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상가 이건희
허문명 지음 / 동아일보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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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부터 <경제사상가 이건희>-허문명 이라는 책을 읽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님에 대한 여러 가지 굵직굵질한 일화들을 주변 핵심 인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풀어나가는 짧은 평전이다.

이 책을 읽고 있자니 시대를 바라보는 회장님의 통찰력과 혜안이 몇십년씩이나 앞서갔을 정도로 회장님이 여러 다양한 부문에서 뛰어나셨음을 느끼게 된다. 오죽하면 임원분들도 회장님의 생각을 빈번하게 따라갈 수 없었고, 의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회장님의 의사와 반하는 일들을 했었다고 할 정도니 말이다.

30년 전에 중앙일보 기자분들께는 ‘’이제 곧 종이가 사라진다는데, 그에 따라 신문사에서는 어느 정도 대비나 준비가 되어있으시냐‘’ 라고 화두를 던져, 그들을 ‘엥?’하며 당황하게 만드셨고(2022년 현재, 신문 구독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고, 사람들 대다수는 종이 신문보다는 디지털 뉴스를 보고 있다)

‘2차 산업과 3차 산업이 저물고 있고, 또한 세계 산업은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무게추가 기울 것이고,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훨씬 더 중요해지는 시기가 올 것이다’고 25년 전부터 쭉 삼성그룹 임직원분들께 누차 반복해서 얘기해 전 임직원들을 아리송하게 했으며,

이전 삼성카드 사장님께는 ‘’카드업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한 뒤, ‘’카드업은 물장사와 같다. 외상관리가 핵심이고, 우리가 빌려준 돈을 최대한 많이 회수(상환받을 수 있는 것)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한데, 그런 면에서 채권관리가 잘 되어야만 한다. 아무에게나 무차별적으로 카드 발급을 해줬다가 대다수가 빚을 갚지 못하는 상황이 오면 카드사 입장에서는 상당히 난처해진다.‘’고 간단명료하게 카드업을 요약하신 바 있다고 한다.

삼성전자의 반도체나 다른 뛰어난 기술들이 요즘의 수준만큼 뛰어나지 못할 때, 이건희 회장님은 ‘’뛰어난 사람들이라면 사장단의 3~5배가 넘는 연봉을 줘서라도 모셔 와라‘’ 라고 할 정도로 인재를 찾는 데에 혈안이셨고, ’인재 한 명이 10만명을 먹여살린다‘ 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삼성전자의 불량율이 6% 정도일 때, 업계에서 이미 퍼져있던 ’양으로 승부한다‘는 공식을 ’양보다는 질‘로 바꾸는 데에 상당한 고생을 하신 것 같다. 사장단들조차 양이 우선이라고 간언하는데, 불같이 화를 내시며 질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일화도 있었다.

이렇게 질에 대해 얘기를 하는데도, 전 임직원들이 자신의 뜻을 몰라주자, 삼성의 전 임원들을 프랑크푸르트의 호텔로 모아 원고도 없이 10시간이 넘게 회장님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는데, 거기서 나온 말이 ’마누라 자식만 빼고 다 바꾸자‘이기도 하다. 그 때 자리에 계셨던 여러 임원분들의 말을 종합하면, 계열사 대표들조차도 자세히까지 모르는 내용들을 속속들이 알고 계셔서 상당히 놀랐다는 눈치였다고 한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삼성전자 핸드폰에 불량율이 너무 높자, 핸드폰 ‘애니콜’ 화형식을 벌이심으로써, 엄청난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전 임직원들에게 <양보다는 질>이라는 키워드를 각인시키려고 노력하셨음이 느껴졌다.

주로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시며 하루에 일간지, 주간지, 월간지, 잡지, TV등을 보셨던 양과 그것을 통해 자신의 지식으로 만들었던 정보의 질도 상당히 어마어마해서 아무나 따라할 엄두조차도 내기가 힘들어 보인다.

