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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상가 이건희
허문명 지음 / 동아일보사 / 2021년 10월
평점 :
화요일부터 <경제사상가 이건희>-허문명 이라는 책을 읽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님에 대한 여러 가지 굵직굵질한 일화들을 주변 핵심 인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풀어나가는 짧은 평전이다.
이 책을 읽고 있자니 시대를 바라보는 회장님의 통찰력과 혜안이 몇십년씩이나 앞서갔을 정도로 회장님이 여러 다양한 부문에서 뛰어나셨음을 느끼게 된다. 오죽하면 임원분들도 회장님의 생각을 빈번하게 따라갈 수 없었고, 의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회장님의 의사와 반하는 일들을 했었다고 할 정도니 말이다.
30년 전에 중앙일보 기자분들께는 ‘’이제 곧 종이가 사라진다는데, 그에 따라 신문사에서는 어느 정도 대비나 준비가 되어있으시냐‘’ 라고 화두를 던져, 그들을 ‘엥?’하며 당황하게 만드셨고(2022년 현재, 신문 구독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고, 사람들 대다수는 종이 신문보다는 디지털 뉴스를 보고 있다)
‘2차 산업과 3차 산업이 저물고 있고, 또한 세계 산업은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무게추가 기울 것이고,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훨씬 더 중요해지는 시기가 올 것이다’고 25년 전부터 쭉 삼성그룹 임직원분들께 누차 반복해서 얘기해 전 임직원들을 아리송하게 했으며,
이전 삼성카드 사장님께는 ‘’카드업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한 뒤, ‘’카드업은 물장사와 같다. 외상관리가 핵심이고, 우리가 빌려준 돈을 최대한 많이 회수(상환받을 수 있는 것)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한데, 그런 면에서 채권관리가 잘 되어야만 한다. 아무에게나 무차별적으로 카드 발급을 해줬다가 대다수가 빚을 갚지 못하는 상황이 오면 카드사 입장에서는 상당히 난처해진다.‘’고 간단명료하게 카드업을 요약하신 바 있다고 한다.
삼성전자의 반도체나 다른 뛰어난 기술들이 요즘의 수준만큼 뛰어나지 못할 때, 이건희 회장님은 ‘’뛰어난 사람들이라면 사장단의 3~5배가 넘는 연봉을 줘서라도 모셔 와라‘’ 라고 할 정도로 인재를 찾는 데에 혈안이셨고, ’인재 한 명이 10만명을 먹여살린다‘ 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삼성전자의 불량율이 6% 정도일 때, 업계에서 이미 퍼져있던 ’양으로 승부한다‘는 공식을 ’양보다는 질‘로 바꾸는 데에 상당한 고생을 하신 것 같다. 사장단들조차 양이 우선이라고 간언하는데, 불같이 화를 내시며 질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일화도 있었다.
이렇게 질에 대해 얘기를 하는데도, 전 임직원들이 자신의 뜻을 몰라주자, 삼성의 전 임원들을 프랑크푸르트의 호텔로 모아 원고도 없이 10시간이 넘게 회장님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는데, 거기서 나온 말이 ’마누라 자식만 빼고 다 바꾸자‘이기도 하다. 그 때 자리에 계셨던 여러 임원분들의 말을 종합하면, 계열사 대표들조차도 자세히까지 모르는 내용들을 속속들이 알고 계셔서 상당히 놀랐다는 눈치였다고 한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삼성전자 핸드폰에 불량율이 너무 높자, 핸드폰 ‘애니콜’ 화형식을 벌이심으로써, 엄청난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전 임직원들에게 <양보다는 질>이라는 키워드를 각인시키려고 노력하셨음이 느껴졌다.
주로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시며 하루에 일간지, 주간지, 월간지, 잡지, TV등을 보셨던 양과 그것을 통해 자신의 지식으로 만들었던 정보의 질도 상당히 어마어마해서 아무나 따라할 엄두조차도 내기가 힘들어 보인다.
유년시절에는 일 주일마다 가끔씩 영화를 이것저것 몰아보셨다고 책에 기술돼있는데, 여러 개의 영화를 집중해서 보는 것은 나만의 사고 체계를 갖추는 데에 상당히 좋아 보인다.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 가끔가다 영화를 관람하는 방식을 보면 요새는 CGV나 메가박스에서 일간 패스권이라고 해서 하루에 상영하는 영화를 모두 볼 수 있는 일간 구독권이 있나 보던데, 패스권을 구입해서 하루종일 영화를 몰아보는 습관은 아주 좋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요새는 Netflix 같은 OTT 서비스가 굉장히 잘돼있어서,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얼마든지 스트리밍 방식으로 컨텐츠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으니, 영상물을 몰아서 보면서 자신만의 생각 가꾸기를 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회장님만의 영화 감상법이 나와 신기했는데, 처음에 사람들이 영화를 감상할 때는 주인공 중심 입장으로 본다고 한다. 주인공의 처지에 흠뻑 빠지게 되면 자기가 그 사람인 양 착각하기도 하고 그의 애환에 따라 울고 웃는다면서. 그런데 스스로를 조연이라 생각하면서 영화를 보면 아주 색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나아가 주연과 조연뿐 아니라 등장인물 각자의 처지에서 보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사람의 인생까지 느끼게 된다. 거기에 감독, 카메라맨의 자리에서까지 두루 생각하면 또 다른 감동을 맛볼 수 있다고 한다.
