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저녁이 저물 때
예니 에르펜베크 지음, 배수아 옮김 / 한길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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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제본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읽게 된, 처음 만난 작가의 책이다. 쉽게 읽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절제된 소설 속 문장, 독특한 구조의 설정만으로도 다 보고나니 단편적으로 드는 생각들이 무척 많았다. 그래서 종합적으로 생각을 정리하기 어려웠고 한차례 리뷰를 적었지만 맘에 들지 않아 삭제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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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총 다섯 장과 네 개의 막(간극)으로 구성되어 있다. 막간극은 앞선 이야기가 끝난 다음의 이야기에 만약이라는 가정을 통해, 어쩌면 그 순간의 죽음을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를 정황을 가정해본다. 혹은 소설 속 여인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 시간을 달리할 수는 있는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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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첫 도입은 시대적으로 가장 앞선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분열 전후시대를 살아가는 한 여인, 가족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이후 나치정권, 소비에트 시대, 마지막 통일 독일 이후의 시대 순으로 흐름이 전개 된다. 시대와 역사를 우리는 기록된 사실만으로 이해하기도 하지만, 각각의 시대를 통과하며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통해서 이해하기도 한다. 예니에르펜베크는 자신이 가진 풍부한 역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소설을 탄생 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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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이 주는 강렬한 서사적 풍경과 등장인물의 절제된 대화, 시점을 달리하며 이야기 되는 다소 리드미컬한 부분들이 무척이나 이색적이었다. 이 소설은 결국 하나의 장편소설로 봐야겠지만, 읽는 나는 다섯 개의 이야기, 네 개의 막간극 이야기, 그리고 전체의 이야기를 등을 무수하게 조합하여 여러 이야기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생경한 경험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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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군다나 텍스트의 위치에 따라 다시 재해석되어 태어나는 동일한 문장이라든지, 괴테의 책, 조각상, 발받침과 같이 매 장마다 언급되는 사물들의 존재가 소설 전체에서 보이지 않은 정서적 흐름의 연결이 되어 주는 부분은 이전 소설에서는 그간 경험하지 못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사실 이로 인해 2장을 읽어 내려가기 전까지 혼란이 다소 있었지만 결국 그 부분은 읽어나가는 동안 해결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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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소설의 구조가 이야기 자체가 되어 메시지로 연결이 된다. 다섯 번의 삶과 죽음은 한 여인에게 일어날 수 있는 삶의 경로를 무수히 많은 경로에 이를 수 있음을 생각게 하지만 자신의 삶의 테두리, 삶과 죽음의 경계는 자신이 사는 시대의 면을 벗어나지 못함을 이야기한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니까, 개인이 삶의 넘어설 수 없는 부분, 그 시대의 재앙을 소설속 인물을 통해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 지극히 사회적이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으로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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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이 자신의 삶에서 취할 수 있는 부분들이 확대되어지기는 하지만 다른 삶을 살았을지 모른다 하더라도, 생애 어느 순간 찾아올지 모르는 것이 바로 죽음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다는 것도 생각하게 한다. 실은 이렇게 리뷰를 적고 있지만 아직도 이 소설의 초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잘은 모르겠다. 소설자체에 초점을 둬야 할지, 소설을 읽고 난 후 전반적으로 드는 내 감상에 초점을 둬야할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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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고 또 읽어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정리한 내 감상문이 나오기 까지 내 안에서 이루어진 생각은 무수히 많았다. 나는 소설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 마음을 끄는 완벽히 독립적 존재가 가능한 문장들이 무척 좋았던 것 같다. 모든 독자들이 문장이 좋은 소설을 좋아하겠지만, 한 번 태어난 문장에 대하여 소설가가 소설 안에서 재배치, 재탄생 시키는 과정은 같은 문장이라도 전후 문맥에 따라 완전 다르게 존재되고 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 하겠다. 그것을 아마도 텍스트가 갖는 힘일진대, 작가는 그것을 아주 그녀만의 필체로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제본이 아니라 출간된 책을 통해 역자의 해설등을 보면서 이 책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 어차피 나는 여기서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의 단면밖에 하지 못한 듯 하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읽혀진다 하더라도 전혀 다른 것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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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아마도 - 김연수 여행 산문집
