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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개자식에게
비르지니 데팡트 지음, 김미정 옮김 / 비채 / 2025년 3월
평점 :
어떤 말은 존재하기 이전부터 믿을만하다. 혹은 그렇게 여겨진다. 얼핏 생득적으로까지 여겨지는 그 권위를 너무도 당당히 거머쥔 탓에 그렇지 못한 존재를 마주하기라도 하면 잔뜩 상처받은 모양으로 단단한 껍질로 둘러싸인 왕좌에 틀여박혀 눈물짓는다. 그들은 호소한다. 아, 이것은 참을 수 없는 가해예요. 배신이고 혐오란 말예요. 내가 얼마나 연약하고 평범한지 당신은 알고 있나요?
적당히 알려지고 나름 인기 있는 작가 오스카는 어린 시절의 우상 레베카를 길거리에서 마주치고는 '세월을 이기지 못한' 모습에 실망했다는 게시물을 남긴다. 그에 격분한 레베카가 "친애하는 개자식에게"로 시작하는 메일을 보내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무례인 줄도 모르는 무례, 의심해본 적 없는 순진한 가해에 균열을 내는 길로.
p.11 무슨 확신에서 그랬는지 몰라도 그런 고백을 늘어놓겠다고 우리 사이의 연결고리를 들먹거리다니 더욱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내가 나를 대상으로 한 온갖 모욕을 다 알고 있어야 한다는 듯이 구는군요. 평범하기 짝이 없는 당신의 삶에는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당신의 작품도, 당신과 연관된 모든 일에도 마찬가지입니다.
p.43 남자들이 나를 이전만큼 좋아하지 않는 건 문제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남자들에게 매력을 덜 느낀다는 점이 문제이지요. 당신들은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길을 가지 못합니다. 언제나 돌봐주고, 안심시키고, 이해해주고, 도움을 주거나 관리해줄 사람이 필요하지요. 남자 하나를 부양하는 데 너무 많은 노력이 들어요. 젊은 여성들 말이 맞습니다. 당신들의 남성성은 너무 취약합니다.
몇 차례 오고가는 말 중에 오스카의 상황이 드러난다. 그가 자신의 도서 홍보 담당자였던 조에 카타나에 성적 폭력을 가했다는 논란, 미투 고발의 대상자라는 사실이다. 그는 억울하다고, 가난한 노동계급 출신인 자신을 부르주아 계급 여성들이 부당하게 공격한다 말한다. 스스로를 보통 남성에 부합하지 않는다. "알파메일"이 아니라 오히려 패배자라 주장하는 그는 지극히 뻔하고 흔한 남성성의 총체다.
그렇다면 레베카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나이듦에 따라 좁아지는 입지를 절감하고 있다. 스포트라이트는 옮겨가고, 부위별로 나뉜 품평을 빙자한 조롱을 마주한다. 인간이기 전에 배우고, 퇴물이고, 젊음을 지나 이제는 여성성을 조금씩 부정당하기까지 하는 늙은 여자다. 평생을 사랑해온, 영화라는 예술의 마법같은 힘은 사라진 지 오래고 그저 종합시장이 된 지 오래다.
p.161 영화가 나를 향한 권태기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영화는 나를 욕망하지 않고, 나 같은 나이와 체격과 특징을 가진 여자 배우와 무얼 해야 할지 모른다는 느낌입니다. 나 역시 영화에 권태를 느끼고 있습니다. 내가 모든 걸 빚지고 있는, 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준 영화계를 향해 나는 앵글과 조명을 바꿔버렸습니다.
p.214 사실 이번 비방에서 제가 가장 상처받은 말은 "남자들이 하는 짓은 진짜 혐오스럽고, 끔찍해! 싫다고 했는데도 계속 치근덕대다니" 같은 말이 아니라, 바로 이런 말이었습니다. "어떤 여자도 그 인간을 원하지 않을 거야. 매력적인 데가 전혀 없거든. 남성미도 전혀 느껴지지 않더라. 여자들은 본능적으로 남성성을 감지하는데 그 남자를 원할 리 없지. 메스꺼운 인간이야."
