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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는 소년 - 미시마 유키오 단편선
미시마 유키오 지음, 박성민 옮김 / 시와서 / 2025년 11월
평점 :
이 단편집에는 일단 문제작 [우국]이 단편으로 번역돼 있다. [우국]은 이 책으로 읽어본 것이 처음이었는데, 주인공이 할복을 하는 데에 따른 작가의 묘사를 읽고 있자니 나까지 굉장히 고통스러웠다. 지금까지 읽어 본 미시마 유키오 중에 할복이라는 키워드가 크게 자리했던 작품은 이 [우국]과, <풍요의 바다> 4부작(<봄눈>, <달리는 말>, <새벽의 사원>, <천인오쇠>) 중 <달리는 말>인 것 같다. [우국]과 <달리는 말>에서 서로 비슷한 등장인물이 작품 속에 보이기도 했고, 처음 [우국]을 집필할 때부터 ‘미시마 사건‘은 이미 예정돼 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동시에 무라카미 하루키-<태엽 감는 새> 작품 내에서 등장인물이 크게 고문을 받는 ’노몬한 사건‘의 묘사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그에 대해 작가가 서술한 것을 읽으면서 좀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물론, [우국]은 등장인물의 주체적인 할복이고, <태엽 감는 새>에서의 ’노몬한 사건‘은 등장인물이 고문을 받는 것이지만.
단편집 내의 [시가데라 고승의 사랑]에서는 입적을 앞둔 고승이 얼핏 바라 본 후궁에게 사랑에 빠지면서, 금지된 관계가 설정된다. 이 ‘금지된 관계’는 <봄눈>과 유사한데, 마쓰가에 후작의 아들인 마쓰가에 기요아키와, 아야쿠라 남작의 딸인 아야쿠라 사토코의 관계로써 종합된다. 도인노미야 가의 혼담이 정해진 아야쿠라 사토코는 마쓰가에 기요아키가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려 가며 관계를 요구하는 것에 거절하지 않고 응해 오다 두 사람의 관계는 파국을 맞게 된다. 이런 금지된 관계, 사랑이라는 테마에서 작가 미시마 유키오는 결말부까지 상당히 이야기를 잘 끌고 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단편 소설을 읽은 것이지만, 기승전결이 딱 떨어지는 스토리를 쓴다.
[시를 쓰는 소년], 이 단편은 작가의 사소설이기에, 어느 정도 그의 과거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청소년일 때 시를 쓰던 소년 주인공이 왜 쓰게 되지 않았는가... 자신의 시 쓰기가 ’거짓된 불순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타인의 시선(무언가를 평가하고 평가받는다는 것)과 삶의 아이러니가 그의 내면에 파고들어서가 아닐까 한다. 결국 시를 쓰며 동시에 예술적 천재라고 믿던 자신이 삶의 불순물을 껴안고 살아가야 할 평범한 인간임을 받아들인 데에서 작품이 마무리된 것 같다. 미시마가 괴테에 상당한 관심을 보인 것은 여러 작품에 드러나 있다. 미시마-괴테-벤야민 이 세 작가를 연관 지어 괴테 작가 자체적인 면의 중심으로 생각하다가 미시마 쪽으로 틀어 읽는 자세도 좋아 보인다. 벤야민은 일전에 <괴테와 친화력>에서 “괴테의 삶은 그 자체가 작품”고 평을 한 적이 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작품 내에서 실러가 되지 말고 괴테가 되라는 선생님의 말씀은 아마 작품을 쭉 내며 작가로 살아가는 삶의 그 여정 자체를 작품으로 만들라는 의미로 짐작 가능하다. 이 작품이 미시마의 사소설이라는 데에 그 의의가 크게 발현된다. 미시마의 삶의 궤적을 쭉 살펴 보면 그의 삶은 어느 정도 상당 부분 작품이 되어버렸다고 능히 말할 수 있으니. 작가 미시마는 단편소설이든 장편소설이든 다양한 장르로 참 잘 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시마 특유의 ‘,’로 이어지는 긴 문장도 역자 선생님께서 멋진 번역으로 잘 살려주신 것 같다.
여러모로 부족한 글은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꼭 읽어보심을 추천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