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맨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8
백민석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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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석 작가님은 그의 소설보다 클래식 클라우드 ‘헤밍웨이’편을 통해 먼저 만났다. 그의 소설로는 이번에 처음 만난게 된 것이다. 제목만 들었을 때에는 인공지능을 가진 로보트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형도 아닌 구지 생각을 했을 땐 마네킹이라고 해야할까.. 그런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작가님은 소설을 시작하기 전에 책을 집은 독자라면 한번 즘 궁금해 할 그 플라스틱맨에 대한 설명을 하고 본격적으로 소설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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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에 따르면 플라스틱의 어원은 ‘플라스티코스plastikos, 틀에 넣어 만들다라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여기선 ‘틀’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 질료가 달라도 같은 형상으로 보이는 그런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분명 질료가 다른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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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2016년 말 대한민국 역사 이래 가장 많은 사람들이 집회에 참여했던 대통령 탄핵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벌써 횟수로는 5년이 넘게 지났고, 우리는 직간접적으로 많은 정치적 의사를 표명하지만 이 때만큼 삶속에 깊이 들어와 있는 일에 모두가 나선일은 드문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소설의 시작이 이러하였기에 절반 정도 넘어가기까지 과연 우리가 아는 이 사건을 소설에 끌어드린 이유는 무엇인가 하고 생각할 즈음 반전이 나온다(스포일러가 될수 있으므로..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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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서 다루어지는 자살, 살인, 사고, 테러 등은 내가 직접적으로 겪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 개인에게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뉴스기사로 전락한 ‘사고’로 만나게 되는 일이 흔하다. 그것은 결과론적으로 보자만 분류화되고 통계수치가 되어 하나의 현상, 하나의 데이터가 될 뿐이다. 때문에 이 소설에서도 협박범이 예고한 사건이 예고 후 일어난 사건과 구분하여 찾아내기가 쉽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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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전면에서는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화자가 있기는 하나 모든 것이 모호하다. 일어난 사건도 모호하고, 선과 악에 대한 구분도 모호하다. 소설에서는 한 사람이 신부님을 찾아가 ‘악이 그토록 선과 구분이 선명하게 가능했다면 사람들은 악을 덜 저지르지 않았을까요’하고 반문하는 부분이 있다. 악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과 선에 대하여 생각하는 일, 사람들은 어떤 부분을 더 깊이 생각할때 악을 멀리하고 선을 가까이 하게 될까. 악을 깊이 생각함으로서 악에서 멀어지는 것인지. 선을 깊이 생각함으로서악에서 멀어지는 것인지, 둘다 맞는 말이겠지만 선과 악의 기준이 적용이 개개인의 삶의 배경과 연관되어 억울함, 원통함, 감사함, 분함, 나만 왜 라는 여러 상황 때문에 그렇게 모호해 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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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큰 일을 겪고 나면 사람들은 변한다고 한다. 삶이 소중한걸 알게 되고, 투표참여와 같은 정치적 의사결정에 참여를 하기도하고 좀더 민주적으로, 좀더 행복한 방향으로 삶이 지속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혁명을 이루고도 삶이 얼마든지 행복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소설에서 플라스틱맨에 대한 사람들이 고발이 그러하다. 익명의 댓글이 그러하다. 사람들은 누군가 잘못하면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댓글을 익명이란 이름으로 단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한 두 사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그러하다면 우리의 삶의 기쁨과 애환을 이루고 있는 그 근본적인 틀이 인간모두에게 공통적인 모습이라 그런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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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기대치를 낯춤으로서 행복에 이를 수있다는 이 역설적인 진리만큼 지금까지 살면서 와닿은 적은 없다. 