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딸들에게 "엄마 얼마나 사랑해?"라고 물었을 때 팔을 활짝 벌리고 "이이이이이만큼"이라고 대답한 일이 떠올랐다. 이것이 내가 아이들에게 농사일을 가르친 진짜 이유다. 내가 떠난뒤에도 아이들을 사랑해줄 엄마가 영원히 함께 있도록.
콩을 보며 깨닫는다. 땅과 우리의 관계, 어떻게 우리가 이 많은 것을 받는지 보답으로 무엇을 돌려줄 수 있을지 오랫동안 생각한다. 호화성과 책임의 방정식, 생태계와 지속 가능한 관계를 맺는 이유와 목을 곰곰이 따져본다. 오로지 두뇌 속에서. 하지만 문득 설명과 합리화가 모두 사라졌다. 엄마의 사랑으로 가득한 바구니의 순수한 감자만 남았다. 궁극적 호혜성,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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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리가 향모를 불에 바칠 때 이 향모는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며 그때마다 존중받아 더 풍성해지는 선물이다. 이것이 선물의 본질이다. 선물은 이동하며 그때마다 가치가 커진다. 들판은 우리에게 딸기를 선물로 주었고 우리는 아빠에게 선물로주었다. 많이 나눌수록 가치가 커진다. 사유 재산 개념에 물든 사회에서는 이것을 이해하기 힘들다. 다른 사람을 나눔에서 배제하는 것이야말로 사유 재산의 정의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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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엔족 연장자 Bill Tall Bull이 한 말이 기억난다. 젊은 시절에 나는 사랑하는 식물과 장소에 말을 걸 토박이말이 없음을 무거운가슴으로 그에게 한탄했다. 그가 말했다. "그들은 옛 언어를 듣고 싶어 하지. 그건 사실이야 하지만." 그가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대며 말했다. "여기로 말하지 않아도 돼." 그는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기로 말하면 그들이 들을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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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나는 세상을 선물경제로 경험했다.
이 들판과 멀리 떨어진 곳을 지배하던 임금 경제 아래에서 우리 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지에게 선물로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모범이 전계비를 벌려고 얼마나 분투하는지는 다행히도 몰랐다.
우리가족이 서로 주고받는 선물은 거의 언제나 손수 만든 것이었다. 나는 그것이 선물의 정의라고 선물은 누군가를 위해 만든 무언가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 성탄절 선물을 만들었다. 낡은 클로락스 빵으로 돼지 저금통을, 부서진 빨래집게로 냄비 받침을, 안 신는양말로 꼭두각시 인형을 만들었다. 우리 엄마는 가게에서 선물을 살돈이 없어서 그랬다고 말한다. 하지만 선물 만들기는 내게 고생스러운 일이 아니라 특별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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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결치는 윙가슈크 가닥들은 갓 감은 여인의 머리카락처럼 길고 윤기가 난다. 그래서 우리는 향모를 어머니 대지님의 하늘거리는 머리카락이라고 부른다. 향모를 땋는 것은 어머니 대지님의 머리카락을 낳는 것이다. 우리의 애정 어린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자, 우리에게 베푼 모든 것에 감사하며 그녀의 아름다움과 안녕을 바라는염원을 드러내는 것이다. 날 때부터 하늘여인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은 인간과 대지 사이에 책임이 흐르고 있음을 뼛속까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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