그저 생각 없이 화면만 보면 움직이는 그림에 불과하지만 이처럼 여러 각도에서 보면 한 편의 소설, 작은 세계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영화를 보려면 처음에는 무척 바쁘고 힘들다. 그러나 그것이 습관으로 굳어진다면 입체적으로 보고 입체적으로 생각하는 ‘사고의 틀’이 만들어진다며 움악을 들을 때나 미술 작품을 감상할 때에도 새로운 차원에 눈을 뜨게 된다며 격려하셨다.
어떤 임원분의 한 일화도 기억나는데, 회장님이 장애인을 위한 장애인 전용 공장을 지어보라고 하셨다고 한다. 좋은 공장을 세워 성공 모델을 만들면 세계 여러 지역에서 벤치마킹하러 수시로 드나들 것이라면서. 관계자들이 해외 여러 장애인 공장에 대해 조사하고 상세 계획안을 회장님께 설명드리고, 다 듣고난 회장님이 추가 보완 사항을 정리해주셨는데, 관계자분들이 ‘회장님은 장애인에 대해 잘 모르실텐데, 어쩜 이렇게 잘 알고 계시냐’고 임원분께 놀라며 말씀하셔서, 임원분께서 회장님께 그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회장님은 ‘자네는 장애인이 나온 영화도 본 적 없나. 장애인은 선천적 장애와 후천적 장애가 있지. 둘은 완전히 다르고 이 각각을 다룬 영화도 또 다르지. 영화를 볼 때 한 번 봐가지고는 몰라. 장애인의 처지에서도 보고, 그의 친구의 입장에서도 보고, 또 그의 가족의 시각에서 보기도 하고 이런 다양한 입장에서 보면 볼 수록 볼 때마다 깨달음이 다르지.’라고 밝혀 임원분과 관계자분들을 경악하게 했다고 한다. 그 공장은 지금까지도 세계 여러 기업들의 벤치머킹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한다.
회장님의 개 사랑도 빼놓을 수 없는데, 여러 매체와 인터뷰하실 때, 강아지와 함께한 채로 사진을 찍으셨다고 한다. 강아지를 좋아하시는 이유에 대해서는, ‘강아지는 나만 바라본다. 끝없이 충성하기 때문에 좋아한다.’라고 밝히셨다. 요즘 같은 때에 어린 아이들이 강아지를 키우는 것을 권장하셨는데, ‘동물은 활자화된 언어가 없어서, 동물이 보내는 언어의 신호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는 훈련을 하게 된다.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사고방식이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씀하셔서 굉장히 공감했다.
세계적 석학과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면 어떤 비용을 지출하시는 데에도 주저하지 않으셨는데, 20세기 최고의 미래학자 아놀드 토인비와 대담을 하셨던 일화는 유명하다. 회장님은 무엇이든지 최고를 지향하셨다.
유년시절에는 프로레슬링을 즐겨하셨다는데, 프로레슬러 역도산의 영향을 받았지 않으셨을까 추측하시던 작가님의 생각이 담겨있어 좋았다.
기술과 인문학적 사고뿐만 아니라, 회장님의 문화재 사랑도 책에 자세히 기술돼 있는데, 여러 국보급 문화재들이 외국으로 유출되는 것을 안타까워 하시며 좋은 작품이라면 돈을 아끼지 않고서라도 구입하시려고 했던 모습도 엿볼 수 있었다. 그에 따라 사전에 뛰어난 작품을 분별할 줄 아는 식별력, 박물관에 작품을 전시할 때에 기품 있게 전시할 수 있는 방법 등을 박물관 관장, 부관장 분들께 넌지시 알려주셨던 일화들은 그분들로 하여금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이병철 회장님도 작품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서, 이병철 회장님 때부터 여러가지 작품을 모아왔다고 한다. 선대 이병철 회장님과 이건희 회장님의 작품에 대한 사고 방식이 조금 다른 점도 재밌었는데, 두 분다 최고의 작품을 원하는 점에선 같았지만, 가격이 비쌀 때는 이병철 회장님은 주저하시는 모습이 보였고, 이건희 회장님은 가격에 상관 없이 값을 치뤄주라고 했다고 한다.
최근 회장님이 돌아가시고 이건희 컬렉션 전시회가 열렸는데, 한 개인이 그렇게 뛰어난 작품들을 모으는 것도 상당하지만, 그것들을 전부 국가에 기증한다는 기사를 봤을 땐 정말 많이 놀랐다.
책은 400페이지 정도로 어느 정도 두껍다고 느낄 수 있지만, 한 번 몰입하면 정신없이 읽게 되고, 페이지에 연연하지 않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었다. 아주 재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