나에 대한 존재를 크게 하기 보다 낮추는 것이 오히려 더 상처를 덜 받는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나는 이러한 마음으로 살아간다. 그럼에도 여전히 삶에서 상처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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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주요 화자의 직업은 경찰이다. 같은 시민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자 때로는 시민의 집회에서 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역할을 하는 민간인이 아닌 경찰(?)의 신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녀가 나중에 경찰을 그만두어도 일상엔 큰변화가 없다. 혁명을 이루고 나서도 시간이 지나면 큰일이든 사소한 일이든 모두가 분노하고 화를 안고 산다. 그것은 지속되는 화가 아니라 금방 일어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것과 같다. 삶이 행복할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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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물론 ‘행복’에 관한 것은 아니다. 플라스틱맨과 더불어 플라스틱 세상,인생을 드러한 현상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마네킹 처럼 감정이 없어 보이는 것, 그것은 마네킹을 향해 우리가 아무리 소리쳐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 어떤 사람, 어떤 세계와 같은 것이다. 소통이 불가능 할 것 같은. 그러다가 스스로 제갈길을 찾는 것처럼 말이다.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언급한 시민사회의 일체감은 겪고도 우리는 여전히 당혹감, 불안감, 일이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안고 살아간다. 삶의 방향을 완전히 달리할 수 있는 변곡점, 그 아슬아슬한 꼭대기를 지나고 나서 완전히 달라질수 없는 일은 계속된다. 결국 우리의 삶이 그렇게 생겨먹었다면 삶에 대한 긴장감을 피할 수는 없고 다만 우리는 내공을 쌓아가며 견디고 살아갈 뿐이다. 이 책은 그렇게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 일주일 내내 그런 내 삶을 돌아보게 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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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벨트 게임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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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이도 준의 루스벨트 게임을 읽었다. 4부작 한자와 나오키’, ‘일곱개의 기둥모두 페이지가 400-500페이지를 넘지만 순식간에 읽어진다. 그렇다고 이 책이 킬링타임용 책은 아니다. 거품경제가 빠지기 전까지 종신고용이라는 말로 대변되던 일본의 기업문화는 언제부터인가 구조조정파견이라는 일터의 조건이 완전히 바뀌어져 버렸다. 그런 가운데 그간 읽었던 이케이도 준의 소설은 기업경영에서 사람을 대하는 방식, 하나의 이즘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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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에는 몇 개의 기업이 등장하는데 핵심은 기술개발을 중심으로 성장하는 이소미아 제작소라는 중소기업과, 중소기업보다는 규모가 큰 마쓰다전기가 나온다. 이야기는 두 회사의 사장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적자로 인하여 대기업에 하청기업으로서 살아나기 위한 방법을 두 회사의 사장, 그리고 이소미아 제작소의 부장급 이상의 임원진을 중심으로 회사가 다시 성장을 도약하는 모습을 작가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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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알다시피 루스벨트 게임이란 야구에서 스코어 8:7의 스코어서 경기가 끝나는 마지막까지 지켜보는 상황을 말한다. 이는 과거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이 한 말로 그야말로 승부가 엎치락 뒤치락 하는 상황속에서 팀협력이 어떻게 발휘되어 끝내 승리는 어디로 가게 되는지, 아니 승리와 상관없이 최선을 다한 모습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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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처럼 야구에 대해 잘 몰라도 이 소설을 보는데는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생산라인의 축소로 직원까지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회사에 매출액으로는 확인할 길이 없은 기업야구팀을 계속 유지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하나의 딜레마가 된다. 경영논리로만 보자만 당연히 해체의 수순을 밟는 것이 맞지만 그 과정에서 이소미아 제작소의 총무부장이자 야구부장인 미시카가 그 가운데서 사람과 사람, 그리고 기업을 바라보는 모습은 매우 인간적이다. 