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개자식에게
비르지니 데팡트 지음, 김미정 옮김 / 비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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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말은 존재하기 이전부터 믿을만하다. 혹은 그렇게 여겨진다. 얼핏 생득적으로까지 여겨지는 그 권위를 너무도 당당히 거머쥔 탓에 그렇지 못한 존재를 마주하기라도 하면 잔뜩 상처받은 모양으로 단단한 껍질로 둘러싸인 왕좌에 틀여박혀 눈물짓는다. 그들은 호소한다. 아, 이것은 참을 수 없는 가해예요. 배신이고 혐오란 말예요. 내가 얼마나 연약하고 평범한지 당신은 알고 있나요?

적당히 알려지고 나름 인기 있는 작가 오스카는 어린 시절의 우상 레베카를 길거리에서 마주치고는 '세월을 이기지 못한' 모습에 실망했다는 게시물을 남긴다. 그에 격분한 레베카가 "친애하는 개자식에게"로 시작하는 메일을 보내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무례인 줄도 모르는 무례, 의심해본 적 없는 순진한 가해에 균열을 내는 길로.

p.11 무슨 확신에서 그랬는지 몰라도 그런 고백을 늘어놓겠다고 우리 사이의 연결고리를 들먹거리다니 더욱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내가 나를 대상으로 한 온갖 모욕을 다 알고 있어야 한다는 듯이 구는군요. 평범하기 짝이 없는 당신의 삶에는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당신의 작품도, 당신과 연관된 모든 일에도 마찬가지입니다.

p.43 남자들이 나를 이전만큼 좋아하지 않는 건 문제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남자들에게 매력을 덜 느낀다는 점이 문제이지요. 당신들은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길을 가지 못합니다. 언제나 돌봐주고, 안심시키고, 이해해주고, 도움을 주거나 관리해줄 사람이 필요하지요. 남자 하나를 부양하는 데 너무 많은 노력이 들어요. 젊은 여성들 말이 맞습니다. 당신들의 남성성은 너무 취약합니다.


몇 차례 오고가는 말 중에 오스카의 상황이 드러난다. 그가 자신의 도서 홍보 담당자였던 조에 카타나에 성적 폭력을 가했다는 논란, 미투 고발의 대상자라는 사실이다. 그는 억울하다고, 가난한 노동계급 출신인 자신을 부르주아 계급 여성들이 부당하게 공격한다 말한다. 스스로를 보통 남성에 부합하지 않는다. "알파메일"이 아니라 오히려 패배자라 주장하는 그는 지극히 뻔하고 흔한 남성성의 총체다.

그렇다면 레베카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나이듦에 따라 좁아지는 입지를 절감하고 있다. 스포트라이트는 옮겨가고, 부위별로 나뉜 품평을 빙자한 조롱을 마주한다. 인간이기 전에 배우고, 퇴물이고, 젊음을 지나 이제는 여성성을 조금씩 부정당하기까지 하는 늙은 여자다. 평생을 사랑해온, 영화라는 예술의 마법같은 힘은 사라진 지 오래고 그저 종합시장이 된 지 오래다.

p.161 영화가 나를 향한 권태기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영화는 나를 욕망하지 않고, 나 같은 나이와 체격과 특징을 가진 여자 배우와 무얼 해야 할지 모른다는 느낌입니다. 나 역시 영화에 권태를 느끼고 있습니다. 내가 모든 걸 빚지고 있는, 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준 영화계를 향해 나는 앵글과 조명을 바꿔버렸습니다.

p.214 사실 이번 비방에서 제가 가장 상처받은 말은 "남자들이 하는 짓은 진짜 혐오스럽고, 끔찍해! 싫다고 했는데도 계속 치근덕대다니" 같은 말이 아니라, 바로 이런 말이었습니다. "어떤 여자도 그 인간을 원하지 않을 거야. 매력적인 데가 전혀 없거든. 남성미도 전혀 느껴지지 않더라. 여자들은 본능적으로 남성성을 감지하는데 그 남자를 원할 리 없지. 메스꺼운 인간이야."