유년시절에는 일 주일마다 가끔씩 영화를 이것저것 몰아보셨다고 책에 기술돼있는데, 여러 개의 영화를 집중해서 보는 것은 나만의 사고 체계를 갖추는 데에 상당히 좋아 보인다.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 가끔가다 영화를 관람하는 방식을 보면 요새는 CGV나 메가박스에서 일간 패스권이라고 해서 하루에 상영하는 영화를 모두 볼 수 있는 일간 구독권이 있나 보던데, 패스권을 구입해서 하루종일 영화를 몰아보는 습관은 아주 좋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요새는 Netflix 같은 OTT 서비스가 굉장히 잘돼있어서,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얼마든지 스트리밍 방식으로 컨텐츠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으니, 영상물을 몰아서 보면서 자신만의 생각 가꾸기를 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회장님만의 영화 감상법이 나와 신기했는데, 처음에 사람들이 영화를 감상할 때는 주인공 중심 입장으로 본다고 한다. 주인공의 처지에 흠뻑 빠지게 되면 자기가 그 사람인 양 착각하기도 하고 그의 애환에 따라 울고 웃는다면서. 그런데 스스로를 조연이라 생각하면서 영화를 보면 아주 색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나아가 주연과 조연뿐 아니라 등장인물 각자의 처지에서 보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사람의 인생까지 느끼게 된다. 거기에 감독, 카메라맨의 자리에서까지 두루 생각하면 또 다른 감동을 맛볼 수 있다고 한다.
그저 생각 없이 화면만 보면 움직이는 그림에 불과하지만 이처럼 여러 각도에서 보면 한 편의 소설, 작은 세계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영화를 보려면 처음에는 무척 바쁘고 힘들다. 그러나 그것이 습관으로 굳어진다면 입체적으로 보고 입체적으로 생각하는 ‘사고의 틀’이 만들어진다며 움악을 들을 때나 미술 작품을 감상할 때에도 새로운 차원에 눈을 뜨게 된다며 격려하셨다.

어떤 임원분의 한 일화도 기억나는데, 회장님이 장애인을 위한 장애인 전용 공장을 지어보라고 하셨다고 한다. 좋은 공장을 세워 성공 모델을 만들면 세계 여러 지역에서 벤치마킹하러 수시로 드나들 것이라면서. 관계자들이 해외 여러 장애인 공장에 대해 조사하고 상세 계획안을 회장님께 설명드리고, 다 듣고난 회장님이 추가 보완 사항을 정리해주셨는데, 관계자분들이 ‘회장님은 장애인에 대해 잘 모르실텐데, 어쩜 이렇게 잘 알고 계시냐’고 임원분께 놀라며 말씀하셔서, 임원분께서 회장님께 그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회장님은 ‘자네는 장애인이 나온 영화도 본 적 없나. 장애인은 선천적 장애와 후천적 장애가 있지. 둘은 완전히 다르고 이 각각을 다룬 영화도 또 다르지. 영화를 볼 때 한 번 봐가지고는 몰라. 장애인의 처지에서도 보고, 그의 친구의 입장에서도 보고, 또 그의 가족의 시각에서 보기도 하고 이런 다양한 입장에서 보면 볼 수록 볼 때마다 깨달음이 다르지.’라고 밝혀 임원분과 관계자분들을 경악하게 했다고 한다. 그 공장은 지금까지도 세계 여러 기업들의 벤치머킹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한다.

회장님의 개 사랑도 빼놓을 수 없는데, 여러 매체와 인터뷰하실 때, 강아지와 함께한 채로 사진을 찍으셨다고 한다. 강아지를 좋아하시는 이유에 대해서는, ‘강아지는 나만 바라본다. 끝없이 충성하기 때문에 좋아한다.’라고 밝히셨다. 요즘 같은 때에 어린 아이들이 강아지를 키우는 것을 권장하셨는데, ‘동물은 활자화된 언어가 없어서, 동물이 보내는 언어의 신호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는 훈련을 하게 된다.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사고방식이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씀하셔서 굉장히 공감했다.