작중 모든 말은 각자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그 말은 제각기 자기만큼의 세계만을 이해할 수 있으며, 자기가 아는 만큼만 아는 이들의 폭력과 말에 노출된다는 뜻이다. 결코 넘을 수 없는 타자와의 경계에서 진정한 이해와 존중은 어떻게 가능한가? 작가는 그간 숱하게 제기된 어째서 그딴 짓을 해놓고도 진심으로 억울해죽겠다는 얼굴을 하는가? 라는 물음에 정면으로 응수하며 어긋나고 중첩되는 폭력을 고스란히 드러내보인다.
그는 오스카의 말을 통해 가해자가 자신의 폭력을 약자성으로 희석하는 또다른 가해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방관자와 이해자 사이 어딘가에 있는 레베카를 통해 여성에게 삶의 주도권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를 적극적으로 빼앗는 사회의 폭력은 얼마나 만연한지, 조에의 기록으로 정상성의 억압과 사이버불링, 페미니즘이라는 이름 하의 또다른 폭력과 갈등을 드러낸다. 무결한 아군, 완벽한 정의라는 허위에 대해서도.
p.34 내게 입 다물라고 강요한 사람들이 다 남자는 아닙니다. 여자도 있었어요. 그 여자들은 내가 겪은 일이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고, 그동안 다들 잘 넘겨왔다고 말합니다. 우리보다 앞선 세대의 여성들은 지난 몇백 년간 이런 사안을 품위 있게 관리할 줄 알았다고요. 하지만 나는 그 여성들이 자신의 수치심을 갉아먹었으며, 불면을 대가로 미소를 얻었다고 말하렵니다.
p.305 미투 논쟁이 일어나는 동안 그런 남자들의 고백이 왜 들리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피해자인 여성들에게 발언권을 넘겨주려는 배려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일을 공개적으로 말한 뒤에 엄청난 대가가 따른다는 걸 알고 있어서였겠지요. 나는 피해자가 느낀 수치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추측만 할 뿐 이해하지 못해요. 수치는 분노와 함께 온다고들 하더군요. 그건 잘못된 말이에요. 나는 결코 수치심을 느낀 적이 없어요. 그들을 죽이고 싶은 마음뿐이에요. 그건 다른 얘기입니다.
독자는 "미투 논쟁은 매춘부들의 복수였죠. 그들이 하는 말을 듣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는 시대(55)"라 말하던 오스카가 "저는 제가 남자임을, 백인 남자임을 실감합니다. 다시 말해, 문제의 일원이 되지 않고 그걸 해결하는 방법을 상상할 수 없다(364)"고 변화하는 과정에서 작가가 움켜쥔, 있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유일한 활로인 가능성을 본다.
그러므로, 이 길고 지난한 대화는 요원한 회복과 실낱같은 가능성과 실패와 자격없음에 대한 것이다. 그 유일한 길은 이해, 대화, 공고한 세계를 깨부수고 스스로와 남에게 내미는 손에 있다고, 자기 내의 가해자와 타자의 인간성을 오롯이 이해할 때, 피해자의 언어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한 걸음 나설 수 있다고 있다고, 그렇게 세계는 돌이킬 수 없는 변화의 기로에서 전진할 수 있다고 말이다.
p.396 나는 다른 이들의 존재를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그들이 어떤 상태에 있든 말이죠. (...)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더라도 다정히 입 맞출 생각입니다. 그게 바로 나의 페미니즘이 될 테니까요. 당신들 집단을 떠납니다. 페미니즘의 집에서 내게 어울리는 장소에 자리를 잡을게요. 더러운 쓰레기와 불결한 쥐와 다른 나쁜 여성들과 함께, 집을 비우겠습니다.
p.406 집에 돌아왔어요. 파리는 북적이는 모습을 되찾았지만 특유의 거만함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 당신도 내게 전화해도 돼요. 내게 기대도 됩니다. 그래요, 우리 언제 만나요. 당신 말이 맞아요. 편지 속이 좁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도서제공: 비채