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과는 거리가 먼 전혀 엉뚱한 생각이지만, 지진을경험하는 순간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된 느낌이었다. 거리에 나가 눈앞에 다른 사람들이 나타나자 비로소 내가 죽지 않고살아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살아 있었다. 하지만 거리로뛰쳐나갔을 때 그곳에 아무도 없었다면 나는 정말로 살아 있다고 느낄 수 있었을까? 이성복 시인의 시구를 빌리자면, "당신이맞은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치 없지 않았을까. 그저 존재할 가능성에 불과한 나를 정말로 존재하게 만드는 조건은 무엇일까.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나와 함께 이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사람들이 아닐까. 세상은 나를 존재하게하는 그들과 그들을 존재하게 하는 나로 이루어져 있는 게 아닐까.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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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수직의 빙벽이라고?
나는 잠시 책을 덮고 상상해본다. 고개를 한껏 젖혀 올려다봐도 끝을 헤아릴 수 없는 견고한 얼음요새를 사람을 단숨에무력하게 만드는 서슬 푸른 냉기를. 그러나 여전히 나는 알 수없다. 아이젠이나 피켈 같은 현대식 장비도 없이, 당시 셰르파족들이 ‘영국 공기‘라고 부르던 산소통도 없이, 탈진한 상태로 추위와 싸우면서 이제 막 정상이 보이기 시작하는 지점에 이르게된 사람이 맞닥뜨린 거대한 좌절이 어떤 것일지. 눈 폭풍처럼 몰마쳤을 고립감은 또 어떤 것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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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말과 너무 많은 얼굴에휘둘리다 보면 머무를 자리 없이 허우적거리게 된다. 원하지 않는 곳으로, 빠져나올 수없는 진창 속으로 떠내려갈 것만 같다. 다가오는 호의도 힘들고 보여줘야 할 호의도 힘들고 떠나보내야 할 호의도 힘들다. 호의가 적당히 적립되었다 싶으면 튀어나오고야 마는 뾰족한 발톱들도 두렵다. 그럼에도 외로우니까 친구를 만들고 함께 구경을 가고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말싸움을 한다. 그럼에도 어떤 외로을 날에는 그것조차 견디기 어렵다.
바람이 열어주는 길을 따라홀로 걸어 다니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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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취한 김에 섣불리 가짜 어둠이니 진짜빛이니 투덜댈 것 없다.그 아이가 행복하게세상에 존재한다면,비로소 세상은 아름답다.달리아는 그다지 섬세하거나 아름답지 않다. 겹겹이 두툼한 꽃잎은 개수를 세어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붉은색 노란색 주황색 보라색으로 여럿이 어울려 피어 환히 주위를 밝힌다. 그러나 퇴락한 거리 한 귀퉁이에 홀로 솟아오른 달리아는먼지를 뒤집어 쓴 채 무연히 시들어갈 뿐이다. 어디에든 가 닿으리라고, 다알리아, 다알리아, 지나가는 사람들 무릎 높이로 흔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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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네 이야기를 너에게 할게. 그러니까 네가 태어났을 때 내가 나를 무섭게 노려보며 경고했다는 이야기. 조심하라고, 네가 나를 필요하다 느끼는 마지막날까지 나는 살아 있어야 한다고.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는 내가 필요하다.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네가 나에 대한 네 마음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불리건 그게 내가 너에게느끼는 감정과는 다를 것이다. 나는 누군가의 자식으로 45년을 살았고 누군가의 아버지로 아홉 달을 살았을 뿐이지만, 그 아홉 달 만에 둘의 차이를 깨달았다. 너로 인해 그것을알게 됐으니, 그것으로 네가 나를 위해 할 일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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