작중 모든 말은 각자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그 말은 제각기 자기만큼의 세계만을 이해할 수 있으며, 자기가 아는 만큼만 아는 이들의 폭력과 말에 노출된다는 뜻이다. 결코 넘을 수 없는 타자와의 경계에서 진정한 이해와 존중은 어떻게 가능한가? 작가는 그간 숱하게 제기된 어째서 그딴 짓을 해놓고도 진심으로 억울해죽겠다는 얼굴을 하는가? 라는 물음에 정면으로 응수하며 어긋나고 중첩되는 폭력을 고스란히 드러내보인다.

그는 오스카의 말을 통해 가해자가 자신의 폭력을 약자성으로 희석하는 또다른 가해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방관자와 이해자 사이 어딘가에 있는 레베카를 통해 여성에게 삶의 주도권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를 적극적으로 빼앗는 사회의 폭력은 얼마나 만연한지, 조에의 기록으로 정상성의 억압과 사이버불링, 페미니즘이라는 이름 하의 또다른 폭력과 갈등을 드러낸다. 무결한 아군, 완벽한 정의라는 허위에 대해서도.

p.34 내게 입 다물라고 강요한 사람들이 다 남자는 아닙니다. 여자도 있었어요. 그 여자들은 내가 겪은 일이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고, 그동안 다들 잘 넘겨왔다고 말합니다. 우리보다 앞선 세대의 여성들은 지난 몇백 년간 이런 사안을 품위 있게 관리할 줄 알았다고요. 하지만 나는 그 여성들이 자신의 수치심을 갉아먹었으며, 불면을 대가로 미소를 얻었다고 말하렵니다.

p.305 미투 논쟁이 일어나는 동안 그런 남자들의 고백이 왜 들리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피해자인 여성들에게 발언권을 넘겨주려는 배려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일을 공개적으로 말한 뒤에 엄청난 대가가 따른다는 걸 알고 있어서였겠지요. 나는 피해자가 느낀 수치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추측만 할 뿐 이해하지 못해요. 수치는 분노와 함께 온다고들 하더군요. 그건 잘못된 말이에요. 나는 결코 수치심을 느낀 적이 없어요. 그들을 죽이고 싶은 마음뿐이에요. 그건 다른 얘기입니다.


독자는 "미투 논쟁은 매춘부들의 복수였죠. 그들이 하는 말을 듣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는 시대(55)"라 말하던 오스카가 "저는 제가 남자임을, 백인 남자임을 실감합니다. 다시 말해, 문제의 일원이 되지 않고 그걸 해결하는 방법을 상상할 수 없다(364)"고 변화하는 과정에서 작가가 움켜쥔, 있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유일한 활로인 가능성을 본다.

그러므로, 이 길고 지난한 대화는 요원한 회복과 실낱같은 가능성과 실패와 자격없음에 대한 것이다. 그 유일한 길은 이해, 대화, 공고한 세계를 깨부수고 스스로와 남에게 내미는 손에 있다고, 자기 내의 가해자와 타자의 인간성을 오롯이 이해할 때, 피해자의 언어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한 걸음 나설 수 있다고 있다고, 그렇게 세계는 돌이킬 수 없는 변화의 기로에서 전진할 수 있다고 말이다.

p.396 나는 다른 이들의 존재를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그들이 어떤 상태에 있든 말이죠. (...)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더라도 다정히 입 맞출 생각입니다. 그게 바로 나의 페미니즘이 될 테니까요. 당신들 집단을 떠납니다. 페미니즘의 집에서 내게 어울리는 장소에 자리를 잡을게요. 더러운 쓰레기와 불결한 쥐와 다른 나쁜 여성들과 함께, 집을 비우겠습니다.