김연수 지음 / 컬처그라퍼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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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왕~~ 여행할 권리 이후 이게 몇년만에 나온 책인가요! 얼릉 사서 보고 또 그 속에 빠지고 싶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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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다섯편을 보았는데 다 너무 좋은 작품들입니다. 편혜영, 김애란, 최은미 작가님 작품들이 더 많은 분들과 함께 하면 좋겠습니다! 이책 들 중 어느 책이든 수상작에 오른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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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세트 - 전3권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희숙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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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전체를 다 읽고 난후 후기를 적어 내려가는 것보다는 개별적 한권 한권에 대한 후기를 남기는 것이 조금은 부담이 덜하다. 그 이유는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일부의 이야기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독립단편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야기의 전체 흐름을 결정짓는 사건은 단 3일이라는 시간이지만, 도스토옙스키가 다루고자 하는 것은 한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자 하는 러시아의 미래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갖는 이 에피소드들-대심문관, 조시마 장로의 설교, 일류사의 이야기, 검사의 논고와 변호사의 변론 등- 이야 말로 어쩌면 도스토예프스키가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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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만나기까지 어려웠을 뿐 내가 읽기 전에 든 생각 이상으로 잘 읽혔다. 책 중간 중간의 유머와 소설을 읽어나가는 동안 느낀 긴장감은 그간 내가 이 고전을 귀동냥으로 들어왔던 것 이상의 풍부한 이야기가 들어있음을 알게 되었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가장 위대한 세계적 작가의 평생의 사상과 신념이 응축된 책이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러시아의 1870년대는 정치적, 사회적으로 개혁의 바람이 분 이후 여러 혼란이 있었던 시기이고, 그 혼란은 고스란히 민중들의 삶으로 전해지던 때였다. 이러한 시대를 카라마조프가라는 한 가족을 둘러싼 친부 살해라는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흘러가고 있지만 단순히 범죄소설로 한정되어 보지는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등장인물들의 저마다의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특성을 지니면서도, 그 특성이 단순한 소설 속 캐릭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상으로 대변되어 심리소설, 가족소설, 사회소설에 이르기 까지 종합적 소설로서의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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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의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화자는 먼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주요 인물에 대하여 많은 장을 할애하여 설명한다. 첫 시작인 아버지 표도르에 대한 묘사 부분을 읽다보면 그림을 그릴 수 있을 정도의 외모, 그리고 작가가 말 한대로 주름과 주름사이에 스며든 인간적 물욕, 정념, 비열함, 그리고 신을 조롱하는 듯한 모습을 보게 되고, 그의 아들들은 그런 아버지가 가진 면면들의 일부를 갖고 있음을 소설을 읽다보면 찾아볼 수 있게 된다. 물론 소설을 처음 읽으면서 바로 파악을 했던 부분은 아니다. 그리고 소설은 초반에 표도르가 아내들을 잃고 난 후 아이들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그들의 존재조차 잊어버린 부분들을 밝혀둠으로써, 이는 가족안에서 자라나는 아이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이후 변호사의 변론을 통해 다시금 확인을 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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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듯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아버지와 형의 재산문제로 다 모이게 되고, 이야기는 결국 단 3일이라는 시간 속에서 친부살해라는 사건으로 번지게 된다. 