것이었다. 어떤 책을 읽든 작품을 통해 작가가 지향하는 바를 보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의 연보를 보는 일, 작가의 생애에 대하여 아는 일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결코 방해가 되는 일은 없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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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단행본으로 한권의 책만 본다면 특별히 그렇게까지 작가의 생애까지 찾아서 볼 일인가 싶기도 하지만 일생동안 여러권의 책을 낸 작가의 어떤 책을 먼저 접하느냐에 따라 제한된 해석과 감상을 남기게 될 수밖에 없다. 그건 내가 작품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근원적 한계이다. 미리 읽지 않은 책을 아는 척 하는 것 보다느 꾸준히 읽으면서 내 안의 변화, 인식의 확장을 경험하는 것도 수순이라는 것을 김화영 교수님 덕분에 조금 많이 용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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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런것을 따진다면 작가가 작품을 발표한 연대기 순으로 보는 것도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사실 그러다가는 끝까지 읽어나가기도 어려울지 모른다. ㅋㅋ 나의 경우 편혜영 작가님께서 당시 가장 최근에 발표하셨던 ‘홀’을 읽고 난 후 전작을 찾게 되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다른 책을 읽게 하는 동력이 되기도 했고 이후 책들을 읽는 과정에서는 좀더 큰 이해가 닿기도 했다. 우리의 이장욱 작가님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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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가 길었지만 어제 내가 처음으로 만난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은 내게는 여러모로 그의 책 중 이 책을 처음으로 택한 것이 매우 만족스럽다. 소송은 카프카를 단번에 유명하게 한 책이기도 하지만 카프카의 작품세계에서 말로만 들었던 꿈과 현실, 일상과 환상, 기이함, 시민의 삶, 허망함 등 모든 것이 등장한다. 나로서는 그 이야기를 어떻게 끝까지 읽어갔나. 심지어 오타인줄 알고 집에 있는 다른 판본과도 비교하고 보았는데 몇번의 교정도 없이 이대로 쓰여진 글이었음에도 흐름을 놓치지 않고 따라갔다. 아마도 그것은 내가 이 페이지 처음에 인용한 카뮈가 친절히 알려준 길잡이 덕분이 아닌가 싶다. 덕분에 오늘 지만지에서 나온 단편집에 실린 네편의 단편은 오히려 단편보다 뒤의 해석이 더 기이했을 뿐이다(일단은 지금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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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분들도 소송을 이렇게 재밌게 읽었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사실 이 소설에서 빼고 싶은 문장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내가 이 모든 문장을 다 기억하는 것은 아니었고 내가 가진 지식이나 사전 정보적인 측면, 이게 말이 돼? 어떻게 이런일이 일어날 수 있지? 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각각의 장은 홀로 존재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특히 우리에게 잘 알려진 법앞에서와 같은 부분은 어제 카뮈가 말한 ‘목욕탕 낚시사건’과 더불어 너무도 우리의 일상에 가까이 그 두사람이 있었던 것임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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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에 대한 이야기는 작품 자체로서 할말도 많지만 변호사, 화가, 상인, 교도소 신부님 이야기 부분만 해도 그러한데 이후 카프카를 만날 호기심이 제대로 충전되었다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싶다. 그리고 <성>을 읽고 난 후 함께 논의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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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보고나면 내가 좋아하는 두 사람,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만든 제레미 아이언스 주연의 영화 <카프카>도 마져 보고 싶다. 카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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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작가 - 존 버거의 생애와 작업
조슈아 스펄링 지음, 장호연 옮김 / 미디어창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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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만난 존 버거의 책은 ‘벤투의 스케치북’이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마다 밀도 높은 문장들을 보며 머리속에 이미지를 재현하거나 환기를 일으켜준 덕분에 전작수집을 희망하는 작가 중 한명이 되었다. 그후로 장 모르가 찍은 오십년 우정의 풍경 ‘존버거의 초상’을 보았기에, 그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모른 채 마지막 모습만으로 노동하는 인간으로서 존 버거를 매우 좋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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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작가는 비교문학과 미디어 이론을 전공한 미국인 조슈아 스펄링이 쓴 존버거에 대한 생애와 작업에 대한 글이다. 