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티티카카 호수나 티베트의 암드록초 호수 같은 고지의 호수에 갔을 때를 떠올려봅니다. 내가 그곳에 갔을 때 하늘에 닿은 높은 호수는마치 누군가의 귓속 같았습니다. 그 높은 고도 속에서 내 귀는 점점 난청이 되어갔지만 호수의 표면은 내가 들을 수 없는 음역대를 통과하는아주아주 거대한 사람의 고막같이 파르르 떨고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하늘과 맞닿은 짙푸른 호수의 귓바퀴가 열리고 내 몸이 마치 그 둥글고파랗게 주름진 귓속에 드는 것 같았습니다. 그 거대한 귀가 희박한 공기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나는 짙푸른 하늘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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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전통에서 과연 미는 어땠냐 하는 점이다. 고대로부터 중국을 중심으로 한자문화권에서는 ‘아름다움‘과 ‘선함‘을 같은 맥락에서 다뤄왔다. ‘미‘와 ‘선‘의 글자 모양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두글자 모두 ‘양‘을 포함한다. 양이 살찌고 크면 미고 그것이 또한 선한것이 되는 셈이다. 즉, 아름다움은 풍요를 상징하고, 선함은 종교 제의에 정성을다함을 상징한다. 이렇게 아름다움과 선함은 그 출발점이 일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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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도 천개의 얼굴이 있다. 나는 아버지의 몇개의 얼굴을보았을까? 내 평생 알아온 얼굴보다 장례식장에서 알게된 얼굴이 더 많은 것도 같았다. 하자고 졸랐다는 아버지의 젊은 어느 날 밤이 더이상 웃기지 않았다. 그런 남자가내 아버지였다. 누구나의 아버지가 그러할 터이듯. 그저내가 몰랐을 뿐이다.마침내 재가 된 아버지가 유골함에 담겨 나왔다. 아버지는 아직 따스했다. 누구의 차를 타고 왔는지 뒤늦게 나타난 작은아버지가 앙상한 팔을 내밀었다. 그 팔에 아버지를 안겨주었다. 아버지의 온기가 작은아버지의 팔을 타고 핏줄을 데울 터였다. 작은아버지가 풀썩 주저앉으며아버지의 유골을 끌어안고 통곡하기 시작했다. 아홉살에어긋난 형제가 칠십년 가까이 지나 부둥켜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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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공으로 사는 일이, 아이 넷 낳고 사는 일이 적잖이 노곤했으리라. 어린 동생 들쳐업고 똥기저귀 빨던 어린 시절처럼 동동거리며 살아왔을 영자의 지난 시간이 눈앞에서 본 듯 환하게 밝아왔다. 그 시간 속에는 우리 아버지손잡고 가슴 졸이며 수술을 기다리던 순간도 존재할 터였다. 그러니 아버지는 갔어도 어떤 순간의 아버지는 누군가의 시간 속에 각인되어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생생하게살아날 것이다. 나의 시간 속에 존재할 숱한 순간의 아버지가 문득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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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 괜찮아."
자기 상태가 괜찮다는 것인지, 죽음이란 것도 괜찮다는것인지, 살아남은 자들은 그래도 살아질 테니 괜찮다는것인지 알 수 없는 채로 불현듯 눈물이 솟구쳤다. 그 눈물의 의미도 나는 알 수 없었다. 오빠는 우는 나를 가만히지켜보기만 했다. 고요한 눈빛으로 아버지의 죽음뿐만아니라 곧 닥칠 자신의 죽음까지 덤덤하게 수긍한, 아니죽음 저편의 공허를 이미 봐버린 눈빛이었다. 그 눈빛에서 차마 더는 울어지지 않았다. 내 울음이 사치스럽게느껴졌기 때문이다. 본디 눈물과는 친하지 않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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