숫자와 그래프, 그리고 절감에 매우 사리가 깊을 것 같은 일반적인 기업의 총무 회계의 모습과는 달리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고뇌를 하고 이후 매출의 확대로 인해 재임용을 하는 과정에 이르는 모습은 현실과는 다를지언정 가고자 하는 방향을 보여주니 나쁠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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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을 하다보면 실력도 필요하고 정치력도 필요하다. 둘 다 잘하는 사람도 있고 둘다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각자의 길을 가는 것도 같다. 이 책에서 이소미아 제작소의 호소카와 사장은 컨설팅 회사를 다니다가 이소미아 제작소의 영업부장으로 오게 된다. 임원진 12명 가운데 서열은 아래에서 3번째에 해당하지만 이소미아 사장이 물러나면 차기 사장으로 지목한 사람은 사내 누구라도 사사키부장이 사장이 되리라 생각했지만, 나이도 경력도 어린 호소카와가 사장이 된다. 호소카와는 정치력으로 사장이 되었다고는 보기 어려운 사람이다. 그는 어떻게 보면 후발주자임에도 변화하는 시장의 환경속에서 자신의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부분을 다른 사람들과 달리 꿰뚫어본 안목을 갖고 있었다. 당시 영업부장의 사외 영입이라는 내부적으로는 불만의 씨앗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나 그는 실력으로 당당히 모두의 의심스럽고 곱지않은 시선을 날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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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자가 된 사사키는 어떠할까? 그는 사내 전무로 지내면서 호소카와 사장을 궁지에 몰거나 하지 않는다. 그저 냉철하게 판단하고 기업이 살아날 길을 찾는데 사사키 또한 이 회사의 총무부장으로 자리매김 하기까지 최선을 다해 일한 모습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오늘 북판다님의 리뷰에서도 보았지만 서로를 성장하게 하는 관계에 없어서는 안 될 것은 사리사욕에 관한 부분일 것이다. 사사키는 자신이 왜 사장이 될 수 없었는지에 대한 판단이 명확하고 호소카와는 겸손하다. 급감하던 매출을 오로지 기술력으로 다시 일으키게 된 배경에는 약간의 불협화음은 있을지언정 전반적으로는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던 사람들의 모습이다. 호소카와 사장은 말한다. ‘단지 그것 뿐이었는걸요...’라고, 그런데 세상에는 이소베 지점장이 말한 것처럼 단지 그것뿐인 것을 못해서기업이 망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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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시작하면 그 자리에서 다 읽을 정도로 재미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현실과 얼마나 괴리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런 이야기가 좋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스스로가 자신의 한계와 타인의 장점, 내가 아닌 저 사람이 그 일을 하게 된 모습을 정확히 이해한 모습들이다. 이케이도 준의 소설은 아무리 내가 읽을 책들이 산재해 있어도 종종 읽고 싶은 책이다. 읽고 나면 환기가 된다. 이 소설을 일고 나서 야구이야기는 많이 적지 않았지만 다이소 감독의 이야기나 더는 이어가지 못할 자신의 야구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감독으로 매니저로, 다시 투수로 서는 장면들도 빼놓을 수 없는 자신의 인생에서 좋아하는 것을 놓지 않은 모습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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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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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를 읽고 나서전락을 연이어 읽었다. 그런 다음 예전에 쓴에브리맨울분의 리뷰를 다시 살펴보았다. 너무 못썼더라는.. 다시 보니 남는 건 옮겨 적은 소설 속 그의 명문장 밖에 없었다. 이 네 소설이 네메시스 시리즈라고 하지만 작가가 소설의 제목을 네메시스로 한 후 소설쓰기에 대한 절필을 선언한 것을 보면서, 이는 그가 평생 마음에 품고 살았던 질문이고, 그의 소설들은 질문을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를 탐색하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평생을 그렇게 심각한, 그의 이야기에서는 행복과 기쁨은 저 세상의 이야기인 듯, 전면에 나서는 주제로 등장하지 않는다. 적어도 지금까지 읽은 소설에서는. 그래서 정말 그런가 싶어 작가의 에세이인 사실들을 당장 봐야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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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들은 자서전이라는 부제가 있고 로스의 작품 중 국내에서 가장 최근에 출간된 책이여서 그의 작품과 세계, 그 자신의 이야기가 주를 이룰거라 생각했는데 1991년 그가 쉰을 조금 넘은 나이에 쓴 것이다. 그 후미국의 목가를 시작으로 제2의 전성기를 펼치게 되니 이 작품은 로스의 모든 것을 보여주기 보다는 소설이 아닌 에세이로 그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한 것이고 그의 소설인생의 전후를 가르는 즈음 쓰여진 작품이지만 그 후의 작품을 보는데 조금은 이해를 돕는 여러 이야기들이 나온다. 여기서는 우선 이러한 배경을 안고네메시스와 관련된 이야기만 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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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의 글쓰기는 잘 알려져 있듯이 글을 쓰면서 구도를 잡고 완성해 가는 것이 아니라 소설이 진행됨에 따라 이야기가 완성되어진다. 