p.406 집에 돌아왔어요. 파리는 북적이는 모습을 되찾았지만 특유의 거만함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 당신도 내게 전화해도 돼요. 내게 기대도 됩니다. 그래요, 우리 언제 만나요. 당신 말이 맞아요. 편지 속이 좁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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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인생에 봄꽃 하나 심겠습니다 - 양장, 꽃처럼 향기롭게 살기 위한 인생 필사 100
오평선 지음 / 더퀘스트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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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났다. 후기를 이렇게 시작해서 좋을 일이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났다. 모름지기 독서 후기란 책 얘기 많이에 내 얘기 조금을 곁들여 그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 제1목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근자라고 하기엔 너무 길었던 4개월의 안간힘이 이제서야 큰 산 하나 넘어 전진한 만큼, 그동안의 기억과 감정에 푹 절여진 마음이 도무지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에 봉착하고야 만 것이다...

그런 이유로, 또, 장르가 장르라는 핑계에 힘입어, 이 글은 책 얘기 조금, 내 얘기 많이, 아주 많이, 왕창 많이... 로 이어질 예정이라는 선조치 후민망이 될 예정이다. 내 후기를 가장 많이 읽는 사람인 미래의 나와 어쩌면 이 기록을 읽을 누군가에게도 미리 양해를 구한다.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았어요. 이 망할 사회가 나를 이렇게...


흔히들 생사의 고비를 넘는 경험이 삶의 분기점이 된다고들 한다. 저자도 그랬기 때문일까. 순식간에 죽음 바로 앞까지 내몰렸다 돌아온 경험이 그에게 새로운 삶을 주었다 한다. 오늘 최선을 다할 것, 누릴 것을 미루지 않을 것. 이 두 가지 대원칙과 함께.

개인사적 불행이 아니라, 몸담은 시대가 통째로 흔들리는 것을 시국이라 한다. 재난이다. 꼭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져야만 천재지변인 것은 아니다. 세계가 파괴되는 것, 당장 내일을 담보할 수 없이 망가지는 사회를 목도하는 것또한 천재지변이다. 이 혼란한 시국에 마음을 챙기는 일, 지금 여기의 행복을 놓치지 않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p.5 만약 내일 아침에 눈을 뜨지 못한다고 해도 아쉽지 않게, 슬프지 않게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행복을 가까이에서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행복은 언제나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참어른도 동지도 찾기 어려운 시대, 각자도생의 재난에 내던져진 시대를 살아내고 있다. 기약없는 희망에, 끊임없이 맞닥뜨리는 절망에 지친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가고 불가능이 진리가 된 사회에 우리는 놓여있다. 당장의 승리가 수없이 쌓여버린 슬픔을 덮지 못한다.

누군가는 보신에, 누군가는 현실이라는 명분 뒤에 숨는 비겁함에, 또다른 누군가는 더이상은 버틸 수 없다는 절망에 굴복해 주저앉는다. 무너진다. 등을 돌린다. 혹은, 신념이라는 이름으로 불의의 길을 택한다. 그렇게 폐허가 된 세계에서 절망은 가깝고 희망은 요원했다. 지금도, 여전히.

p.158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방해해선 안 된다.


그러나, 모든 것이 끝났다고 할 수 없는 이유는, 차마 그럴 수 없는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질 수 없는 것, 부서지지 않는 것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이렇게 쓰이는 말이다. 그러니 내게 저자가 말하는 "뿌리와 근본"은 이런 의미다.

평화를 비는 마음으로 차곡차곡 모았을 글들을, 이렇게나 다른 길에선 지금, 조금이나마 이해한다. 결코 평화로울 수 없는 세상에서, 간절히 바라고 또 움켜쥐려는 마음까지도. 이 혼돈과 무참의 시대에 어째서인지 여전히 살아남은 사람들과 함께.