일반적인 전기처럼 그의 일대기를 시간적으로나 면면의 모두를 다루는 책은 아니지만 존버거가 떠난 지금 이 책은 그의 생애와 활동을 돌아보고 비평가로서의 면모 뿐만이 아니라 예술가, 각본가, 소설가, 그리고 이모든 글쓰기와 사유의 방식을 통해 그의 생을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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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최고의 미술사학자였던 케네스 클라크와 함께 방송에 출현하면서 기존의 미술 비평에 대한 전문가적 위치를 비판하고 다른방식으로 해석했던 그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이라곤 단지 ‘다른방식’이라는 용어 뿐이었다. 책에서도 여러번 언급되고 존버거 생에 가장 널리 알려진 ‘다른 방식으로 보기’라는 책을 보고 나서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지만, 이 책에서는 그가 어떤식으로 예술 작품에 대해 생각하는지 그 배경을 잘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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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서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마르크스주의자였지만 공산당에 가입한 적은 없고, 예술은 철저히 지역성을 기반으로 한다는 전제하에 존 버거의 시각은 동시대적인것, 구체적인것, 흔한 것을 강조하였기에 추상미술에 대한 그의 공격은 매우 신랄하다. 특히 그는 예술이 이데올로기 혹은 상업자본주의와 결합되어 변질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에 대해 공개적인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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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부커상을 받은 [G]외에도 그의 첫 소설인 [우리시대의 화가]에 대한 배경과 이야기,그리고 당시 영국을 떠나던 버거의 상황을 이야기해준다. 그리고 이후에는 존버거가 장모르를 만나 완벽한 협업의 순간으로 탄생하게 된 [행운아]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는데 그 과정에서 이 글을 쓰는 작가에 대한 고마움을 금할 길이 없다. 그가 이전에 존버거와의 작은 인연을 책 속에서 소개를 하긴 하였는데 정확히 그 이후 두사람의 관계까지는 잘 모른다. 다만 80여 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참고문헌은 그가 이 책을 쓰는 과정이 박사 논문을 쓰듯 상당한 공을 들인 책임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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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챕터에서는 그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잘 들려주는데 아마도 내가 이 책을 보지 않고 [G]를 읽었다면 나는 어떻게 보았을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우리 시대의 화가]역시 요근래 접했던 헝가리의 혁명 전후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인데 이 두 소설에서 버거가 말하고 싶었던 것들에 대해 비평가들의 목소리 이전, 그의 생각을 먼저 알게 된 것이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사실 이 책이 나왔을때 부터 사야지 했지만 당장에 읽을 것 같지 않아 바로 데려오진 않았다. 마침 후배가 도서관에 갔다가 들고 온 것인데 존 버거의 책을 어느 정도 본뒤 재독을 반드시 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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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는 비록 영국에서 태어났지만 인생의 절반가까이를 스위스에서 지냈다. 그가 그간 갖고 있었던 사상, 신문과 방송을 통한 활약, 사회주의자로서 세계의 변화가 점차 암흑의 시대로 들어갈 즈음 모든 활동을 접고 시골로 들어가 생활을 시작했을 때 그와 어깨를 함께 했던 수전 손택마저 우려의 목소리를 냈지만 그는 다시 글쓰기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을 뿐이었다. 생애 긴 시간을 그렇게 노동하는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그가 말한 구체적인 예술에 대해 다시금 농민들의 삶을 살아가면서 나온 작품들은 이전에 발표한 작품들과는 조금 결을 달리한다. 내게도 그의 작품이 가득하다. 그리고 이 책을 보고 나서 눈에 잘 보이는 곳으로 갖다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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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가 처음부터 명성을 잃은 적이 없고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삶을 살아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그런 명성 뒤에 숱한 공격과 따가운 시선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을 써준 작가에게 너무 고마웠다. 뭐라고 할까.. 버거의 글에 가장 어울리는 그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라고 할까. 책 전체가 좋으면 리뷰를 쓰기가 너무 어렵다. 며칠 묵혀 생각좀 하고 쓸까 했는데 그럼 영영 못쓸거 같았다. 전달이 부족하니 꼭 책으로 만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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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 - 지중해의 태양 아래에서 만난 영원한 이방인 클래식 클라우드 16