표면적으로는 아버지와 아들이 한 여자를 두고 벌이는 질투로 인한 것이지만, 이면적으로 존재하는 이야기 속에서는 한 마리의 독사가 한 마리의 독사를 죽이는 꼴이라고 언급되는 이반의 모습, 툭하면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말하는 장남 드미트리의 말처럼 여기저기서 살의를 느끼는 부분들이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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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살의, 어쩌면 악의 결정체로서 나타나는 살의를 도스토엡스키가 언급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왜 이들이 이런 악의를 갖게 되었으며, 이것이 어떤 방식으로 실현이 되는지를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비롯하여, 자신의 도덕을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오만하기까지 한 카체리나, 출세지향주의 라키친, 아버지와 아들을 다 농략하는 그루센카, 그리고 표도르의 사생아 스메자르코프를 보다보면 어린 시절 성장과정에서 부모들에게 미친 영향, 혹은 불운한 가정이 미친 영향이 비치곤 한다. 물론 알료사를 바라볼 때 모든 아이가 가정환경 때문에 비뚤어진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에게 적절한 선의를 지킬 수 있는 장치가 없을 때 결국 인간이 가고자 하는 길에서 멀어진다는 것을 알려준다. 더군다나 소설 속 드미트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삶의 방황이 끝이 날 것을 예상하는 서른이 다 되지 못한 여전히 삶에서 배운 것이 적은 세대들이 아닌가..도스토예프스키는 3권에서 나온 콜랴의 이야기를 통해서 어린시절 삐둘어진 세계관이 성장한 이후 어쩌면 이반과 같은 사람으로 커질 수도 있을 것임을 내비침으로써 이를 뒷받침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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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라는 이 종합소설이 어린시절 가정환경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소설가가 스스로 언급을 한 것처럼 대심문관부분이나 조시마 장로의 선종 전 행해진 담화에 대하여 알료사가 정리한 그의 생애와 설교를 읽다보면 좀 더 심오한 이야기에 이르게 된다. 그것은 한 인간이 신앙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회의에 대한 깊고도 긴 생각을 나타낸 부분을 통해 인간에게 신이 말한 진리,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그 진리에 도달하지 못한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대심문관 이야기에서 핵심은 그리스도가 인간에게 준 자유.. 성경적으로 말하면 그 자유의지로 인해 오히려 더 불행한 삶을 초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검사의 논고에서 언급이 되는데 인간에게는 가장 높은 곳을 지향하는 마음과 가장 낮은 곳을 지향하는 마음, 이 두 가지의 심연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면서 직면하게 되는 선택의 귀로에서 그리스도처럼 시험에 들지 않은 자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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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 인하여 인간은 그 자유를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데 이반은 그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변론을 알료사에게 펼칠 때는 만약 신이 없다면, 만약 인간에게 불멸이 없다면이라는 것으로 이야기함으로써 그가 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님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그의 대심문관 이야기는 이성적인 인간이 듣기에는 매우 합리적으로 들린다. 죄없는 아이가 고통을 당하는 이야기를 통해 그는 정의는 없으며, 신이 외면한 인간세계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 그러나 도스토옙스키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렇게 아이와 인류에 대한 사랑을 논하는 이반이 정작 자신의 가족에게는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는 모습을 통해 얼마나 그가 말하는 사랑이 실체가 없는지 이야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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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대심문관을 중심으로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첫 번째 꼭지 이후 조시마 장로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사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들이 대심문관 vs 조시마 장로의 설교로 보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는 그것이 이성 중심 혹은 인간이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다는 신이 된 인간의 이야기에 모든 것이 허용된 인간이 결국 선택한 것은 불필요한 욕망과 이기적이고 오만한 의지를 가진 인간에 대하여 우회적으로 반응하고는 있지만, 그리스도가 인간에게 준 자유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정면으로 혹은 소설의 전체를 통해서 언급된 부분은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부분은 내가 어쩌면 내가 좀더 읽고 나면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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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시마 장로의 설교 이야기는 대심문관의 이야기에 이어 나오긴 했으나, 이후 양파 한 뿌리에 대한 이야기와 맞닿아 있다. 인간이 한평생 살면서 겨우 행하는 선행이 그 뿐이라는 것은 비단 양파뿌리 할머니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다만 알료사도 그루센카도 자신들은 그저 양파 한뿌리의 선행만을 겨우 한 것뿐이라고 하지만 이후 알료사와 그루센카가 서로에게, 그리고 장남 드미트리에게 보여주는 사랑은 그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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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는 이후 드미트리가 아버지의 집으로 찾아가게 되는 배경과 시간적 흐름, 그리고 그리고리에 대한 타격 등의 이야기를 통해 장남 드미트리가 어떠한 인물이지에 대한 본격적으로 접하게 된다. 