광장은 닫히지 않았다. 누군가는 여전히 광장에, 거리에,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에 존재한다. 평화와 일상을 포기한 채로. 그런 이유로 뒤늦은 물음을 꺼내든다. 풍성했던 줄기와 잎은 다 죽었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뿌리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기적처럼 찾아온 봄꽃 소식에 다시금 묻는다. 서로의 삶에 꽃 하나 심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p.36 죽은 듯했지만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이유는 풍성했던 줄기와 잎은 다 죽었지만 뿌리는 견뎌냈기 때문이다. 뿌리와 근본이 살아 있으면 얼마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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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세계문학 - 만화로 읽는 22가지 세계문학 교양상식
임지이 지음 / 더퀘스트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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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좋은 것들에는 '필수'가 붙는 것들이 많다. 이것만큼은 꼭, 반드시 **해야 할, 원조, 고전... 죽기 전에 꼭 해야한다는 것들이 어찌나 많은지.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면 세상이 끝날 때까지는 죽을 엄두도 못 내겠다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개중에서도 교양, 상식 영역은 그 역사가 또 얼마나 방대한지.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는데 교양 쌓다 죽은 귀신은 마음의 양식으로 통통 불어 있는 몰골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런 와중에 문학, 그것도 세계문학은 그 역사와 내용이 천차만별인데다 배경까지 따지자면 세상이 두 번 끝나도록 설명만 해야 할 노릇이다. 이러니 고전부터 읽어라, 어떤 책부터 읽어야 한다, 어떤 작가의 작품들이 어떻니 저떻니 늘어놓는 일이 교양은 고사하고 듣는 사람이 진절머리나 안 내면 다행일 노릇이 아닌가.

자고로 책을 많이 읽는 최고의 방법은 책을 많이 읽는 것이라 했다. 읽어 본 사람이 읽을 줄 알고, 더 재밌게 읽는다. 아는 사람이 더 많이 알고 읽으니 쉽게 이해하고 깊게 파고든다. 그렇다면 안 읽어본 사람은, 책이 낯설고 배경지식이 얕은 사람은 어디 가서 지식을 쌓나요. 경력직만 모집하면 신입은 어디 가서 경력을 쌓아오느냔 말이야.


그런 이유로, 이 책은 그런 독자를 위해 쓰였다. (그려졌다고 해야 하나?)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작가와 그들의 작품이 영 낯선 이들을 위해, 혹은 여전히 어렵게 느끼는 이들을 위해. 이 작가가 저 학파의 영향을 받았다는데 대체 무슨 말인지, 작품 뒤의 맥락을 어떻게 읽어내야 할지 도통 알 수 없는 이들에게 자 앉아보세요, 재미난 얘기를 해드리겠습니다. 끝내 배를 잡고 웃어대도록, 상상도 못한 사연에 입이 떡 벌어지도록.

또한 이 책은 틈만 나면 심심하다고 성분분석표에 라벨까지 읽어대는 독자를 위해 쓰였다. 욕 아닙니다. 나예요. 나라고... 세상에서 가장 슬픈 괴물은, 허무맹랑에서 현실이 된 '공상과학'은, 수없이 불려나오고 되풀이된 명작은 어떻게 쓰여졌는가. 혹은, 어떻게 창조주의 이름을 넘어 여태껏 살아 숨쉬는가.

포근한 날씨에, 잠들지 못하는 밤에, 어쩌다 마주친 제목에 이끌려 서점으로, 도서관으로 들어선 이들에게 이 책을 건네고 싶다. 들어보세요. 이게 그냥 공상이 아니랍니다. 이 넓은 세상에서 당신과 이 책이 마주할 때까지 무슨 일이 있었냐면요. 알고보면 고전이란 게, 문학이란 게 이렇게 재밌는데요. 어쩌다 마주친 그대 제목에 내 마음을 빼앗겨 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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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패배의 기록 - 전후 일본의 비평, 민주주의, 혁명
김항 지음 / 창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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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전후민주주의는 군국주의의 폐허에서 시작한 민주주의다. 저자는 이렇게 평했다. "하나의 패배"라고. 어째서인가? 천황제 군국주의, 군신 천황 권력 아래 통솔되는 전체주의 식민제국에서 상징적 의미만을 지닌 입헌군주식 민주주의로 전환된 사회가 어째서 패배로 갈음된다는 말인가? 게다가, 패배면 패배지 하나의 패배란 또 무엇인가? 그 까닭은 전후 일본 사회는 급격한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되었으나, 우경화된 집권당의 '평화헌법 개헌'이 좌절된 연유에 있다.