목적지야 제목에서부터 알 수는 있겠으나 그 끝에 이르는 길은 책이 끝나기 직전에서야 만나기 때문에 앞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끝내 마지막에 이르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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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표면적으로는 감염병이 돌던 시기, 신체와 정신이 강건하고 올바른 한 체육교사켄터가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서 자신의 신념과 가치그 가운데 의무감이 삶에 드리워질 빛을 모두 앗아가는 이야기로 볼 수 있다. 로스는 자신이 발표한 대부분의 소설에서 종교로서의 유대교보다 민족으로서의 유대인의 역사와 삶의 방식을 한 인간의 성장, 삶의 배경으로 한다. 실제 로스의 유년시절 배경이기도 한 뉴어크 지역이 소설의 첫 번째 배경이 되는데 유대인이 집중 거주하는 곳에서 외지인들은 그들을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말도 안돼게 전염병의 근원이라 하기도 하고, 유대인에 대한 편견으로 막말을 일삼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소설속에서 호러스라는 발달장애 청년의 등장을 통해, 스스로 차별의 대상이 댄 유대인들이 호러스를 막 대하고 전염병 유발자라고 하는 행동을 묘사하면서 유대인이 아닌 차별과 그에 따른 폭력도 글속에서 놓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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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의 주배경인 뉴어크는 폭염으로 인한 불쾌지수와 폴리오라는 전염병이라는 공포가 더해지는 가운데 전염병과 관련된 원인, 해결책이 모두 미궁으로, 사람들은 비이성적 사고와 히스테리로 서로를 대한다. 평소 평정과 자제력이 삶의 태도였다 하더라도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그럼에도 켄터는 건강한 체력으로 면역을 유지하고, 아이들을 위해 차라리 안전하게 보호하고자 하였다. 그는 불안이 고조되는 이곳에서 교사로서의 의무감을 다하고자 했지만 어느 순간 학교를 그만두고 그의 연인이 있는 곳, 폴리오가 없는 인디언 힐로 떠나기로 한다. 그의 의무는 그 곳 캠프에 참여한 아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면 되는 것이라고..그러나 자신은 아름다운 풍경의 낙원과도 같은 곳(파리가 아닌 나비가 날아다니는)에 와 있지만 떠나온 곳의 아이들이 점차 죽어나가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자신은 그곳에 남아서 아이들을 계속 보호해야 했음을 되뇌며 괴로워 한다. 그러나 자신이 인디언 힐에서 지금 누리고 있는 최상의 이 모든 것, 자신의 연인, 미래, 가르치고 보호해야 할 안락한 가정의 아이들과의 삶을 버릴 수가 없다. 그런데 정작 인디언 힐에서 머릿속 뇌관이 터지듯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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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는 인간의 주제넘은 행위에 대한 신의 복수라는 의미가 있다. 켄터는 오랫동안 전쟁과 전염병, 자라는 아이들의 죽음을 신의 무책임, 무자비로 생각하곤 했지만 이후 자신에게 일어난 이 모든 비극적 전후 사건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다. 원인을 규명하기 어려운 불행한 일은 (행운 혹은 비운)’이라는 우연의 관점에서 생각하기보다 신에 대한 원망, 존재에 대한 의문으로 돌리기도 한다. 도덕성 과잉은 타인에겐 몰라도 자신에게는 너무도 가혹하다. 로스는 3장이 시작되면서 읽는 동안 의식하지 못했던 화자를 전면에 등장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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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때로 자신이 어렵게 세운 신념, 가치가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을 절대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지식이든 신념이든 가변성에 대한 수용이 없다면 한발만 움직여도 나락으로 빠질 수 있는 우리의 삶을 다시 이어나가는 일은 불가능할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이 소설처럼 사회적 비극개인적인 비극으로 간주하여 남은 생을 후회의 반복으로 살아가게 될지 모를 일이다. 이처럼 우리는 이상적으로는 그렇게 살면 안된다는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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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모든 것이 그토록 자명할까? 우리는 이상적으로는 안다 그렇게 살면 안된다는 것을.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은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그러니 완전히 새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그러나 그랬더라면 로스는 그동안 그토록 오랫동안 소설로 자신이 형성한 경험을 이야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그러기에는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 영원히 회복되지 못할지 알 수 없다. 그가 말한 대로 시간이 갈수록 불행을 강화하고 치명적으로 확대되는 일로 인생을 망칠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는사실들에서 자신은 문학 속에서 절대로 웃음을 전하고 싶지 않았다고 썼다. 