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모든 저녁이 저물 때
예니 에르펜베크 지음, 배수아 옮김 / 한길사 / 2018년 7월
평점 :
가제본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읽게 된, 처음 만난 작가의 책이다. 쉽게 읽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절제된 소설 속 문장, 독특한 구조의 설정만으로도 다 보고나니 단편적으로 드는 생각들이 무척 많았다. 그래서 종합적으로 생각을 정리하기 어려웠고 한차례 리뷰를 적었지만 맘에 들지 않아 삭제해버렸다.
.
이 책은 총 다섯 장과 네 개의 막(간극)으로 구성되어 있다. 막간극은 앞선 이야기가 끝난 다음의 이야기에 ‘만약’이라는 가정을 통해, 어쩌면 그 순간의 죽음을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를 정황을 가정해본다. 혹은 소설 속 여인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 시간을 달리할 수는 있는 이야기를.
.
소설의 첫 도입은 시대적으로 가장 앞선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분열 전후시대를 살아가는 한 여인, 가족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이후 나치정권, 소비에트 시대, 마지막 통일 독일 이후의 시대 순으로 흐름이 전개 된다. 시대와 역사를 우리는 기록된 사실만으로 이해하기도 하지만, 각각의 시대를 통과하며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통해서 이해하기도 한다. 예니에르펜베크는 자신이 가진 풍부한 역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소설을 탄생 시킨 것이다.
.
첫 장이 주는 강렬한 서사적 풍경과 등장인물의 절제된 대화, 시점을 달리하며 이야기 되는 다소 리드미컬한 부분들이 무척이나 이색적이었다. 이 소설은 결국 하나의 장편소설로 봐야겠지만, 읽는 나는 다섯 개의 이야기, 네 개의 막간극 이야기, 그리고 전체의 이야기를 등을 무수하게 조합하여 여러 이야기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생경한 경험을 하였다.
.
더군다나 텍스트의 위치에 따라 다시 재해석되어 태어나는 동일한 문장이라든지, 괴테의 책, 조각상, 발받침과 같이 매 장마다 언급되는 사물들의 존재가 소설 전체에서 보이지 않은 정서적 흐름의 연결이 되어 주는 부분은 이전 소설에서는 그간 경험하지 못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사실 이로 인해 2장을 읽어 내려가기 전까지 혼란이 다소 있었지만 결국 그 부분은 읽어나가는 동안 해결할 수 있었다.
.
이렇듯 소설의 구조가 이야기 자체가 되어 메시지로 연결이 된다. 다섯 번의 삶과 죽음은 한 여인에게 일어날 수 있는 삶의 경로를 무수히 많은 경로에 이를 수 있음을 생각게 하지만 자신의 삶의 테두리, 삶과 죽음의 경계는 자신이 사는 시대의 면을 벗어나지 못함을 이야기한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니까, 개인이 삶의 넘어설 수 없는 부분, 그 시대의 재앙을 소설속 인물을 통해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 지극히 사회적이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으로도 보았다.
.
한편,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이 자신의 삶에서 취할 수 있는 부분들이 확대되어지기는 하지만 다른 삶을 살았을지 모른다 하더라도, 생애 어느 순간 찾아올지 모르는 것이 바로 ‘죽음’ 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다는 것도 생각하게 한다. 실은 이렇게 리뷰를 적고 있지만 아직도 이 소설의 초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잘은 모르겠다. 소설자체에 초점을 둬야 할지, 소설을 읽고 난 후 전반적으로 드는 내 감상에 초점을 둬야할지를..
.
소설을 읽고 또 읽어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정리한 내 감상문이 나오기 까지 내 안에서 이루어진 생각은 무수히 많았다. 나는 소설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 마음을 끄는 완벽히 독립적 존재가 가능한 문장들이 무척 좋았던 것 같다. 모든 독자들이 문장이 좋은 소설을 좋아하겠지만, 한 번 태어난 문장에 대하여 소설가가 소설 안에서 재배치, 재탄생 시키는 과정은 같은 문장이라도 전후 문맥에 따라 완전 다르게 존재되고 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 하겠다. 그것을 아마도 텍스트가 갖는 힘일진대, 작가는 그것을 아주 그녀만의 필체로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제본이 아니라 출간된 책을 통해 역자의 해설등을 보면서 이 책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 어차피 나는 여기서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의 단면밖에 하지 못한 듯 하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읽혀진다 하더라도 전혀 다른 것은 아닐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