방어를 제외한 군사력과 전쟁을 금하는 평화헙법의 무력화를 저지한 것은 평화운동을 추진한 시민사회도, 패전 후의 뼈저린 반성도 아닌 천황제였다. 폭주하는 우경화 권력을 막아낸 것은 주권자로서의 시민이 아니라는 것은, 여전히 권력으로서의 천황이 살아있다는 반증이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참패다. 전후 일본사회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무력하다. 아니. 패배했다.

p.7 천황 없이 전후 헌법의 평화주의는 지탱될 수 없게 된 것이다. 하나의 패배다.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 즉 광신적 천황제 전체주의에 대한 반성을 주창하며 출발한 전후민주주의가 결국 국민이 아니라 천황의 의지로 지탱되었기 때문이다.

p.9 섬멸전쟁은 보편주의와 식민주의를 통해 수행된다. 인류를 유일한 주체로 삼는 보편주의는 비인간을 배제하고 말살하는 전쟁을 수행하면서 성립한다. 그리고 비인간은 항시 식민주의를 통해 식별되고 지시된다. 전후민주주의는 그렇게 보편주의와 식민주의의 굳건한 결합 위에서 평화를 지켜낸 셈이다.


패배했다. 실패했다. 그것은 끝이 아니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가. 그것이 문제이다. 정치체제가, 주권자로 역동하는 시민사회가 건강한 민주주의 사회를 이끌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전사회적 영역에서 분석되어야 한다. 그런 이유로 저자는 비평, 민주주의, 혁명으로 나누어 그 원인을 탐색하고자 한다. 어째서 전후 일본 사회의 지식인들과 혁명가들은 전체주의와 식민제국주의를 벗어나 사고할 토대를 구축하는 일에 실패했는가? 그들이 지닌 한계는 무엇이었는가?

약 80년, 일본은 표면적으로는 보편주의, 세계와의 화합으로 나아가는 듯했다. 그러나 환상에 불과했다. 여전히 문인들과 철학자들은 그들 자신과 사회에 내재된 식민주의를 극복하지 못했고, 충돌하는 가치와 자기모순 속에 길을 잃었다. 식민주의의 잔재는 통합과 회복으로의 약진 앞에 은폐되고, 보편주의는 근원적 모순을 극복하지 못한 채 힘없는 이상으로 남았다.

p.11 민주주의와 입헌주의 사이의 긴장과 갈등은 현대의 정치생활을 전체주의로부터 방어하는 유일한 조건일 것이다. 결정이 국민의 의지로부터 비롯하되 헌법 가치를 존중하고 실현시켜야 한다는 조건. (...) 저 패배는 의지와 가치가 분리되어 공허와 맹목이 정치생활을 형해화한 결과이며, 천황은 분리와 형해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p.95 이 물음은 전후 일본을 만들어온 보편주의와 식민주의의 중첩을 추적함으로써 검토되어야 한다. 물론 묶인 채로 신음해온 이들에 주목하면서 가라타니와는 상이한 비평의 계보를 상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유로이 이동하는 가라타니의 투명한 보편적 주체에 맞서 구체적인 실존의 모습을 제시하는 일이 아니다. 문제는 이 주체가 저 구체적 실존들을 배제하고 말소하면서 성립해온 경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남는다. 인간존재의 보편성이라는 기치 아래 화합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보편주의는 어째서 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힘없는 이상에 그쳤는가? 어쩌면 그것은, 순진성이라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지극히 고상하게 보이는 난바라 시게루의 전인류 도덕 고양의 꿈에도, 동북아 공생을 주창한 와다 하루키의 평화주의에도, 도호쿠 대지진 후 마루야마 마사오의 일상-시민 민주주의와 그에 기반한 현실적 이상주의에도 그 한계를 직시하지 못하고 정신과 이상으로 회귀하는 순진함이 있었다.