그는 네메시스 시리즈를 통해 그동안 삶은 노화라는 자연적 현상으로도 서서히 무너지기도 하지만 외줄타기를 하듯 잠깐의 실수와 방임으로도 그렇게 될 수 있음을 이야기 했다. 삶의 희극적, 비극적 이야기는 결국 현대소설이지만 여느 비평가들이 말한대로 그의 소설은 그리스적 비극의 선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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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든 인생이 가장 빛나는 시기가 있다고 한다. 내게 켄터는 그가 아이들을 교육하고 훈련하며 스스로 창던지기 시범을 보이던 그 때, 자신의 노력, 헌신, 결단, 규율을 지키며 살아가며 아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 그 시절, 한 폭의 필름 같았던 그 시절이었다고 생각한다. 로스는 자신의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한편의 짧은 소설처럼 우리에게 남겨주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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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여행기 을유세계문학전집 94
조너선 스위프트 지음, 이혜수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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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여행기]는 근대 초입으로 들어서는 18세기에 쓰여 진 소설로 이 시기는 정치적, 종교적으로는 신구의 논쟁, 과학과 기술의 획기적 발전, 밖으로는 제국주의의 팽창으로 해양 국가들의 식민지 개척이 한창인 시기에 쓰여진 소설이다. 많은 철학적 논쟁이 일어나고 철학자들의 냉소적 풍자적 소설 봇물 터지듯 나온 시기이기도 하다. 어제 언급한 볼테르의 소설도 그 중 한편이었는데 이들의 소설적 특징은 신비의 세계로의 종횡무진 등 환상성을 기반으로 하지만 실제 일어나고 있는 여러 현상을 다시 보게 하는 형식으로 소설을 통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 것으로 보인다. 즉 스위프트는 이 책의 서문에서도 소설의 형태로 밝혔듯이 나름의 목적을 갖고 이 여행기를 출판한다고 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 여행의 내용을 나라별로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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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릴리퍼트로의 향해

여행을 떠난 후 폭풍우로 인해 난파되어 그해 11월경 릴리퍼트 도착한다. 앞으로도 알겠지만 걸리버는 방문하는 곳의 언어와 관습을 습득하는데 적응력이 매우 뛰어나다. 릴리퍼트 민족은 자신의 1/12분만한 크기로 이들을 만나고 친밀해지까지의 이야기가 여느 이야기보다 재밌다. 릴리퍼트의 군주는 자신의 토지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생활하는데 그 나라에서 관직, 정계의 진출은 줄타기 대회를 통해서 높은 기교를 보여준 사람에게 기회가 열린다. 또한 의회는 높은굽당낮은굽당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는 당시 영국의 휘그당과 토리당에 비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릴리퍼트인들은 사물이나 매사를 매우 정확히 보지만 멀리는 보지 못한다. 이 나라의 몇 가지의 독특한 관습들 중 무거운 죄로 다스려 지는 부분은 무고죄, 사기죄, 배은망덕과 같은 것이다. 또한 보상과 벌을 중심으로 한 사법제로 일반적으로 벌을 중심으로 다스려지는 법체제와의 다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곳에서 환대를 받고 최고의 대신직함을 받지만 결국 왕의 적대국에 대한 욕심에 동조하지 못해 걸리버는 그곳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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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브롱딥낵으로의 향해

17026월 다시 여행길에 오른다. 몇 번의 폭풍우 끝에 그는 낯선 곳에 또 남게 된다, 이곳은 브롭딩낵으로 걸리버가 밀밭에서 거인농부로부터 붙잡힌다. 모든 조건이 벌레와 다름없이 거인들의 세상으로 들어온 걸리버, 그곳은 모든게 다 너무 잘 보이고, 아주 미미한 냄새까지 맡게 되는데 그가 받은 충격적 묘사를 읽은 것은 앞서 릴리퍼트에서 경험한 것과 일맥으로 재밌다. 우여곡절 끝에 이번에도 이곳의 통치자와 만나게 되는데 이 나라의 특징은 세계의 다른 지역들과 어떤 교류도 하지 않는다는 것. 걸리버는 왕에게 자신의 나라의 역사, 정치제도, 법제도를 설명하는데 이를 귀기울여 들은 후 국왕의 질문은 원론적이고 원칙적이다. 상원의원이 귀족출신이라면 귀족은 무슨 자격으로 되며, 선출된 의원 역시 자신이 뽑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는지, 법을 만드는 사람들은 자신의 지식을 이용해서 유리하게 만드는 건 아닌지에 대한 질문을 한다. 이에 대한 성실한 걸리버의 답변에도 불구하고 그가 내린 결론은 자연이 땅위를 기어다니도록 허락한 작고 흉측한 벌레 중 가장 악독한 종이라는 결론을 차분하게 명증하게 내린다(p.190). 그러나 릴리퍼트와 마찬가지로 이 나라에도 문제가 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내전이다. 귀족은 권력을, 백성은 자유를, 왕은 절대적 지배를 놓고 이곳에서도 역시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던 것. 결국 우연한 계기로 그 나라를 나오게 되지만 다시 바다에서 만난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만났을 때 걸리버는 그들이 너무도 왜소하고 하찮은 존재로 보였다. 거대한 사물에 익숙해진 생활을 해온 자신과 그들을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지독히 경멸하게 되었다는 것.