세계적 석학과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면 어떤 비용을 지출하시는 데에도 주저하지 않으셨는데, 20세기 최고의 미래학자 아놀드 토인비와 대담을 하셨던 일화는 유명하다. 회장님은 무엇이든지 최고를 지향하셨다.

유년시절에는 프로레슬링을 즐겨하셨다는데, 프로레슬러 역도산의 영향을 받았지 않으셨을까 추측하시던 작가님의 생각이 담겨있어 좋았다.

기술과 인문학적 사고뿐만 아니라, 회장님의 문화재 사랑도 책에 자세히 기술돼 있는데, 여러 국보급 문화재들이 외국으로 유출되는 것을 안타까워 하시며 좋은 작품이라면 돈을 아끼지 않고서라도 구입하시려고 했던 모습도 엿볼 수 있었다. 그에 따라 사전에 뛰어난 작품을 분별할 줄 아는 식별력, 박물관에 작품을 전시할 때에 기품 있게 전시할 수 있는 방법 등을 박물관 관장, 부관장 분들께 넌지시 알려주셨던 일화들은 그분들로 하여금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이병철 회장님도 작품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서, 이병철 회장님 때부터 여러가지 작품을 모아왔다고 한다. 선대 이병철 회장님과 이건희 회장님의 작품에 대한 사고 방식이 조금 다른 점도 재밌었는데, 두 분다 최고의 작품을 원하는 점에선 같았지만, 가격이 비쌀 때는 이병철 회장님은 주저하시는 모습이 보였고, 이건희 회장님은 가격에 상관 없이 값을 치뤄주라고 했다고 한다.

최근 회장님이 돌아가시고 이건희 컬렉션 전시회가 열렸는데, 한 개인이 그렇게 뛰어난 작품들을 모으는 것도 상당하지만, 그것들을 전부 국가에 기증한다는 기사를 봤을 땐 정말 많이 놀랐다.

책은 400페이지 정도로 어느 정도 두껍다고 느낄 수 있지만, 한 번 몰입하면 정신없이 읽게 되고, 페이지에 연연하지 않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었다. 아주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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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20세기 저녁과 작은 전환점들 쏜살 문고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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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20세기 저녁과 작은 전환점들>-가즈오 이시구로

일본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에 영국으로 건너가 쭉 영국에서 살고 있는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에 대해서, 나는 작년부터 관심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작년에는 그저 이름을 아는 정도였지만, 올해에는 최근에 초기작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를 읽고 나서 굉장한 여운과 감동, 전율을 느끼게 되었다.

다른 여러 장편소설과 하나의 단편소설도 감상하려고 어느 정도 마음 속에 여지는 남겨 두고 있지만, 요즈음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 솔직히 작가와 작품에 대해 생각해볼 여유가 많이 부족한 것이 안타깝다.

그런 시점에 나의 눈에 번뜩이는 책이 내 서재에서 우연히 보였으니, 바로 민음사 쏜살문고로 출간된 가즈오 이시구로의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집이다.

연설집답게 책은 굉장히 짧지만, 짧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정보와 내용이 응축돼 있었고, 작가가 노벨 문학상 수상 시상식에 참석해준 청중들과 그를 비롯해 자신의 책을 읽어주는 독자들에게 반드시 전하고 싶어하는 메세지들이 여럿 어렴풋이 보인 것 같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사람의 삶에서 ‘전환점’ 이라는 것을 굉장히 중요시 여기는 것 같았는데, 포착하지 않으면 그냥 스쳐가 버리는 그런 사소하고 은밀한 순간들 말이다.