도덕도, 평화도, 현실도 '현실'의 턱을 넘지 못하고 그저 불순물을 제거한, 하나로 뭉뚱그려지는, 무력(無力)을 인정하지 못한 무력한 이상은 혁명정치에도 다름아니다. 가장 날카롭고 급진적이어야 했을 그것은 결국 체제의 일부가 되어 일종의 스펙터클로 소비되며 명제와 명제의 대립으로 소멸대로를 걷지 않는가.

p.104 신안보법제는 보편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뿌리내리던 '섬멸전쟁'을 체현하고 실현한다. 이런 사정에 비춰보면 전후 헌법과 민주주의를 저버렸다는 저항과 비판의 목소리는 보편주의가 뿌리내리고 있는 '섬멸전쟁'에 무지했다. 그래서 신안보 법제를 근본적으로 비판하기 위해서는 보편주의의 옹호가 아니라 전후민주주의가 전제로 해온 보편주의가 전쟁포기와 평화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국가 간 전쟁과 전혀 다른 전쟁을 상정하고 전개해온 점에 눈을 돌려야만 한다.

p.262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주권적 통치(마찬가지로 혁명도)의 본질이 빛이냐 어둠이냐, 공공성이냐 비밀이냐를 결정하는 일이 아니다. 문제는 공공성의 원리가 공적 정치의 전면을 장악하면서, 비밀과 음모가 대중 미디어의 스펙터클 속에서 소비된다는 점이다. 즉 여전히 주권과 혁명의 한가운데에 자리하면서도 비밀과 음모는 점점 스스로의 좌표를 대중 미디어의 스펙터클 속으로 전이시키는 것이다.


저자 김항의 글은 항상 뜨끈뜨끈하게 맥동한다. 그만큼 필사적이고 절실하다. 어느정도는 지나간 시간을 다룬다는 점에서 다소간 냉소적이어도 탓할 이 없으련만 매번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처럼, 무엇을 얼마나 놓치고 망쳐놓고 있는지 모두가 알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외치고 또 외친다. 통합과 올해로 꼭 10년이 지난 신안보법제 투쟁의 한계, 전후민주주의의 패배는 "정치화 금지"을 내거는 작금의 우리 사회와 맞닿아있다.

폭주하는 극우-민주주의에 맞서 탈정치를 내건 순진하고 무력한 "양 떼 시민사회"는 어디로 가는가. 결코 낙관적이라 말할 수 없는 그 길에서 저자는 "철학자가 패배했다는 그 싸움에서 이긴 자들의 승전보는 이렇듯 오래된 혐오를 타고 끝을 모른 채 울려퍼지는 중"이라 말한다. 언제나 도래하지 않을 정답을 다시금 묻는다. 국민통합, 하나의 정의, 우리와 그들의 사회에서 여전히 전후를 살아가는 우리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느냐고.

p.296 내란상태와 제도라는 이중의 이미지, 이것이 마루야마가 말하는 정치와 민주주의의 요체이다. 자연권과 자연상태를 원천으로 상정하고(내란상태라는 픽션), 그로부터 부단히 질서와 규범을 만들어나가는 실천(제도라는 픽션)이야말로 정치과정이자 민주주의인 것이다. (...) 시민의 민주주의는 실제 내란이나 혁명과 같은 예외적 상황이라기보다는 일상 속에서 이뤄져야만 한다.

p.309 포스트 3•11의 사회 풍경은 이들로부터 그 '회색의자'까지 박탈하려 한다. 인권과 평화와 자유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양심적 일본 시민들이 전후민주주의를 수호하려 거리로 나서는 한편, 정작 그 거리로부터는 인권과 평화와 자유민주주의로부터 가장 먼 곳에 있는 이들의 자리가 말소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양들의 투쟁이 전후민주주의를 결단코 지켜내리라 거리로 나선 포스트 3•11의 사회 풍경이다.