 

3.라퓨타, 발니바비, 럭낵 등 향해

1706년 다시 향해를 떠나게 되는데 이번에도 해적을 만나고 외딴섬에 버려지게 된다. 그곳은 라퓨타라는 곳으로 인간들의 외모에 대한 묘사가 그 특징을 드러낸다. 이 곳은 수학과 음악이 가장 중심이 되고 지배층들은 오로지 모든 생각이 여기에 다 바치고 있다. 이들은 그 학문에 매몰되어 백성이 외치는 소리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 이 부분은 영국이 아일랜드를 지배하는 상황에 대한 묘사가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난 부분이라고 한다. 라퓨타에서는 라가도 학술원이라는 영국의 왕립학술위원, 당시 과학주의와 과학자에 대한 에 빗댄 신랄한 비판을 볼 수 있다. 결국 라퓨타를 떠나기로 한 걸리버는 영국으로 돌아가기 전 몇몇 섬을 방문하게 되는데 마법의 섬이라 불리는 곳에서 과거의 역사 속 시대를 주름잡던 철학자, 정복자 등을 소환하여 이야기를 들으면서 현대역사에 대한 혐오, 과거로부터 발전은커녕 퇴보를 하고 있음을 말한다. 그리고 럭낵민족이 사는 곳에 들렀을때는 불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아마도 이 부분이 걸리버가 분변학과 마찬가지로 죽음이란 화두 즉, ’불로와 그의 전제조건으로 영원한 젊음과 건강 활력을 전제로 한 불로에 관한 이야기로 인간존재를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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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후이늠국의 방문과 돌아온 걸리버

선장으로 다시 떠나지만 선상의 반란으로 낯선 곳에 버려진다. 그곳에서 현생인류와도 같은 야후라는 종들을 만나는데 이곳은 말이 지배하는 나라이다. 이 곳에서 인간은 야후라고 불리는데 이들이 원시인지 외부인지 처음엔 잘 알지 못하지만 이후 그 전말이 언급된다. 이곳에서도 걸리버는 앞선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주인님이라 부르는 후이늠의 말과 오랜 기간 이야기를 나누지만 결국 자신이 알게 된 것은 그간 인간 사이에서는 약점 축에도 들지 않던 수천가지 잘못을 날마다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p.376). 후이늠의 지배층이 보는 인간에게 이성이란 단지 우리의 타락한 천성을 악화시키거나 자연이 부여하지 않은 새로운 타락을 획득하도로만 쓰는 것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걸리버는 이곳에서 오랫동안 그들의 사상과 생각을 들으면서 겸손한 청자로 남는 것에 대한 무한한 기쁨과 유용성을 확인한다(p.405) 결국 그는 그곳의 지배층으로부터 추방을 당하게 되고 다시 바다에서 배를 만나 구조되지만 그가 오랫동안 후이늠에서 살면서 얻게 된 인간에 대한 혐오는 인간을 차마 바라보지도 곁에 가지도, 만지지도 못하게 하는 상태에 까지 이르고 만다. 심지어 자신의 가족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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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의 책에서 언급한 걸리버가 여행한 네 나라에 대한 이야기의 요약부분이다. 사실 걸리버 여행기에 대한 요약에 내가 많은 지면을 할애한 것은 걸리버가 네 나라의 군주와 지배계급과 나눈 이야기 자체가 갖는 상징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건 어디까지나 뼈대일 뿐이다. 맛깔나는 이야기는 이 책을 통해 직접 확인을 하기를. 걸리버는 그가 속한 세계에서 외부자의 시선으로 이 책에서 많은 이야기를 한다. 여기서 바로 외부자의 시선이란 네 나라의 군주들이 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걸리버는 네 개의 나라를 여행하는 동안 다각도에서 다면적으로비교를 하거나경험하게 된다. 신체적으로는 거인에서, 소인으로, 외면적 추악함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보기도 하고 심지어 마지막에는 인간이 아닌 동물의 지배를 받는 야만인이 바로 인간인 야후라는 종족을 통해서. 스위프트는 신체적인 비교를 통해 아주 우회적으로 인간을 드러낸 것 같지만 어떻게 보면 매우 직선적이기도 하다. 그는 2.브롭딩댁으로의 향해에서 밝혔듯이 비교에 의해서가 아니면 어떤 것도 크고 작음이 없다는 철학자들의 말을 언급하였다. 결국 자신이 자신의 나라에서 벌레와 같은 존재가 되었음을 확인하는 부분이나, 이로 인해 그간 자산이 느낀 아름다움이란 단지 우리와 크기가 같기 때문에 아닌가 하고 생각(p.130) 하는 부분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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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프트는 하나의 나라가 아니라 네 나라를 통해서 이렇듯 많은 비판과 풍자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작정하고 한듯하다. 