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삶의 증거지 삶 자체는 아니다. 시는 활활타고 남은 것의 재다. 그런데 때때로 우리는 그것을 혼동해서 불 대신 재를 창조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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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부동감은 그녀가 다른 사람의 존재를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화가와 관객이 함께 사진사의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이 그림의 특별한 위트다. 바로 우리가 이그림 안의 모든 것이 정지해야 하는 진짜 이유인 것이다. 우리가 그림 안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고, 그림이 예우해주는 특별한경우인 것이다. 우리가 소외당한 듯한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아마이 때문일 것이다. 재촉하는 사람도 없다. 이 순간은 우리의 것이다.
여행을 멈춘 정적 안에서 우리는 다시 멈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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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하얀색, 적갈색, 겨자색, 사프란색 돌들을 보고 있자면 가을 햇살을 받으며 해변을 걸었던 시간이 굳어져 돌이 된것같은 느낌을 받는다. 
수액이 굳어 노란 보석이 되는 것처럼. 그 시간이 지금 내 손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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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존슨William Johnson과 인터뷰할 때 이 그림에 대한 얘기가나왔는데, 당시 호퍼는 고독에 대해 언급했다. "고독해 보인다고요?
맞아요. 사실 내가 의도한 것보다 조금 더 고독하지요." 우리는 대가의 대답을 듣긴 했지만 설명을 듣진 못했다. 내 생각엔 여자가 그림의 방향성을 거스르고 있다는 사실이, 끝이 보이지 않는 순간 속으로 여자를 고립시키는 동시에 정지시키고 있는 것 같다. 호텔의창은 호퍼가 가장 좋아하는 형태인 사다리꼴이 사용된 또 다른 예다. 이 그림에서 사다리꼴은 형식적인 명령어일 뿐만 아니라 숙명적인 명령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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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가 이 그림 앞에 서 있는 모양은 안내원과 더 닮았을지도 모른다. 그림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 들여다보고 있는 거라고한다면, 내면을 ‘보고‘ 있는 안내원에게 마음이 가는 이유가 설명될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우리의 시선이 그림의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옮겨가면서, 우리는 두 가지 모순적인 충동 그림을 보고, ‘그림 속을 들여다보는 에 따라 움직인다. 우리는 이 그림에서, 호퍼의 다른 그림에서처럼 그림의 기하학적 요소와 서사성이 부딪치며빚어내는 드라마를 보는 대신, 이 둘이 함께 작용하는 것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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