*도서제공: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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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나
이종산 지음 / 래빗홀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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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거대한 고양이가 나타나 물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삶을 고양이로 사시겠습니까?" 혹자는 고민할 틈도 없이 답했고, 또다른 누군가는 잠시간의 고민 끝에 조심스레 결정했다. 그렇게 전 세계 인류의 5%가 고양이로 변했습니다. 네??? 정말고양이가되었나요?? 네 실화입니다 알아서하세요.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최저최악끔찍보송사건이란 말인가요...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야옹.

어느 날 고양이가 물었습니다. 사람을 그만두고 싶지 않니. 차라리 고양이로 살고 싶지 않니. 그렇게 하겠다고 답한 마음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남겨진 사람은 알 방도가 없다. 그저, 행복하니, 물으면 가만히 깜박이는 시선이 돌아올 뿐. 그렇다면 이젠 정말 어떡하면 좋지. 네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다르게 있는 여전한 세상에서.

p.13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만나는 분' '같이 사는 분' 하는 식으로 모호하게 말한다. 부모님이나 동생에게는 '같이 사는 친구'라고 한다. 이런 지칭에는 쿠션이 깔려 있다. 나는 비밀을 싫어한다. 적어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비밀보다 충돌을 더 싫어한다. 누가 내게 참견을 하거나 내가 선택한 것, 내가 선택한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상황도 싫고, 내가 그것을 무시하거나 반박해야 하는 상황도 싫다.

p.31 나는 동반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라는 존재가 필요했다. 그는 세상에서 딱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존재다. 그런데 그 존재가 고양이가 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고양이가 된 사람의 수명은 어느 정도일까? 고양이만큼 살까, 사람만큼 살까?


살다보면 누구나 한 번쯤 묻게 된다. 이렇게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차라리 저 팔자 좋은 동물로 태어났더라면, 안 씻어도 귀엽기만 하고 하루종일 자도 뭐라고 하는 사람 없으니 지금보다 훨씬 낫지 않았을까. 그래서였을까. 남겨진 사람들은 묻는다. 행복하니. 이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까. 사실 사람으로 사는 일은 피곤과 환멸의 연속이다. 할 수 있는 것 많고, 해야 할 일은 더 많다.

게다가 사람 틈바구니에 끼어 살아야 하는 습성까지. 생각 많은 동물은 꼭 그 머리 수만큼 복잡한 관계에 얽혀 산다. 그런 이유로, 이 허무맹랑한 환상은 무료한 일상에 들이닥친 달콤한 파랑이기도, 비현실을 빌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이야기이도 하다. 동시에, 비현실에 힘입어야만 할 수 있는 말은 역설적으로 현실에 절실히 필요하고 또 이미 도래해있으나 그러지 못한 것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존재, 의미, 삶. 뭐 그런 것들.

p.89 프공은 그런 면에서 단단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남들의 시선 때문에 포기하는 일은 없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그런 성격 때문에 남들과 부딪힐 때도 종종 있지만, 결국 인정할 사람은 인정하고,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은 지나간다. 나는 프공을 보며 그런 것을 배웠다.

p.175 고양이가 되다니 운이 좋다. 그동안 내 인생은 그리 크게 운 좋은 일도 없었고, 또 그리 크게 불행한 일도 없었다. 그럭저럭 남들만큼. 가끔 운 좋은 일도 있었다. (…) 가끔 운 나쁜 일도 생겼다. 운이 나쁜 일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나는 의외로 나쁜 일들을 금방 잊어버리는 성격이다. 지금 돌아보니 일부러 지우면서 살았던 것 같기도 하지만, 작게 운 좋은 일들과 작게 운 나쁜 일들로 내 인생은 이루어져왔던 듯하다.


