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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구두당
구병모 지음 / 창비 / 2015년 9월
평점 :
이 작품을 다시 한 번 읽었습니다..
그런데,, 작품속에 등장하는 빨간색의 정체는 뭘까요? 빨간구두는 뭘 의미하며 빨간구두를 신고서 춤을 춰대는 여자와 그 정신 나간 여자를 추종하면서 난리 굿판을 벌이고 있는 한 무리의 빨간구두당은 작가가 어떤 것을 겨냥해서 설정한 정체들일까요?
빨간구두당은 보아하니 숫적으로도 매우 소수의 단체여서 이 세상, 이 사회의 약자 또는 소외계층이라 할 수 있겠고, 거짓과 오욕이 판치는 이 시대에 얼마 남지 않은 최소한의 진실, 양심일 수도 있으며 부정부패와 맞서 싸우는 정의라는 상징이 될 수도 있겠다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요,, 그 숭고하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는 빨간 사람들이 만약에 이 사회의 암적인 존재, 불순분자, 심지어는 사회나 국가 마저 자기들의 이상에 발맞춰 전복시키려는 아주 고약한 단체라면 그때는 얘기가 달라지는 거 아닌가요? 무조건 숫적으로 열세라고, 약해보여서, 핍박만 받을 것 같다고 해서 그들 소수의 빨간구두당을 동정심의 발로에서 편들어 줬더니 나중에 보니까 그들이 숨겨 놓았던 가공할 비밀 무기로 모든 사람들의 뒷통수를 후려갈긴다면... 그때는 어떻게 합니까?
작가는 노신부님, 젊은 신부님 같은 종교인들을 이 사회의 중심부에 위치하신 가장 양심적이고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로 설정을 했고, 또한 노신부님이 빨간색을 보고 싶어 하시며 임종을 맞기 직전에 그 색의 아름다움을 느끼시고는 미소를 지으셨고, 아울러 젊은 신부 역시 빨간색이 대체 어떤 색인지를 자기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 남은 인생을 그 색을 찾아 다니는 것으로 작품을 종결 짓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빨간색은 이 세상 흔치 않는, 저 밑에 숨어 있는, 아무 눈에나 보이지 않는 소중하고도 위대한 정체임에는 틀림없는 모양입니다.. 따라서 비틀린 시각의 소유자인 저 역시도 작가의 그 설정과 의도에 편승해 볼까 합니다.. 다만,, 이 작품 속에서도 작가의 문제 제기만 있었지 그 문제에 대한 대안이나 해결책이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죽은 소년을 눈 앞에 두고서 사람이 죽었는데 그까짓 색깔 찾기가 무슨 의미가 있냐는 신부님의 외침은 저의 평소 소신인 <허무주의를 행복한 현실주의로의 승화 >라는 생각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아 다소나마 위안을 받으면서 꼬이고 또 꼬여 비틀린 자의 졸평은 여기서 마칠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