책 서두에 군인 시절 있었던 그의 행적이나 이등 대위 스네기료프에게 준 모욕, 아버지를 두들겨 패는 부분에서의 드미트리는 망나니도 그런 망나니가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그가 그리고리에 대해 타격을 가한 후 자신은 더 이상 구원받을 수 없는 인간임을 알고 삶을 파멸되었음을 느끼는 부분, 그리고 그랬던 그리고리가 다시 살아났다는 말에 대해서 안도감과 용서받기를 원하는 장면을 통해 드미트리는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야말로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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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소설은 최후에는 공판을 앞둔 시점에서 이반이 겪게 되는 내적갈등, 그것이 너무도 심하여 섬망증에 이르는 병으로 나타나게 되는 부분을 통해 이반 역시 결국 양심을 가진 인간임을 드러내게 해준다. 그리고 검사의 논고를 통해서 우리가 맞이하게 되는 부분은 카라마조프의 이야기는 온 러시아를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고, 그것은 소설 속 배경이 되는 시대의 모습이며, 결국 까라마조프가를 통하여 러시아의 현재의 얼굴을 보여주는 것임을 알려준다. 또한 법정심문 장면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죄형법정주의증거법정주의와 같은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검사는 많은 이야기를 정황과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통해 논거를 펼쳐나가고 있는데, 이 부분의 경우 사실 오늘날 분명한 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많은 이들이 법망을 빠져나가는 것을 보면 어쩌면 그 부분이 다소 나아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검사가 고골의 소설 죽은혼에 등장하는 트로이카의 이야기를 통해 앞으로의 러시아를 위해 드미트리에게 선처를 하지 말아달라는 이야기를 마치자마자 사람들은 검사의 심리분석에 치우진 이 논거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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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도스토옙스키가 하고자 하는 말은 결국 변호사의 변론을 통해서 드러난다. 증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야 할 법정이 심리분석으로 일관되게 주장하는 하는 모습을 통해서 그것을 다른 끝에서 바라볼 경우 완전 정반대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도스토엡스키는 이 부분을 얼마나 살 떨리게 들려주는지 사실상 소설을 읽는 내내 이 부분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받기도 하였다. 인간은 그 죄에 해당하는 벌(형량)을 받는 것만으로 그가 저지른 죄에 대해서 진정한 회심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 부분에서 사회재판이 갖는 한계는 오늘날 사회에서도 여전히 제기되는 문제이다. 어쩌면 법이라는 것은 테두리를 갖는 것으로 가장 최소한의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드미트리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지만 유형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카체리나에게 용서를 빌기 위해서 용기를 내어 마무리가 되고, 소설의 전체 이야기는 일류사의 죽음으로 마무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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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결국 412편을 이야기 이후 에피소드라는 한 장을 통하여 열린 결말로 마치는데 이는 도스토옙스키가 앞서 언급한 대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2,3권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작가가 구상한 소설의 절반에 해당되기 때문인 듯하다. 결국 나는 이로서 위대한 소설가가 쓰고자 하는 이야기를 이제야 접했을 뿐이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사상, 각각의 인간들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그의 사상들에 대해서 좀 더 생각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소설에서 언급한 개개인이 자신의 성을 지키고 무너뜨리지 않은 부분은 오늘날의 모습과도 너무도 닮아 사실 뜨금하기도 하였다. 올 한해 내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었다는 사실만으로 내 독서인생에 기념할 일을 했다는 것에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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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3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9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희숙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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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다 읽었다. 내가 언젠가는 읽겠지 했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다 읽었다. 온몸에 촉수를 세워서 결국 마지막까지 읽었다. 리뷰대회 덕분에 이렇게 읽게 되었으니, 결과와 상관없이 지나온 독서인생에 그래도 기념비 하나는 세울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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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의 시작과 끝은 아이들의 이야기에서 아이들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여러 이야기의 형태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자주 다룬다. 