나는 이와 비슷한 키워드가 <괴테와의 대화>-요한 페터 에커만(민음사)을 보고 떠올랐는데,

거기서 이미 거장이 돼있는 연로한 괴테가 젊은 지성 에커만에게 전해준 진솔하고 너무나도 소중한 대사-“생각한다는 일이 이렇게 어렵지만 않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말하지만 불행하게도 모든 생각은 생각 그 자체에게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아. 다만 천성적으로 정직하다는 것이 중요하네. 그래야만 훌륭한 착상들이 마치 신의 아들들이라도 되난 것처럼 언제나 우리들 앞에 나타나서, ‘우리 여기 있네!’하고 소리쳐 부를 걸세.”, ”떠오르는 소중한 순간과 생각들을 두 손으로 꽉 잡아두고 놓아주지 말게.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두 손가락 사이로 허무하게 빠져나가 버리고 말 걸세.“(두 번째 문장은 따로 적어두지 않았기에 기억에 어느 정도 의존했음을 밝힘. 1권 p.1~p.240 사이의 초반부였음.)-였다.

나는 소중했던 기억과 순간들을 오랫동안 떠올리고 싶을 때를 대비해서 나만의 도구를 하나 사용하는데, 그것은 즐거웠고 행복했던 상황과 기억들을 글로 적어두고 때때로 읽어 보는 것이다. 그 도구의 효과는 다시금 내가 지금 있는 순간의 현재에서, 마법처럼 잠시나마 그 과거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준다. ’전환점’이라는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키워드는 나에게도 굉장한 울림을 준다.

그것 외에도 현대 21세기의 구조적으로 격동적인 변화에 대해서도 잠시 언급을 했는데, 크리스퍼, 통칭 유전자 가위 기술-이것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20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 제니퍼 다우드나-<크리스퍼가 온다>와 그녀에 대해 쓰여진 뛰어난 전기 서적 월터 아이작슨-<코드 브레이커>를 참고하시는 게 좋겠다.-,인공지능, 로봇공학의 발전이 가져올 현대 사람들의 부정적 영향에 대해 작가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다.

수상 연설을 마무리 하면서, 작가는 문학계가 취해야 할 자세와 행동도 언급하고 있는데, 짧게 요약하면 이렇다.

1. 엘리트주의에 심취하지 말 것.
제1세계 문학 말고도 제2,3세계 문학에도 당연히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충분히 좋은 문학이 많을텐데 그들은 마땅히 받이야 할 관심을 주류로부터 받지 못하고 있다.

2. 젊은 작가 세대에 대해 어느 정도 너그럽게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
그들이 훌륭한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동원하는 장르와 형식은 이전 세대인 우리가 다루었던 것들과 상이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언제나 그들에게 마음을 열어둬야만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그들을 최고로 키울 수 있다.

전체적으로 굉장히 짧은 책이었지만, 나에게 어느 정도 큰 영향을 준 책인 것 같다. 이런 책을 즉각 읽을 수 있게 돼, 민음사 출판사와, 가즈오 이시구로 전문 번역가 김남주 선생님께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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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고 글쓰기 - 서울대 나민애 교수의 몹시 친절한 서평 가이드
나민애 지음 / 서울문화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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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전반적으로 블로그에 쓸만한 서평 양식,규격에 초점을 맞추시는 것 같아 내 눈높이에 맞게 돼 좋았다. 물론 나도 학술적이거나 전문적인 글을 써보고 싶고 그에 따른 도움도 받아 보고 싶기는 한데, 아직 내 글쓰기 실력이나 여러 지식은 많이 부족한 편이라 당분간 목표로만 간직해 둬야할 것 같다. 서평을 쓸 때는 작가에 대해 전반적으로 서평 초반부에 작성해주는 것이 서평을 읽을 사람들을 위한 배려라고 말씀하시는데, 어느 정도 납득이 갔다. 그 다음 중간 부분이 작품의 줄거리를 일목요연하게 짧게 적고 후반부에 책에 대한 분석과 평가를 내리면 된다고. 사실, 책에 대한 분석과 평가가 없다면 이것은 독후감일 뿐이지, 서평이 아니라고 저자분은 말씀하신다. 독후감과 서평의 차이를 제대로 잘 몰랐는데, 이번에 제대로 깨우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1) 서평 초반 부분: 작가에 대해 전반적으로 쓰기

이 부분이 읽는 사람들이 중반 후반부까지 흥미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끌고가는 역할을 한다. 작가의 약력,이력을 상세하게 적을 필요는 없고, 작가 인생에서 굵직굵직했던 사건들과 이력들 위주로 적어주면 된다. 그리고 그 작가가 살았던 시대 상황과 그에 따라서 작가에게 미친 영향 정도를 적어주면 좋겠다.



