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우스터리츠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9
W. G. 제발트 지음, 안미현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3월
평점 :
'언젠가는 독후감 한 편 날려야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오늘에야 쓰게 된다..
작년에 봤던 것 같다.. 어렸을 때 빨간책(?) 읽자마자 곧바로 처음부터 다시 본 이후로, 책을 정독하고 난 뒤 책장을 덮자마자 다시 처음부터 읽은 내 생애 유일한 책이다.. 글쎄,, 왜 그랬을까? 물론 재미있어서가 가장 큰 이유였겠지만, 분명 내 맘 속엔 말 못 할 그 어떤 원인이 있엇던 것 같은데,, 그걸 말로 설명할 자신이 없다..
작품의 줄거리는,, 한 사람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나선다는 지극히 평범한 내용이어서 작품 자체로는 뭐라 특별한 구석이 전혀 만무하다.. 아마도 '나미야 잡화점의 기억' 같은 쟝르에 열광하거나, 그 책에 감동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에겐 결코 이 작품 '아우스터리츠'를 읽는 걸 쌍수들고 말리고 싶다는 말 만은 꼭 하고 싶다.. 대충 이런 말을 할 정도면 이 작품의 냄새가 어떤 향기인지를, 감각있는 독자들이라면 캐치하지 않았을까?
나는 디지털을 거부한다.. 아니, 디지털이 나를 거부하는 것 같다.. 또한 나는 아날로그도 어렵다.. 솔직히 그 놈도 적응하지 못 했었다.. 아마도 나는 트랜지스터 정도를 나의 적당한 친구로 사귈 만한 대상에 모셔놨던 모양이다.. 이 작품 아우스터리츠를 보고, 읽을면 읽을수록 나의 친구 트랜지스터가 더욱더 그리워지고, 못 견디도록 내 머리를 추억 속으로 끌어 당겨, 성관계할 때 느끼는 배설의 쾌락 만큼이나 과거를 느끼게 해 주는 쾌락(?)을 맛보게 해 주었으니,, 분명 이 작품은 내게 있어 잊고 지냈던, 따듯했던 과거를 불러내 주는 마법의 작품이었다..
주인공이 어린 시절 자신을 양육했던 목사의 복음회를 따라서 이곳저곳을 다니다 어느 마을에 이르렀을 때,,그곳에 언젠가 홍수가 나서 마을이 통째로 물에 쓸려 가 버렸다는 내용과 함께, 책의 한 페이지에 예전에 자신이 기르던 개를 데리고 사진을 찍었던 소녀의 모습.. 그리고 지금은 소녀도 홍수가 난 그 마을에서 살다가 죽어버려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는 현실.. 아울러 나는 그 내용을 접하면서 내 특유의 우울증과 함께 어린시절의 찬란(?)했던 천진난만의 과거가 중첩되었던 느낌,, 아~ 도대체 횡설수설하는 이 감정은 뭐란 말인가... 또한,, 주인공이 대학생 시절 여름 방학 때, 친구의 시골 집에서 친구의 친척 아저씨와 밤 중에 바닷가의 바위를 오르다가, 바위 표면에 어느 순간 전등을 비추자 그곳에 붙어있던 나방들과 환한 불빛을 찾아 달려든 무수히 많은 나방떼들을 묘사해 놓은 부분에선 나도 모르게 환희의 눈물이 마음 속에서 흘러 내렸다.. 뭘까 이 기분은,,도대체 뭐지?
작품을 통해 느껴진 나만의 순수한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데 한계를 느껴 이걸로 중단해야 할 것 같다.. 그저 세상살이 오욕칠정이란 게, 이 작품을 읽기만 하면 순간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는 아련한 기억 만을 뒤로 하고서 말이다..
제발트의 작품 중에서 이 한 작품 만을 읽고 더이상 다른 작품에 손을 대지 않았던 이유는,, 혹시 다른 작품에 이것 만한 감동이 느껴지지 않으면 어쩌지라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 작가의 매니아라고 해서 무조건 그 작가의 작품을 다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비틀즈의 열렬한 팬이지만 오로지 '예스터데이' 한 곡 만을 사랑하고 다른 곡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도 비틀즈의 매니아는 분명 맞다고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제 용기를 내서 제발트의 다른 작품도 접해 볼 생각이다.. 우선 '토성의 고리'를 생각하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