형제 3인을 포함하여, 조시마 장로에서 자신의 어린 세 살배기 아들이 죽은 이야기, 스네자르코프의 어린 시절과 성장과정, 그루센카의 어린 시절, 이등대위 스네기료프의 아들 일류사의 이야기와 3부의 시작을 알리는 콜랴의 이야기, 그리고 무엇보다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이반이 자신의 내면세계와 대면하게 되는 섬망의 과정이 드러나는 반역부분에서 결국은 스스로가 만들었던 사상의 덫을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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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이야기의 플롯은 친부 살해라는 사건을 중심으로 단 3일간 있었던 굵직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보자면, 이 소설은 범죄소설, 사회소설, 가족소설로도 볼 수 있지만 사건 외 인물들을 통해 보다보면 이 소설은 무엇보다 인간의 심리, 그 내면의 형성과정을 볼 수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이 소설에서는 어쩐지 몇몇 인물을 제외하고는 여러 부분에서 인물들이 겪게 되는 모욕감, 치욕, 수치심, 경멸, 오만함, 거짓된 위선, 상처 입은 자존심 등 인간의 내면으로부터 표출되는 다양한 감정들을 만나게 된다. 드미트리의 즉흥적이고 경솔한 측면, 이반의 냉소적이고 인간을 경멸하는 모습, 스메자르고프처럼 자신을 견대지 못한 그 모멸감, 카체리나의 고고함 이면에 숨겨진 오만한 모습, 호흘라코바 부인의 경박함, 어린 꼬마 일류사나 이등대위 스네기료프가 참지 못하는 모욕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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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내면을 가진 인간이 거대한 외적 환경에 처해졌을 때, 과연 흔들리지 않고 어떻게 착하게, 정의롭게 살아갈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료사는 이 책의 마지막에서 아이들에게 일러주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아이들에 대한 이러한 가르침은 사실상 3부의 도입부에서 콜랴의 등장 씬을 통해서 어떻게 이렇게도 어린 나이에 삐뚤어진 세계관을 가질 수 있는지 걱정하는 부분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콜랴를 당황스럽게 하지 않으면서 알료사가 하나하나 물어가는 이 부분은 조금 많이 웃기다. 사실 3권까지 읽어오는 동안 솔직히 좌와 벌 이후 20년 만에 만나는 도스도예프스키의 소설이 이렇게 웃음코드가 또 가끔씩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이 두꺼운 책을 아직 잡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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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역시 2권과 마찬가지로 그동안 귀동냥으로 알지 못했던 이야기가 가득한데, 드디어 공판을 앞두고 밝혀지는 사건의 전모들 그리고 검사와 변호인측의 심문은 읽는 독자로 하여금 정말 그 자리에 참석하고 있는 것처럼 알려준다. 아니 위대한 우리 도선생님은 정말 법률가 출신인지, 검사와 번호사의 변론 장면은 정말 소설적 재미와 재판이라는.. 인간의 죄에 대한 심판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너무도 잘 이야기하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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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이 부분을 보다보면 오늘날 중거중심 재판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앞서 다른 책을 통해 알게 된 사실로 러시아는 당시 사법부 개혁이라는 큰 변화 앞에 있었고 일정부분 개선이 되기도 했으나 여전히 그들의 공판과정을 살펴보고 있노라면 매우 인간적인 재판처럼 느껴진다. 그러니까 죄를 지어도 증거가 없으면 무죄로 판결나는 이런 부조리함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죄형법정주의와 같은 느낌도 없다. 어쩌면 도스토옙스키가 말하고 싶었던 것도 사실 심리재판이 갖고 있는 이러한 헛점, 아니 한계를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쩐지 나는 변호사의 변론을 읽다보면 그 자리에 있던 부인들처럼-아니 그런데 도선생님은 여기 등장하는 부인들을 너무 경거망동하게 ㅋㅋ 가끔은 언급한다-박수를 치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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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는 에피소드 부분을 통해서 미챠가 마지막으로 탈출에 성공하는지 안하는 지 부분까지는 알 수 없다. 우리의 도선생님이 말씀해 주신대로 이 소설은 사실 우리에겐 절반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나에게 준 의미는 너무도 위대하다. 하루키가 말한 것처럼 소설가로서 궁극적으로 쓰고 싶은 종합소설이란 말이 어떤 의미인지.. 그간 내가 읽어온 숱한 소설들 이란 말에 독자로서 동의하고 싶다. 한 이야기에서 한 이야기로 넘어가는 동안 내가 생각해온 것 이상을 다음 페이지에서 알려주던 소설, 카체리나의 법정의 두번 째 증언 이야기나 검사의 논고이후 변호사의 변론 부분은 그야말로 내가 지금껏 읽었던 소설의 부분으로 치더라도 정말 재밌었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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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주어진 '자유'.. 그것은 지금 내게도 주어진 '자유'가 무엇인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네가 헤아림을 받은 만큼 헤아리라는 그 말씀이 지금 내 삶에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오래전 빅터프랭클의 말을 통해 그 자유라는 것이,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한 주위 상황으로부터 자유로 수 있는 자유라는 부분은 접한 적 있다. 어쩌면 그것은 그리스도가 광야에서 보여준 그 자유를 조금은 알게 해준다. 다른 출판사 버전으로도 꼭 다시 한번 읽을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해보며 나도 아이들이 외친 것처럼 인간 만세! 도스도옙스키 만세! 이다.

#카라마조프가의형제들3#도스토옙스키#김희숙#문학동네세계문학전집#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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