최수철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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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의 책을 몇 년전에 특별판전집으로 구매를 한 뒤에도 이런저런 미루기 핑계를 되며 그간 읽지를 못했다. 읽어도 제대로 이해를 한 걸까 하는 그런 느낌이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중에 읽었던 ‘전락’과 ‘이방인’은 매우 좋았다. 그럼에도 카뮈를 좋아하는 다수의 사람들처럼 나도 ‘카뮈’가 너무 좋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잘 알지 못해 그렇게까지 말할수 없는 그런 상태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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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철 작가님께서 잘 안내해주었고, 앞서 선행하여 카뮈의 작품을 본 것이 이번 ‘카뮈’편을 함께 여행하는 듯 읽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번에 읽은 카뮈 작품에 대한 이해, 이전에 읽어 희미해진 책에 대한 기억과 더욱더 명증해진 책의 의미들, 그리고 앞으로 기대를 하면서 보게될 책들에 대해서 말이다. 또한 카뮈의 작품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도시를 방문하며 그곳에서 삶의 흔적, 자연과 문화의 역사를 서술한-어떻게 보면 이것이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핵심이기도 한-이야기를 통해 좀 더 카뮈의 곁에 가까이 다가간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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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좀더 나아가 철학적(사상) 에세이, 희곡, 소설, 소설 역시 ‘부정’과 ‘긍정’을 다루는 소설들, 그리고 수첩에 적혀진 일기와 작품구상 노트의 여러글들은 짧은 생애를 살다간 작가가 그 속에서 끊임 없이 생각하고 각성상태에 머무르기를 희망한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그의 삶은 어쩌면 너무도 내적인 투쟁이 쉬지않고 이루어졌었기에, 자연의 풍경을 바라보며 다시금 삶을 환기하는 그런 삶의 연속을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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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웰과 비슷한 시기를 살았고 그들은 함께 ‘전쟁’을 겪었다. 오웰은 그 속에서 타인, 한사람 한사람의 면면을 들여다보며 전체로 나아갔다면, 카뮈는 개개인의 인간의 삶 보다는 자신의 삶을 철저히 들여다 보는 방식을 택한다. 가령 ‘내가 체험한 빈곤은 나에게 원한을 가르쳐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변함없는 마음, 그리고 묵묵한 끈기를 가르쳐 주었다” 라고 한다. 가난에 관한 것 뿐만이 아니라고 카뮈의 생애동안 지속적으로 따라다닌 그의 ‘병’은 매순간 포기하고 싶었을 삶의 순간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그의 모든 작품속에서 드러난다고 할 수 있고, 특히 ‘시시포스의 신화’를 통해 얼마나 그가 우리가 한치의 낭비없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온전히 살기를 희망하고 있는지 삶의 부조리를 인식하고 그것과 함께 살아가기를 강력히 권고를 하는 수준에까지 이른다. 그런삶을 시시포스의 신화를 통해 들려주는 그의 작가적 기량은 시시포스가 다시 정상에서 내려오는 과정에서 더욱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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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의 말씀대로 카뮈의 유작인 ‘최초의 인간’이 완성된 채로 나왔더라면, 다소 교훈적인 카뮈의 그간의 작품들에서 좀더 고백적인 그리고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좀더 다르게 다가왔을 지도 모르겠다. 그가 살아생전 작품속에서 보여준 인간삶의 근본적인 조건, ‘죽음’을 들여다 봄으로써 ‘삶’을 완전히 살아가는 삶을 이야기들은 너무도 분명한 명제임에도 불구하고 당위적인 느낌과 동시에 먼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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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책에서도 보면서도 인상이 깊었던 구절이지만 이책에서도 다시 볼 수 있었던 부분이 있다. 나는 카뮈가 그럼에도 행복에 대하여, 삶에 대하여 그저 열심히, 행복하게 사십시오가 아니라 ‘또렷한 의식’을 유지하는 것, ‘각성’ 상태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이야기한 부분을 기억한다. 하지만 깨어있는 삶은 철저한 자기관리이고 자기인식이다.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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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바로 ‘뫼르소는 누구인가’ 하는 부분이다. 이방인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뫼르소’라는 인물에 대해 각자 다른 말을 하게 될 것인데 최수철 작가님께서 그의 ‘과묵’에 초점을 두고 뫼르소를 말하는 부분은 그 자체로 삶에서 태도로 자리를 잡아야 할 부분들과도 연결되어 책의 한 캐릭터의 해석을 넘어서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혼’의 성장과 ‘완성’의 과정에 대한 부분도 무척 좋았던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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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은 클래식 클라우드 중 가장 공감하면서 읽은 책이다. 앞으로도 계속 책이 나올테니 언젠가 바뀌기도 하겠지만 작가님이 연주한 ‘카뮈’의 작품과 삶에 대한 해석이 곁들어진 그 연주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덧붙여 카뮈의 작품은 내가 볼 땐 읽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읽고 나서 쓰게 될 것은 한줄 요약으로 되거나, 아니면 숱한 문장을 옮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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