2) 서평 중반 부분: 작품에 대한 전반적인 줄거리 요약

서평을 읽어주는 사람들이 글을 읽고도 개요에 대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하지만 어느 정도는 짧아야 한다. 분량이 너무 많으면 글이 산으로 간다. 이것도 적고 싶고 저것도 적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별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사실 서평을 적는 면에 있어서 입문자에겐 이것이 좀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는 훈련을 하면서 조금씩 서평쓰기를 터득해야 한다. 스포일러는 적고 싶으면 적어도 되고, 아직 작품을 접해보지 못한 예비 독자들을 배려하고 싶다면, 적지 않아도 좋다.



3) 서평 후반 부분: 작품에 대한 전반적 분석과 평가 겸비하기

이 부분이 서평에서 제일 중요하다. 이 부분이 서평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파트를 잘 쓰려면 어느 정도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작품에 대해 온전히 이해를 마쳐야 분석과 평가를 할 수 있으니 어려운 책을 읽고 나서 서평을 써야 한다면 당연히 서평 쓰기가 많이 괴로울 것이다. 이 부분에선 작품을 감상하고 나서 이 책이 갖는 고전적 혹은 현대적 의의, 우리 시대에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등을 스스로 생각해보고 적어 보면 좋겠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작가에 대한 비판을 할 수는 있어도, 지나친 비난을 해서는 안 된다.



마치며: 작년에 이 책을 읽고 나서 책에서 배운 내용을 가지고 실전적 적용을 해보자는 마음을 품고 바로 다음에 읽은 책에 대한 서평을 독갤에 작성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바로 실시간 베스트에 등재가 돼서 댓글창이 난리법석이 됐던 걸 보고 당황하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재미가 쏠쏠하면서도 은근히 책으로 서평 쓰기를 공부하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되는구나 라고 생각을 해본 경험이 있다. 이번엔 잊어버린 내용 복습 겸 이전에 내가 놓친 내용을 다시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려는 목적으로 재독했는데, 역시 이 책은 서평을 잘 쓰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읽을 가치가 있다. 책 내용 자체가 평이하고, 저자분이 독자에게 맞추는 눈높이도 그다지 높지 않고, 책 분량도 그렇게 많지 않지만, 서평을 잘 쓰기 위해 우리가 참고해야 할 사항 및 컨텐츠들은 온전히 다 들어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 해에 몇백 명씩 서평을 봐주고 첨삭을 해주셔서 그런지 서평을 쓰는 많은 사람들이 많이들 저지르는 문제를 굉장히 잘 알고 계신다. 그리고 책 안에 잘 쓴 서평의 표준이 몇 개 보이는데, 그런 서평을, 혹은 그 이상을 목표로 서평 쓰기를 정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건 재독했을 때 건졌던 굉장한 수확인데, 저자분은 신문 일간지에서 기자분들이 적어주시는 서평을 참고하는 것을 추천하셨다. 평소에 신문을 자주 보는 입장에서 서평을 좀 읽기는 했지만, 주의 깊게 볼 생각은 못 했는데, 매 주마다 신문에서 쓰이는 서평도 주의깊게 꼼꼼히 읽어 보고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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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눈 풍요의 바다 1
미시마 유키오 지음, 윤상인 외 옮김 / 민음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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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눈>은 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작가 생활 극후반부에 쓴 <풍요의 바다> 4부작 중 첫번째 장편소설이다. 4부작의 시대적 배경은 메이지 시대 말기인 1910년부터 작가가 할복자살한 시점부터 5년 뒤의 미래인 1975년까지를 다루고 있다. 4권의 각각 소설마다 시대와 배경이 달라진다.