각각의 나라에서 중심이 되는 이야기하고자 하는 몇몇 주제가 있지만 결국 그는 인간에 대한 혐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알지 못했을 때의 세상과 알고 난 후의 세상이 이전 같지 않음을 다시는 예전처럼 살아갈 수 없다하는데 그가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한 결론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세상에는 혁명가도 있고 혁명가가 있게 한 사상가도 있지만 스위프트는 정치적인 야먕도 있었으나 이를 이루지 못했다. 그랬던 그가 이 책을 5년동안 집필을 했고 지금 읽어도 이럴진대 당시의 사회적 반향을 생각하면 그 시절 누군가는 한번은 해야 할 말을 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물론 이소설은 식민지에 대한 이중적인 입장, 여성에 대한 견해, 정치를 꿈꾼자가 현재의 정치인이 담근 진흙탕 세계에 대한 생각에서는 비판의 소지에 대해서는 따로 토론이 있을 정도로 짚어볼 부분이 많다. 그럼에도 이 소설의 백미는 소설의 마지막부분이다. 볼테르가 말 한대로 우리는 우리의 정원은 우리가 가꾸어야 합니다와 마찬가지로 많은 부분을 함축하고 있다. 다소 모순적으로 표현한 것 같으면서도 그의 삶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고 일급수에 사는 물고기 같은 느낌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스스로가 만든 고립무원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내게 준 재미와 생각거리는 매우 크다. 조지 오웰이 사랑한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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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 마음산책 짧은 소설
정지돈 지음, 윤예지 그림 / 마음산책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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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 읽고 알라디더 유트브 금정연X정지돈 방송을 다시 보고 유트브로 볼 수 있는 지돈작가님 다른 짧은 인터뷰도 몇 편 보았다. 작가님 소설이라고는 [건축이냐 혁명이냐]만 보았고 그 책을 보기 전까지 정지돈 작가님의 책에 대한 소문만 듣고 읽어볼 생각을 못한 채(지금은 그의 책 대부분을 구매한 상태) 마음산책에서 나온 짧은 소설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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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편의 단편을 읽으면서 많이 웃었고, 삽화를 그려주신 윤예지 작가님의 작품도 그간의 짧은 소설에서 좋았던 마음은 한층 더 커지기도 했다. 별색인쇄는 정말 잘하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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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기전 자료 수집 등 준비를 철저히 하는 정지돈 작가님이 이번엔 한달음에 써내려 가기도 했다는 말을 들으니 힘 빼기 기술을 토대로 쓴 것 같은 이 소설이 휴일 아침이 주는 즐거움과 무척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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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웃기도 많이 웃었는데 이번 유트브를 보면서 많이 웃는 모습이 생각나기도 하고 책을 읽는데 자꾸 정지돈 작가님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고 김정현이란 등장인물은 금정연 서평가님 목소리가 자동으로 더빙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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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마지막 뒷문장에 옮겨진 것처럼, 근엄해지기는 너무도 쉽지만 실없어지기는 너무도 어렵다는 말처럼, 짧은 소설에서 그간 작가님에 대해 막연히 갖고 있었던 근엄진지의 모습이 아닌, 읽는 독자로 하여금 실없이 자꾸 웃게 만들어준 18편의 짧은 소설들 이었다. 뒤늦게 만난 이 작가님이 매우 좋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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