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루스벨트 게임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7월
평점 :
이케이도 준의 ‘루스벨트 게임’을 읽었다. 4부작 ‘한자와 나오키’, ‘일곱개의 기둥’ 모두 페이지가 400-500페이지를 넘지만 순식간에 읽어진다. 그렇다고 이 책이 킬링타임용 책은 아니다. 거품경제가 빠지기 전까지 ‘종신고용’이라는 말로 대변되던 일본의 ‘기업문화’는 언제부터인가 ‘구조조정’과 ‘파견’이라는 일터의 조건이 완전히 바뀌어져 버렸다. 그런 가운데 그간 읽었던 이케이도 준의 소설은 기업경영에서 ‘사람’을 대하는 방식, 하나의 ‘이즘’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다.
.
소설 속에는 몇 개의 기업이 등장하는데 핵심은 기술개발을 중심으로 성장하는 ‘이소미아 제작소’라는 중소기업과, 중소기업보다는 규모가 큰 ‘마쓰다전기’가 나온다. 이야기는 두 회사의 사장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적자로 인하여 대기업에 하청기업으로서 살아나기 위한 방법을 두 회사의 사장, 그리고 ‘이소미아 제작소’의 부장급 이상의 임원진을 중심으로 회사가 다시 성장을 도약하는 모습을 작가는 말한다.
.
제목에서 알다시피 ‘루스벨트 게임’이란 야구에서 스코어 8:7의 스코어서 경기가 끝나는 마지막까지 지켜보는 상황을 말한다. 이는 과거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이 한 말로 그야말로 승부가 엎치락 뒤치락 하는 상황속에서 팀협력이 어떻게 발휘되어 끝내 승리는 어디로 가게 되는지, 아니 승리와 상관없이 최선을 다한 모습이랄까.
.
물론 나처럼 야구에 대해 잘 몰라도 이 소설을 보는데는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생산라인의 축소로 직원까지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회사에 매출액으로는 확인할 길이 없은 기업야구팀을 계속 유지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하나의 딜레마가 된다. 경영논리로만 보자만 당연히 해체의 수순을 밟는 것이 맞지만 그 과정에서 이소미아 제작소의 총무부장이자 야구부장인 미시카가 그 가운데서 사람과 사람, 그리고 기업을 바라보는 모습은 매우 인간적이다. 숫자와 그래프, 그리고 절감에 매우 사리가 깊을 것 같은 일반적인 기업의 총무 회계의 모습과는 달리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고뇌를 하고 이후 매출의 확대로 인해 재임용을 하는 과정에 이르는 모습은 현실과는 다를지언정 가고자 하는 방향을 보여주니 나쁠 것은 없다.
.
직장 생활을 하다보면 실력도 필요하고 정치력도 필요하다. 둘 다 잘하는 사람도 있고 둘다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각자의 길을 가는 것도 같다. 이 책에서 이소미아 제작소의 호소카와 사장은 컨설팅 회사를 다니다가 이소미아 제작소의 영업부장으로 오게 된다. 임원진 12명 가운데 서열은 아래에서 3번째에 해당하지만 이소미아 사장이 물러나면 차기 사장으로 지목한 사람은 사내 누구라도 ‘사사키’ 부장이 사장이 되리라 생각했지만, 나이도 경력도 어린 ‘호소카와’가 사장이 된다. 호소카와는 정치력으로 사장이 되었다고는 보기 어려운 사람이다. 그는 어떻게 보면 후발주자임에도 변화하는 시장의 환경속에서 자신의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부분을 다른 사람들과 달리 꿰뚫어본 안목을 갖고 있었다. 당시 영업부장의 사외 영입이라는 내부적으로는 불만의 씨앗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나 그는 실력으로 당당히 모두의 의심스럽고 곱지않은 시선을 날리게 한다.
.
2인자가 된 사사키는 어떠할까? 그는 사내 전무로 지내면서 호소카와 사장을 궁지에 몰거나 하지 않는다. 그저 냉철하게 판단하고 기업이 살아날 길을 찾는데 사사키 또한 이 회사의 총무부장으로 자리매김 하기까지 최선을 다해 일한 모습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오늘 북판다님의 리뷰에서도 보았지만 서로를 성장하게 하는 관계에 없어서는 안 될 것은 ‘사리사욕’에 관한 부분일 것이다. 사사키는 자신이 왜 사장이 될 수 없었는지에 대한 판단이 명확하고 호소카와는 겸손하다. 급감하던 매출을 오로지 기술력으로 다시 일으키게 된 배경에는 약간의 불협화음은 있을지언정 전반적으로는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던 사람들의 모습이다. 호소카와 사장은 말한다. ‘단지 그것 뿐이었는걸요...’라고, 그런데 세상에는 이소베 지점장이 말한 것처럼 ‘단지 그것뿐인 것을 못해서’ 기업이 망하는 경우도 있다.
.
읽기 시작하면 그 자리에서 다 읽을 정도로 재미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현실과 얼마나 괴리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런 이야기가 좋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스스로가 자신의 한계와 타인의 장점, 내가 아닌 저 사람이 그 일을 하게 된 모습을 정확히 이해한 모습들이다. 이케이도 준의 소설은 아무리 내가 읽을 책들이 산재해 있어도 종종 읽고 싶은 책이다. 읽고 나면 환기가 된다. 이 소설을 일고 나서 야구이야기는 많이 적지 않았지만 다이소 감독의 이야기나 더는 이어가지 못할 자신의 야구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감독으로 매니저로, 다시 투수로 서는 장면들도 빼놓을 수 없는 자신의 인생에서 좋아하는 것을 놓지 않은 모습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