전체적 줄거리: 주인공 마쓰가에 기요아키는 14만 평이나 되는 대저택을 가진 마쓰가에 후작의 외동아들로 태어나, 병약하고 아름다운 외형의 몸과 곱상한 외모를 지닌 인간이다. 그는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는 데에는 별 다른 재미를 느끼지 못하며, 항상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거나, 자신이 꾸었던 꿈에 대해 소상히 기록하는 것을 즐기는 탐미적 몽상가이다. 그의 소꿉이성친구 아야쿠라 사토코는 필히 경국지색의 미모를 지녔다고 말할 정도이며, 어렸을 때부터 마쓰가에 기요아키와 어울려 지내는 시간이 길었다. 20살이 된 사토코는 계속해서 밀려 들어오는 혼인 약속을 필히 거절하고, 계속해서 기요아키와의 혼담을 말 없이 기다리고 있다. 기요아키의 친구 시게쿠니 혼다는 기요아키와 친해진지는 얼마 안 됐으나, 중요한 순간에 그의 강력한 우군이 되어주기도 한다. 때로 기요아키와의 '돈독한 우정'을 위해, 그리고 기요아키를 위해 그와 어느 정도 일정 거리감을 두는 것도 머뭇거리지 않는다. 사토코가 기요아키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사토코를 상처 주기 위해 묵묵히 가만히 있다가, 사토코가 도인노미야 가와의 혼담이 정해지자, 기요아키는 조급해지며, 허겁지겁 사토코와 관계의 진전을 이끌 준비를 꾀하기 시작하는데...

작중 눈여겨봐야 할 점

1. 이 소설은 본인이 볼 때, 귀족소설에 해당한다고 본다.

많은 귀족들이 작품에 출현하며, 그들이 향유하는 물건, 작품, 취미, 그리고 어릴 때 주로 했던 것들이 상세히 적혀 있다. 일본에 짧게나마 존재했던 귀족에 대한 동경이라던가, 그 시절에 대한 궁금함이 조금이라도 있으신 분들은, 읽어 보심을 추천드린다.

2. 4부작 중에 1부작이라는 순서가 지니고 있는 굉장함과 치밀성.

초독을 하는 입장에선, 이것 저것 보이지 않던 것들이, 재독을 하고 보니, 굉장한 것으로 다가와 보였다. 동남아 왕자 두 명 이라던가, 동남아 공주 잉 찬. 그들이 이 작품에서 등장인물로써 오롯이 존재해야 할 이유. 그리고 그것의 가치. 앞으로 작품에 미치게 될 영향. 그것들을 느끼게 된 것 같다.

3. 주인공 시게쿠니 혼다가 입시공부에 매진하면서도 읽었던 작품들.

일단, <봄눈> 내에 소개된 여러 비문학 작품들을 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전부 읽어 봤고, 그리고 이해하고, 그것들을 작품에 오롯이 녹여냈을 거라고 생각하니, 작가에 대한 경외심이 들어 나도 따라서 읽고 싶어졌다. 그 중에서 혼다가 읽는 작품들 중에선 혼다의 가치관에 꽤나 영향을 준 것들이 보인다. 두 왕자의 철학에 영향을 받아 읽게 되는 책들도 꽤나 관심이 생긴다. 괜히 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내가 삶과 세계에 대해 느끼고 생각해 온 모든 것을 여기에 담았다."라고 4부작 <풍요의 바다>에 대고 말했던 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4. 마쓰가에 기요아키가 썼던 꿈 일기.

기요아키가 썼던 꿈 일기에 적힌 꿈들이 이 <풍요의 바다> 4부작에서 어떤 방식으로 나타날지 미리 감상해두는 것도 좋은 관점이라고 볼 수 있겠다.