그런 이유로 이 이야기는 단순한 환상을 넘어 물음으로 뻗어나간다. 사는 일에 정답이 있느냐고,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마음으로는 안 되는 거냐고. 그 사람이라서, 이런 마음이라서, 그런 이유로는 안 되는 걸까. 어떤 이름은 꼭 틀에 박힌 형태로만 인정받을 수 있는 걸까. 그게 삶이래도, 사랑이래도.

누군가는 조롱이 되어버린 안다무(안온, 다정, 무해)의 총집합이라 말하겠지만, 뭐랄까, 이런 두 박자는 너무 느리고, 한 박자보다는 긴, 한 박자 반쯤 느린 이야기도 세상에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 남은 삶을 고양이로 사시겠습니까?" 쉴새없이 몰아치고 닦아세우는 세상에서 숨을 멈추는 그런 순간이, 그 작은 틈이 절실했던 사람이 답하지 않았을까.

p.47 그는 고양이가 되었어도 그였다.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느낌이나 분위기 같은 것이 있었다. 방 안에 고양이가 가득 차 있다고 해도 나는 금방 그를 알아보고 골라낼 자신이 있다.

p.150 심지어 책과 관련된 일은 명문대를 나오거나 의사 같은 직업을 가진 것보다 사회적으로 더 낮은 위치에 있다. (...)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남에게 말해야 하는 상황이 두려운 것은 내 직업의 사회적 위치가 낮아서가 아니라 책과 관련된 일이 너무너무 멋지다고 생각하는 나의 마음 깊숙한 곳의 자의식 때문이다. 그 우쭐거리는 놈을 없앨 수가 없어서다.


아무도 서로를 원망하지 않고 울부짖지 않는 충격이라니, 순진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다. 틀렸다. 천진함을 세상 물정 모르는 미숙으로 치부하는 나의 세계가 닫혀있을 뿐이었다. 어떤 맑음은, 어떤 긍정은 무수히 깨져나가는 가운데 단단히 살아남은 것임을, 아니, 어쩌면, 반짝이는 것은 수없는 흠과 파편의 결과라는 것임을 몰랐던 이유로.

작가는 말한다. 여전히 이런 사람이 남아있다, 이런 마음이 있다, 고 말한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 남아있다고, 그렇게 믿는다고, 믿어야만 한다고. "이해와 존중을 품고 나아가는 환대의 미래"는 이런 의미일 것이다. 솔직하게 사랑하는 마음, 그저 그대로도 괜찮을 수 있다는 용기. 당신에게도 기회가 있습니다. 앞으로 남은 삶을 고양이로 사시겠습니까? 고요한 사랑. 그저, 이 말을 남길 뿐이다.

p.216 그냥 내가 그를 너무 사랑해서. 사람이었던 그도 너무 사랑하고, 고양이가 된 그도 너무 사랑해서 그런 건데. 사람이었던 그가 그립고, 고양이가 된 그가 너무 아름다워서, 우리의 미래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서, 여러 마음이 너무 복잡하게 뒤섞여서 어쩔 줄을 모르겠는 순간이 있는 건데. 그런 마음을 무신경한 타인에게 말할 수는 없다.

p.243 그곳에서는 이상하게 희미한 희망을 품게 된다. 어쩌면 이곳에서 내가 기다리던 이야기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랑 그 비슷한 것, 아니 비슷한 것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이 고스란히 담긴 어떤 이야기가 이곳에서 탄생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그런 희망 말이다.


*도서제공: 래빗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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