5. 주인공 시게쿠니 혼다와 두 왕자의 '윤회에 관한 사상 토론'

이것이 이 4부작 <풍요의 바다>를 본질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등장인물에 따라 다른 사고방식, 그리고 철학.

방학 기간 동안, 마쓰가에 가의 별장에서 두 왕자는 자타카-석가모니가 성불해 부처가 되기 전의 수행과 공덕을 담은 경전을 이르는 말-를 화제로 올리는데, 그에 따라 윤회에 대한 토론이 시작된다. 혼다는 전생을 알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인간이 그렇지 않을 경우, 한 번 끊어진 정신, 사상은 다음 생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다음엔 또 아무 상관 없는 새로운 사상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시간 위에 나란히 놓인 각 개체들은 같은 시대, 다른 공간에 흩어진 다른 인간들과 다를 바가 없고, 이러면 전생이란 것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실제로 '''우리들이' 환생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만 봐도, 환생이란 것은 확증할 수 없는 것을 증명하려는 헛된 노력 같다''고 말한다. 그것을 증명하려면 전생과 현생을 똑같이 놓고 비교, 대조할 사상적 통찰력이 필요한데, 인간의 사상이란 대다수 과거, 현재, 미래 셋 중 하나에 치우쳐 있어, 역사의 한복판에 있는 '자신의 사상'이라는 집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환생이란 것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객체가 자신의 전생과 현생을 구별할 수 있는 제 3자의 견지가 필요한데, 그 제3의 견지란 깨달음(석가모니의 그것처럼)의 경지일테니, 환생이란 생각은 환생을 초탈한 인간만이 파악할 수 있다. 그렇다면 환생이란 개념을 포착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환생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고 반문한다. "환생이란 것은 우리가 생의 측면에서 죽음을 바라보는 것과는 반대로, 죽음의 측면에서 생을 바라보는 것을 표현하는 데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저 바라보는 방향이 바뀌었을 뿐이다."라고 혼다는 냉소를 던진다.

그에 따라 두 왕자는 "그렇다면 누군가가 죽은 후에도 그의 사상이 대를 이어 전해지는 건 어떻게 설명할 것이죠?", "하나의 사상이 다른 개체 속으로 시간을 넘어 이어진다는 것은 그대도 인정하겠지요. 그렇다면 같은 개체가 각기 다른 사상속으로 시간을 뛰어넘어 이동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라고 질문하는데, 이 질문이 이 4부작 전체를 관통하는 Key Point라고 할 수 있겠다. 작가 미시마 유키오는 작가생활 동안 이 질문과 이것에 대한 답을 갈구했고, 그에 따라 몸이 이끌려 자신의 모든 것을 꾹꾹 눌러 담아 이 작품을 쓴 것이다.

마치며...

아름다운 문장과 끝없이 이어지는 미문의 행렬이 담겨있는 이 <봄눈>은 나로 하여금 계속해서 문학을 갈구하게 만들었다. 많은 사상과 철학, 그리고 여러 등장인물들의 행동, 그리고 기요아키와 사토코, 혼다와의 관계...

4부작이 언제쯤 완결 번역될지는 모르겠지만, 민음사 출판사와 번역가 윤상인, 손혜경 선생님들의 여러 크고 작은 노고가 존재함을 절대로 의심치 않으며, 그저 이 작품을 소개하고, 번역해 주시는 데에 대한 큰 감사함을 느끼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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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아래 제안들 15
조리스카를 위스망스 지음, 장진영 옮김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18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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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입니다. 사드, 몽정마녀에 대한 작품 속 화자의 광기어린 천착 및 조연 등장인물 종지기의 종에 대한 각별한 사랑까지. 이 작품에 줄거리는 크게 없다고 봐도 무방하나, 작품 내 등장인물들의 대사와 독백이 매우 재밌습니다. 굉장히 색다른 맛의 문학작품이었습니다만, 저는 과감히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위스망스 작품 중 <저 아래>부터 감상했습니다만, 크게 문제는 없었고 매우 즐겁게 감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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